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건축도 한류가 될까요? : 문화 비평 [문화 공간]

글 입력 2017.11.24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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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외국인들이 한국을 여행하는 예능 프로를 보게 되었다. 그들은 한국에서 해보고 싶었던 것들, 한국에서 꼭 해봐야 한다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한국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MC들은 연신 그들의 여행에 대해 환호를 보내며 '외국인이 접한 한국'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방송을 보면서 문득 중국 친구와 식사를 하던 때가 떠올랐다. 그는 한국에 온 지 2년이 되었고 서울을 비롯해 전주나 부산 등 안 가본 곳이 없는 '프로 한국 여행러'였다.  그와 함께 식사를 하던 중에 우리는 우연히 옆 자리에 앉은 커플이 한복을 입은 것을 보았고 이야기는 자연스레 한국의 전통 문화로 넘어가게 되었다.

"한복 입어본 적 있어요?"

내 물음에 그는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경복궁을 돌아다닐 때 중국인 친구들과 함께 한복을 대여해 입었다는 것이다. 나도 해보지 않은 체험을 한 그에게 나는 대단하다 말했고 그는 더 멋쩍은 얼굴로 고개를 도리질 쳤다.

"어때요? 한옥에 가니까 '한국 같다' 라는 게 좀 느껴져요?"

나는 막 스테이크 한 입을 입에 넣던 중이었고, 그는 물을 한 잔 마신 뒤였다. 서구식 식당에 앉아 전통 문화에 대해 묻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의 대답을 얼추 예상하고 있었다. '한국의 궁 멋있어요'라던지 '한옥이 예뻐요'라는 식상한 대답 말이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막 고기를 씹던 내게 작은 충격을 주었다.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한국 같다'라고는 못 느꼈어요. 그냥 그랬어요."

그냥 그랬다, 라는 그의 대답에 나는 한참이나 경복궁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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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우리는 학습을 하면서 은연중에 자국에 대한 우월성을 갖게 된다. 그것은 타국과의 비교를 끊임없이 해대는 언론의 문제이기도 하고, 자국의 우월성을 통해 자긍심을 갖게 하려는 국가적 교육 때문이기도 하다. 한옥의 아름다움, 온돌의 우수성에 대해서 기술하던 초등학교 시험시간이 떠오른다. 우리의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직관일까 학습의 결과물일까?

나는 중국인 친구의 단호함 때문에 조금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한옥 마을에서 한옥을 제외하고 '한국 같다'라는 느낌을 받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우리는 식사를 끝내고 기분 좋게 헤어졌다. 그와 반대로 걸어가면서 내가 향한 곳은 한옥 마을이었다.

어스름한 시간.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경복궁에 도착하자 내게는 멋지게 느껴지는 궁의 모습들이 보였다. 초등학교 시절 배운 대로 '우아한 기와'와 '목재를 통한 자연적 건축'이라는 점은 내심 세계에서 최고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많은 중국인 여행객들과 드문드문 보이는 서양인들, 한복을 입은 어린 학생들까지 경복궁에는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그곳을 돌아다니면서 그는 왜 여기서 한국을 느끼지 못했을까에 대해 고민했다. 물론 느끼는 것은 주관적인 감정이다. 따라서 누군가는 이곳에 와 한국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내게 이 충격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내게 내재된 "자국의 우월성"이 훼손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별다른 소득 없이 경복궁을 나와서 광화문 쪽으로 향했다. 많은 음식점들과 차들을 지나치면서 깨달았다. 그가 왜 이곳에서 '한국'을 느끼지 못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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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여행 때 찍은 사진. 홍콩의 궁)
 

홍콩에 갔을 때 친구의 적극적 요구로 난리안 가든을 간 적이 있다. 더운 날씨에 인상을 쓰며 도착한 난리안 가든은 익숙한 느낌을 주었다. 정갈한 궁과 뒤에 보이는 푸른 산. 그리고 뒤로 보이는 고층 건물들까지. 기시감은 당연한 것이었다. 난리안 가든의 모습은 한국의 궁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나와 친구는 연신 '멋지다'라는 말을 하면서도 이곳이 '홍콩 같다'거나 '이색적'이라는 느낌은 받기 어려웠다. 홍콩 같다고 하기엔 궁의 모습은 한국의 궁과 유사했고, 이색적이라고 하자니 기시감이 들었다. 우리는 그곳을 한 시간 쯤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근처에 있는 유니클로에 가 더위를 식혔다. 그날 저녁은 맥도날드에서 산 햄버거였다.

전통이 재현된 곳을 벗어나자 바로 목도하는 것은 전통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현대식(오히려 서구식의) 건물들의 집합이었다. 조화를 미美로 삼는 동양식 건축물은 없었고, 존재하는 것은 서구식 음식과 서구식 건물들의 향연이었다. 그러니 그곳에 '홍콩 같다'거나 '한국 같다'라는 것이 없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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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공간이 재현된 곳을 다니면서, 주변은 전혀 전통스럽지 않은 곳을 목격하면서 여행자들은 '한국'에 대해 어떤 느낌을 받을까? 한옥을 한류 마케팅으로 이용해서 이른바 '건축 한류'를 만들겠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한옥의 공간을 재현하고 재창조해서 한국의 건축 미美를 세계에 알리고 또 다른 한류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우리의 한류가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외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것들이 한류에는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한류는 외국의 음악, 패션, 드라마를 넘어 외국인으로서 '공감할 수 없던 것'들을 '공감 할 수 있게' 되면서 받아들여진 새로운 문화 양식이다. '새로운' 문화 양식. 오직 겉모습만이 재현된 공간에서 전혀 전통스럽지 않은 문화의 부조리함을 그들은 새로운 문화 양식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단순히 재현하고 재창조하는 것만으로 그것은 우리 전통을 알리고 발전시키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문화의 진보는 더 나은 편리함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허울 좋은 외형은 금세 허물어지기 마련이다. 한국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우리 문화를 사랑한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고찰이 필요한 차례가 아닐까 싶다.


[김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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