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비가 내린다, 다르게 들린다 : 연극 < 스테디 레인 >

글 입력 2017.11.22 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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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서 만나는 리얼 느와르
<스테디레인>By. Keith Huff

출연

김수현, 이명행, 한상훈, 홍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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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view >


두 사람이 있다. 대니와 조이. 절친한 죽마고우이자 형사로 함께 진급하길 꿈꾸는 순경들, 그리고 거의 매일 저녁을 같이 먹는 가족 비슷한 사이. 그들 머리 위로 언제부터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극이 진행되는 내내 검은 하늘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비구름은 대니와 대니의 가족, 그리고 대니의 조이가 함께 지내는 집 지붕 위로 다가와 아예 뿌리를 박는다. 그렇다. 연극 <스테디 레인>은 지붕을 부술 기세로 쏟아지는 이 폭우에 관한 이야기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폭우에 관한 두 사람의 '대립하는 절규'다. 링 위에서 팽팽한 긴장 구도를 유지하는 선수들처럼 대니와 조이 스스로가 '거대한 폭우'가 되어 누수(漏水)처럼 말들을 쏟아낸다.
  
탁자 하나와 의자 두개. 그리고 두 명의 배우. 무대를 채우는 요소는 이게 전부다. 화려한 소품도 없고 눈에 띄는 연출도 크게 없고 오직 배우들의 말, 말, 말! 말들의 향연이다. 그래서일까. 연극이 끝나고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켜 관객석에서 빠져나오는 동안, 그 느낌이 내겐 마치 '중단편 소설' 하나를 읽고 난 후의 여운과 비슷하게 다가왔다. 활자들이 놓여 있는 페이지 위로 못 참겠다는 듯이 캐릭터들이 튀어나와,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각자의 삶을 변명하는 이야기. 불안과 회한에 잠긴 목소리로 말이다. '그럭저럭 잘 지나가던 하루하루'에 갑자기 부당하고 괴상한 덫이 놓여서는 순식간에 일상이 망가졌다고, 주인공들은 억울하다는 듯이 사연을 설명한다. 그들이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끔찍할 정도로 서늘하고 축축한 감정에 시달려야 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 Synopsis >

자칭 시카고 최고의 경찰이라 자부하며 언젠가 스타스키와 허치 같은 경찰이 될 것이라 믿는 ‘대니’와 ‘조이’는 성향은 전혀 다르지만 어렸을 때부터 늘 함께였다.

가장으로서 가족을 지키는 것이 최고의 가치인 대니는 시카고 뒷골목 창녀들의 뒤를 봐주는 대가로 포주들에게 흉악하게 굴기로 유명하다. 반대로 조이는 여인숙과 다를 바 없는 독신자 아파트에서 혼자 술을 들이키며 시간을 보낸다.

대니는 매일 저녁 혼자 사는 조이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이고 어느 날 저녁 자신이 돌봐주는 창녀를 조이에게 소개한다. 그 저녁식사 시간은 엉망이 되고 화가 난 대니는 그녀를 바래다 주러 갔다가 엉겁결에 그녀와 관계를 갖게 된다. 그리고 돌아 나오는 길에 포주 중 한명인 월터 일행에게 위협을 당하고 한 쪽 다리에 큰 상처를 입는다.

그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 대니의 가족들과 조이가 여느 때처럼 대니의 집에서 한가로운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 때 총알 한 방이 창문을 뚫고 들어온다.

이 사건으로 아직 걷지도 못하는 대니의 어린 아들이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고 이 모든 일이 월터가 저지른 일이라고 믿는 대니는 경찰 업무는 아랑곳 않고 법의 수위를 무시하며 월터를 쫓는다.

그 즈음 시카고의 어느 뒷골목으로 출동한 대니와 조이는 약에 취해 벌거벗은 어린아이를 마주한다. 그들은 신분 확인도 하지 않고 아이의 보호자라고 주장하는 남자에게 아이를 돌려보내고 몇일 후 아이는 시체로 발견된다. 두 경찰이 어린 아이를 연쇄살인범에게 돌려보냈다는 사실에 세상은 발칵 뒤집어지고 두 사람의 경력도 심각하게 위협받게 된다.

꼬리를 물고 쓰러지는 도미노처럼 계속해서 악화되기만 하는 상황 속에서 대니는 오로지 가족을 지킨다는 명목 하에 월터 일행만을 뒤쫓고 조이는 무너지기 직전인 대니의 가족 주변을 맴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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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대니의 가정에 총탄을 날린 그 '나쁜' 파괴자의 실체가 누구인지 추적하기에 바빴다. 대니와 조이, 두 남자가 서로 너무 성향이 달라 자주 충돌할 뿐이지 실제로는 한편이고 같은 상황에 처한 인물들인 줄 알았던 것이다. 같은 시련에 대항하면서 예비 형사들의 끈끈한 우정은 더 끈끈해지는 장밋빛 느와르물. 그러나 폭우가 거세지면 거세질수록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거센 빗줄기에 가려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제대로 서있기조차 힘들만큼 몰아친다.
  
극의 중반에 이르면서부터 관객들은 직감할 것이다. 대니와 조이가 처음부터 다른 노선을 달리고 있었음을 말이다. 서로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서로의 결점을 눈감아주면서 어떻게든 함께 상황을 역전시키려는 듯 보였으나, 결국은 자신의 욕망과 결핍을 달래기 위해 '각자' '일방적으로' 애를 써왔던 것이다. 죄책감 따위는 무시하면 그만이니까. 내가 옳다고 믿어버리면 금방 잊어버릴 수 있으니까. 연극 <스테디레인>은 바로 그 두 사람이 자초한 '비극'을 차가운 시선으로 따라가며 끝내 파국을 막지 못해 쓰러지는 인간의 누추함을 조명한다. 그들을 둘러싼 연약한 배경들까지 모조리 망가지는 것은 시간문제였고.
  
