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맥베스-King’s Choice’ [공연]

글 입력 2017.11.22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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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리뷰를 시작할까 고민 하다가 내가 이 극을 접했던 순서 그대로 되짚어 볼까 한다. 다시 연극을 관람했던 목요일의 추운 밤으로 돌아간 것처럼 말이다. 오랜만에 찾은 소극장은 여전히 어둑어둑하고 아늑했다. 가운데쯤의 꽤나 좋은 자리를 차지하니 배우들을 더욱 가까이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역시 ‘음악극’답게 왼편에는 음향기기들이 있었고 무대에는 큰 액자틀, 작은 액자틀, 거울, 테이블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 거울이라는 오브제의 역할이 인상깊었다. 거울 앞에 무릎 꿇은 맥베스의 쓸쓸한 뒷모습과 절망적인 앞모습 동시에 보여주어 관객이 한 인간의 모든 면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이 의도된 효과인지는 장담할 수 없으나 적어도 나에게는 매우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한편, 공연은 인상적인 도입부로 시작하였는데 음향효과와 더불어 배우분께서 맥베스의 주제곡을 직접 라이브로 불러주셨다. 이를 통해 초반부터 극에 몰입할 수 있었으며 극의 전반적인 분위기, 주제 등을 노래의 가사를 통해 유추할 수 있어서 내용의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 또한 이어지는 장면에서 음향 효과를 통해 맥베스가 들은 예언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기계와의 만남을 통해 다양하게, 한편으론 꽤나 기괴하게 변조된 인간의 목소리를 음미해 보는 것도 이 극의 재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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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가 예언을 듣고 난 뒤, 그는 의심하면서도 기대심을 갖게 된다. 거기에 맥베스의 부인은 마치 욕망의 화신과도 같아서 끊임없이 맥베스에게 욕망을 주입한다. 그리고 맥베스는 그런 아내에게 매우 의지하여 그녀의 꼭두각시처럼 보일 정도이다. 결국 맥베스는 왕을 죽이게 된다. 이 장면은 대사 하나 없이 희열, 두려움, 불안 등과 같은 다양한 감정표현을 통해 표현된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 이후, 그는 자신의 선택이 온전히 자신의 욕망으로부터 기인한 것인지, 타인의 욕망으로부터인지, 그저 예언에 등 떠밀린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번뇌하게 된다.

맥베스는 이렇게 불안정한 정신 상태로 인해 환청과 환영에 시달리게 되고 그럴수록 그는 더욱 더 아내에게 기대게 된다. 불안과 의심, 그리고 아내를 통한 위안, 이러한 양 극단을 왕복하면서 그는 점점 헤어나올 수 없는 굴레에 빠진다. 이미 먼 길을 왔기에 되돌아 갈 수도 없는 그 막다른 길에서 그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자기 자신에게 세뇌하는 것뿐이다. 결국 맥베스는 ‘왕이 된다’는 것을 마치 자신에게 거는 주문처럼 끊임없이 되뇐다. 마지막에 왕의 제복을 입고 아내와 함께 선 그는 행복했을까? 적어도 나는 그가 행복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끝까지 그는 자신의 선택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했고 자신의 진실된 내면과 마주하는 고통스러운 길에서 도망치는 것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극을 관람하면서 오로지 ‘나’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고 온전히 ‘나’의 욕망을 따라가야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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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극을 관람하며 배우 분들의 열연이 눈에 띄었다. 먼저 ‘맥베스’역의 정재원 배우님께서는 욕망하다가도 혼란스러워 하며 계속해서 갈등을 겪는 맥베스의 심리 상태를 잘 표현해 주셨다. 무대와 객석이 매우 가까워 몰입하는데 어려움을 겪으실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나 눈빛, 호흡, 몸짓 모두 흐트러지지 않는 고도의 집중력이 돋보였다. ‘레이디’역의 정성희 배우님 역시 매력적이고 고혹적이면서도 욕망으로 가득 차있는 캐릭터를 제대로 표현해 주셨다. 이러한 열연으로 인해 1시간 남짓의 비교적 짧은 공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알찬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추가적으로 좋았던 점은 극의 시간대를 알 수 없도록 하는 현대적 문물들의 등장이었다. 영주가 나오고 왕이 등장하기에 극의 배경이 까마득한 과거로 설정된 줄 알았으나 일기예보, 뉴스, 아이패드 등이 등장하여 시간의 경계를 흐린다. 이렇게 현대적 문물을 끼워 넣음으로써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관객들과 고전작품 사이의 간극을 좁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극의 전체적인 내용과도 잘 어울리도록 연출되어 현대 문물의 효과적 사용이었다고 생각된다.

반면 아쉬웠던 점은 극이 하고자 하는 말을 간접적인, 좀 더 연극적인 방식으로 소구 하는 것이 아니라 다소 직설적으로 전달했다는 것이다. 연극 시간이 비교적 짧다는 것이 요인일지는 모르겠으나 극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너무 쉽게 흘려 보내버린 듯한 느낌이 아쉬웠다. 관객들로 하여금 극의 의미와 주제를 전체적인 연극의 구성요소들과 은유적인 대사들을 통해서 느낄 수 있도록 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다시 말해, 현실을 비틀고 때론 덧칠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그 본질을 드러내는 연극의 묘미를 좀 더 살렸더라면 더 좋은 극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또한 새로운 음향효과를 시도하는 것은 좋았으나 예언을 나타낼 때 주로 쓰이고 기대한 것만큼 특별하거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번이 이러한 ‘음악극’의 첫 시도인 만큼 다음 작품에서는 좀 더 풍부한 음향효과의 활용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처럼 다소 아쉬운 점이 존재하기는 했으나 배우들의 열연과 더불어 인생의 선택에 대해, 자신의 욕망에 대해 생각을 하게 하는 연극이었기에 대학로까지의 발걸음이 아깝지 않은 공연이었다.


[차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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