[Review] 루프 되는 예언 속에 서 있는 것 - 맥베스 [공연]

글 입력 2017.11.25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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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 글래미스의 영주”
"맥베스. 코너의 영주"
“맥베스. 왕이 되실 (분).”


 루프 스테이션이 이 문장들을 루프 시킨다. 그래서 계속 반복되는 말들. 반복의 반복은 계속해서 욕망을 증가시킨다. 허물어졌던 욕망을 복구시킨다. 어쩔 땐 욕구를 죽였다가 한순간에 더 증폭시킨다. 그렇게 자아를 조금씩 조금씩 먹어치워간다. 그 루프 속에서 나오는 소리들은 조금씩 달라진다. 나왔던 말이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다시 튀어나온다. 더 높거나 낮아져 새롭게 등장한다. 때로는 메아리치는 곡선으로 고막에 달려든다. 그렇게 소리들은 지금까지의 과정을 복기시킨다. 돌이킬 수 없는 순간들을 복습시킨다. 그렇게 또다시 자아를 먹어치워간다. 루프 되는 소리와 그 속의 변형들은 그렇게 한 명의 왕을 만들어낸다.


맥베스_컨셉사진 1.jpg
 




 극이 끝나고 공연장을 나오면서 문득 이 극을 오로지 소리만으로 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을 했다. 안대를 쓰고, 불을 다 끄고. 그렇게 암흑 속에서 소리만 듣는 것. 연기자분들의 열연하는 얼굴과 몸짓은 볼 수 없겠지만 오히려 그것을 볼 수 없기에 느낄 수 있는 맛이 있지 않을까. 사람은 한 감각을 사용할 수 없게 되면 그 빈칸을 채우기 위해 다른 감각에 더 집중하게 된다. 그러기에 눈을 막고 이 극을 본다면 작은 소리들의 힘까지도 잘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극의 음향효과들은 기대를 전혀 저버리지 않았다. 일렉기타를 연주하는 필자에게 루프 스테이션, 딜레이, 리버브 등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장비들이 익숙했기에 극을 보기 전 그것들을 어떻게 사용할지가 궁금했는데, 루프와 음성변조가 효과의 주가 되고 다른 효과들은 효과의 풍부함을 잘 채워주어 극을 잘 이끌어갔다는 감상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다고 소리만이 남은 극도 아니었다. 소리, 조명, 그리고 정재원 배우님의 연기는 이리저리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는 모습과 되돌릴 수 없는 자신의 선택을 고통스럽게 마주하는 맥베스의 모습을 매우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동시에 정성희 배우님의 레이디 맥베스는 왕의 여자라는 자리에 어울리는 매혹스러움, 단단함, 우아함을 보여주면서 때로는 맥베스의 옆에, 때로는 맥베스의 반대편에 있는 레이디 맥베스의 모습이었다. 소극장이라는 장소는 극에 매우 가까워질 수 있다는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일상생활과 공간적으로 그게 구분되지가 않아 경우에 따라 극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 이런 극은 그런 상황들을 여러 요소들로 잘 메꿔냈다는 감상을 받았다.





‘찰나’


 매우 짧은 시간을 뜻하는 말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원래는 불교의 용어로 산술적으로 표기하면 약 0.013초라는 전혀 실감 나지 않는 시간이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자아와 세계가) 찰나마다 사라졌다가 다시 생겨나는 무상한 것이라는 ‘찰나 생멸(찰나 무상)’을 가르친다. 그 시간이 찰나만큼 짧지는 않지만 이 극에서는 소리를 계속 반복시킨다. 반복되는 주기 사이에는 침묵이 있다. 즉 반복되는 소리들은 생멸한다. 처음에 제시한 마녀들의 예언 내용들은 극을 구성하는 중심 소리이다. 예언의 내용은 반복되면서 생멸한다. 마치 우리의 삶이, 우리가 가진 사물이 생멸하기에 무상한 것처럼 저 예언도 무상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맥베스는 그 생멸하는 예언에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


고뇌.jpg
- 결국은 고뇌하거나 무시하거나


 이 극의 프리뷰에서 이야기했듯이 우리는 예언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이 길이 좋다고. 이 길이 성공이라고 말하는 예언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온다. 책, 신문기사, 입소문, 광고 등등. 예언들은 모습을 바꿔가면서 반복해서 다가온다. 마치 매 반복 사이에 음향효과가 달라지는 극의 예언같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예언들도 극에서 나타난 마녀들의 예언처럼 생멸한다. 우리는 그 예언들의 생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것이 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맥베스처럼 집착하고 있을까?

 무상함을 바라보는 것이 옳은지,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옳은지 확신이 서지는 않는다.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단계에서 과연 옳고 그르다는 구분이 있을까라는 원초적 질문에서부터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렇게 고민하는 중간에 우리 주변의 예언은 계속 루프하고 있다. 계속해서 생멸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일까.


맥베스_포스터.jpg
 

[김찬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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