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셰익스피어 『리어 왕』 [문학]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기까지
글 입력 2017.11.25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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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어왕은 세 딸에게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물었다. 그들의 대답에 따라 영토와 권력을 분배하려고 한다. 첫째, 둘째 딸은 거짓으로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대답하지만, 셋째 딸, 코딜리아는 언니들과는 다르게 자신이 할 말을 ‘없다(Nothing)’라고 한다. 그 말을 듣고 화난 리어 왕은 코딜리아의 권위를 빼앗고, 그녀를 프랑스 왕에게 시집을 보낸다. 결국, 리어 왕은 두 딸의 집에 번갈아 가면서 머물게 되는데, 두 딸은 점점 리어 왕을 무시하기 시작한다. 그의 호위병들의 숫자를 줄이고, 그를 쫓아낸다. 결국 황야로 도망친 리어 왕. 그는 그곳에서 진정한 자신을 만나게 된다. 그가 지난날 저질렀던 과오를 깨닫게 된다. 결국, 그는 파멸한다. 한편, 글로스터도 자신의 결함 때문에, 서자 에드먼드의 계략에 빠져 결국 파멸하게 된다. 에드먼드가 에드먼드의 자리를 꿰차기 위해 에드거를 쫓아낼 계획을 세운다. 글로스터는 에드먼드의 계략에 넘어가고, 그는 두 눈을 잃게 된다. 백작의 지위에서 두 눈을 잃은, 거지가 된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파멸하게 된 것인가?
 
“짐은 이 왕국을 셋으로 나누었고, 노년의 걱정거리 힘 좋은 어깨 위로 훌훌 털어 넘겨주고 가벼운 마음으로 죽음 향해 천천히 기어갈 결심을 굳혔노라.”
 
 왕권은 신이 부여한 것이다. 그것을 인간이 마음대로 포기할 수 있는 것인가? 왕권을 포기하는 것은 신의 소명을 버리는 것인 셈이다. 왕권은 어깨 위로 먼지 털듯이 가볍게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의무는 다른 자에게 넘기고, 실리만 취하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나는 네 부모로서 걱정근심 모두와 근친 혈연관계를 여기에서 부인하고, 지금부터 영원히 너를 나와 내 마음의 이방인 취급할 테니까.”
       
 그는 셋째 딸 코딜리아를 가장 사랑했다. 그럼에도 코딜리아가 자신이 원하는 말을 하지 않아서 그는 화를 내며 코딜리아를 저주했다. 그는 화가 나면 생각하지 않고 말을 뱉는다. 자신의 화를 온몸으로 표현한다. 그의 이런 행동으로 그가 파멸에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한다. 그가 화난 상태에서 코딜리아의 의도를 알려고 하지 않고, 자신이 모욕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즉, 그는 겉으로 드러난 말만 중시한다. 말 속에 숨어있는 이면을 보지 못한다. 또한, 사랑의 크기를 말로 재어 재산을 분배하는 것이 옳은 행동이었을까? 애초에 사랑의 크기를 잴 수 있을까? 사랑의 크기는 잴 수 없다. 그것을 말로 재려고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행동이었다. 앞에서 사랑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도록 함으로써 그 말 속의 진실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 리어 왕의 가장 큰 어리석음이다.


“몰인정하고 고약하며 짐승 같은 악당 놈! 짐승만도 못한 놈! 이봐, 놈을 찾아내. 체포하겠다. 가증스러운 악당 놈. 어딨느냐?”
 
 글로스터는 자신의 성격의 결함으로 인해 파멸한다. 에드먼드가 에드거를 모함하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에드먼드의 말만 듣고 에드거를 내쫓은 행동. 보고 있지만, 볼 수 없는 상태였다. 그에게는 진실을 보는 눈이 없었다. 이것은 그의 파멸을 예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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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딜리아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리어 왕

 
 
황야에서 자신을 깨닫는다

“난 너희 노예다. 불쌍하고 허약하며 경멸받는 노인이야.”
 
 결국, 리어왕은 아무것도 아닌 자(Nothing)가 된다. 왕이었던 그는 자신의 권력을 나눠주고, 딸들에게 버림받았다. 그의 딸들이 호위병의 숫자를 줄이는 것은 그의 왕권이 서서히 약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호위병들도 주인의 몰락으로 그를 떠났다. 그는 황야에서 비로소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자’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음을 알게 되었다. 딸들의 사랑을 시험한 것은 그의 권력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음을. 코딜리아가 자신을 가장 사랑한 것을 깨닫고 그녀의 용서를 구한다. 또한, 그가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었을 때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자신이 왕이었다면 몰랐을 가난한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
 
 
“갈 길이 없으니 눈은 필요없다네. 보았을 땐 넘어졌어. 자주 눈에 띄지만 우리는 있으면 자만하고, 순전한 결핍도 쓸모가 있는 법. 오 내 아들 에드거, 현혹된 이 아비의 분노의 희생물, 살아생전 너를 만져볼 수만 있다면 난 눈을 되찾았다 말하리.”
 
 글리스터도 두 눈이 보이지 않았을 때야 비로소 진실을 보게 되었다. 에드먼드의 계략으로 에드거를 쫓아내고 죽이려고 했던 것, 진실을 보려고 하지 않고 겉에 드러난 사실만으로 판단하고 행동했던 것을 반성한다.
 
 
 
아무것도 아닌자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었을 때, 그 사람의 진가를 알 수 있다.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좌절을 겪었을 때,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당할 때, 어떤 행동을 하는가에 따라서 우리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 그 행동으로 우리의 가치가 만들어진다. 리어 왕처럼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잃어가고 있을 그때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따라 우리는 정의된다.

 권력이 사라지고 아무것도 아닌 상태가 되었을 때 우리가 우리를 스스로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의 본질은 아무것도 없음이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스스로 무엇이라 정의할 수 없고, 타인이 우리를 정의한다. 가령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름, 성별, 국적 등 자신이 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타인이 우리에게 정해준 것이다. 즉, 타인을 통해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다. 이때, 타인이 우리를 부르는 대로만 살면 우리는 노예의 삶을 사는 것이다. 타인이 자신이 스스로 주체성을 만들어가고, 타인에게 주체성을 확인하는 삶을 산다면 우리는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오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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