무지막지하게 내리는 비. 달라서가 아니라, 둘 다 틀렸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에게 폭우를 피할 수 있는 은신처가 될 수 없었다. 어떤 역할도 되지 못했다. 심지어 둘은 적도 되지 못했다. 그야말로 최악인 것이다. 그저 고함을 지르며 폭우의 한복판에서 엉망으로 구르는 것이 전부다. 함께 망가지든가, 한쪽이 사라져야 멈출 수 있다. 누군가가 있으면 누군가는 한 발짝 떨어져 있어야 하고, 누군가가 사라지면 누군가가 슬쩍 몸을 드러낼 수 있다. 이토록 기묘한 관계. 대니와 조이는 마음 속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혼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관계가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는 선'만 지키며 서로에게 끔찍한 애정을 품는다. 상실감이야 말로 그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악마'니까. ‘스스로의 선택이 옳아서 버림받지 않는 것’이 삶을 지탱하고 삶을 완전하게 만드니까. 탄식밖에 나오지 않는 어리석음이다. 심지어 이들의 자기모순을 합리화시키고 더 부추기는 장치가 ‘대니의 아내와 아이들’다. 대니의 재산이자 조이가 동경하고 갈망하는 대상. 그래서 '대니의 아내와 아이들'은 두 남자의 불가침한 성역인 동시에 유일한 삶의 동력으로 기능하고 역설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폭력에 직접 노출되는 참사를 당한다.
  
그렇다. <스테디 레인>은 대니와 조이의 평범한 삶을 위협한 불한당이나 그들이 놓친 살인마가 일으키는 균열과 불행에 대한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한 대니의 '강박증적 폭력'과 스스로를 오래 방치해서 성벽처럼 높아진 '방어심리'에 끌려가는 조이. 두 남자가 그저, 아주, 처참하게, 실패하는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대니와 조이 중 그나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정신 상태를 가진 인물이 '조이'처럼 보일 수 있겠다. 실제로 결말에서 조이는 그나마 평화로운 결말을 맞이하기도 하니까. 그러나 글쎄? 대니가 좀 더 끔찍한 유혈사태를 보여줬을 뿐 조이도 콤플렉스 덩어리인 것은 마찬가지다. 이 두 사람은 애초에 누군가와 함께 할 능력이 바닥인 존재들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런 존재들의 '비정상적으로 평화로운' 일상에 위협이 일어났으니. 재앙일 수밖에. 썩어가는 이빨을 드러내며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넣는 '기질'을 사정없이 발휘하는 두 남자를 보면서 한숨이 푹푹 나왔다. 서로 다른 성향의 인간이 잦은 충돌로 상처 입고 아파하는 정도의 얘기가 아니라, 완전히 갈라서는 길로 진입하며 신음하는 걸 지켜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연극은 이들이 어떻게 충돌하고 어떻게 삶에 버림받는지 ‘끝까지’ 설명한다. 대니와 조이는 혼자 힘으로 무너질 용기가 없는 자들이어서, 파괴된 것이다. 자기 얼굴을 한 악마를 목도하고 나서야, 지켜냈어야 하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직면하고 나서야 공포를 느끼는 어리석은 존재들.
  
두 인물을 보며 관객들은 할 말을 잃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이해할 수밖에 없어서 우리는 더 깊게 침묵할 것이다. 조롱 섞인 비웃음을 보내기엔 두 남자가 감내한 통증이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모든 것을 파괴해버린 대니나 파멸을 알면서도 주변을 서성거리기만 한 조이의 삶이 미화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철저하게 패배자다. 극의 마무리 부분에서도 알 수 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폭우가 멈추고 총탄이 날아와 박혀 난장판이었던 집이 깔끔하게 정비되었어도 어두운 분위기는 개지 않는다. 음산하다. 코니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던 대니의 '총'. 그걸 넘겨받은 조이 역시 대니처럼 어쩌면 스스로에게 총을 겨누는 운명으로 한걸음 다가선 걸지도 모른다. 지켜야할 것들을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는 길을 기꺼이 선택하는 광경. 너무 익숙하다.
  
자신의 곁에 ‘있어주는 것’이 ‘자기 것’이라고 믿는 버릇. 그것이 그토록 잔혹한 피비린내를 몰고 왔음에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신이 옳다고 믿고 사는 인간들. 씁쓸한 혐오감이 일었다. 나 역시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절대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할 테니까. 그러나 적어도 그 무거운 책임을 자발적으로 떠안은 조이는 제대로 알고 있을 것이다. 최후의 승리자처럼 호쾌하게 웃어젖힌대도 매순간 죄어드는 심장은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완전한 행복’을 위협하는 파멸의 씨앗은 바깥에 있지 않다. ‘행복은 완전해야 한다’고 믿는 내 안에 있다.
  
조이가 대니의 개를 데리고 조깅한다. 하늘은 태연하게도 참 맑은데 그가 내딛는 뜀박질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첨벙거리는 물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사라지는 뒷모습과 그의 긴 그림자가 마치 비를 가득 머금은 먹구름 같다.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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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디레인
- A STEADY RAIN -


일자 : 2017.10.27(금) ~ 12.03(일)

시간
평일 8시
주말 3시, 6시
월요일 공연없음

장소 : 아트원씨어터 3관

티켓가격
전석 40,000원

기획, 제작
노네임씨어터컴퍼니

관람연령
만 13세이상


[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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