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기억] #낯선 사람 #받아쓰기 #잠버릇 #죽음과 년도

2017.11.21 12.
글 입력 2017.11.21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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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낯선 사람


외할머니네에 있을 때였습니다.

저녁 찬거리를 사러 잠시 시장에 다녀오시려는 할머니는
날이 춥다며 집에 있으라고 하셨고,
요 전날 할아버지께서 사오신 엄청 큰 과자 한 봉지가 있었기에
기꺼이 알겠다고 했었지요.

혼자 있을 손녀가 걱정되어
낯선 사람에게는 문을 열어주면 안 된다며
몇 번이고 강조하시고는 외출하셨어요.

할머니가 나가시고
문에 달린 모든 잠금 장치를 이용해 단단히 걸어 잠근 후
거실로 뛰어가 과자와 함께 티비를 시청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가 벨을 눌러왔어요.

텅 빈 집에 울리는 벨소리는
할머니는 아니다.
할아버지께서 오실 시간도 아니다.
그렇다면 낯선 사람이구나
라는 판단까지 빠르게 도달하게 만들었어요.

조심스레 일어나 인터폰을 확인하니
푸른 화면에 모자를 눌러쓴 누군가가 보였어요.


누구세요?


아저씨가 화장실이 좀 급해서. 문 좀 열어줄래?


응? 뭔가가 이상했어요.
할머니네 집은 6층이었고요.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세 방향으로 뻗은 복도 중 제일 안쪽 복도였으며
끝에서 두 번째 집이었어요.

왜 굳이 여자 아이 혼자 있는 집에 와서 화장실을 가려는 걸까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의 판단치고 꽤 똘똘하지 않았나요?
하지만 곧 어린 아이의 면모를 드러내고 맙니다.


저희 할머니가 모르는 사람한테 문 열어주지 말랬어요..!


그 당시에는 꽤나 단호하고 분명하게 이야기 했다고 생각했지만
저 말은 아이가 혼자 있음을 분명하게 드러냄과 동시에
혹시나 그 낯선 이의 심기를 건드릴 수도 있는 말이었어요.

다행스럽게도 그 말을 들을 모자를 쓴 그 사람은
집 앞에 잠시간 머물다 떠났어요.

그리고 저는 태연하게 다시 과자를 먹으며 티비를 보며
할머니를 기다렸답니다.

물론 돌아온 할머니께는
낯선 사람을 용감하게 퇴치한 영웅담을 의기 양양하게 들려드렸구요.


그날 그는 왜 온 걸까요? 





#51 받아쓰기


두 번째 초등학교에서는
매주 월요일에 받아쓰기 시험을 보았습니다.

고작 10문장의 시험이지만
어쩜 그렇게 헷갈리고 어려운 맞춤법의 문장들만 모아놨는지
매주 아이들이 질색하게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틀리면 한 문장당 10번씩이나 써야 하니,
문장의 마침표 하나 찍는 것을 잊어버린 날이면 억울함에 입이 툭 나와버리고 말지요.

다행스럽게도 책을 꾸준히 읽어온 덕택에
저는 받아쓰기를 줄곧 만점을 받을 수 있었고
어쩌다 보니 아이들의 받아쓰기 채점 담당이 되었어요.

선생님이 할 일을 왜 학생에게 시키느냐고
누군가가 묻기도 하겠지만
사실 그 시간이 참 좋았어요.

방과 후에 선생님은 남은 업무를 하시고
저는 교실 앞에 앉아 채점을 해요.

교실의 모든 창으로 오후의 노란 빛이 들어와
나무 바닥, 나무 책상과 의자와 만나
온 교실이 따뜻한 색이 될 때,
그때가 그 시간의 기분이었지요.


말수 없는 아이가 친구들과는 잘 지내는지 물어오는 선생님의 질문에,
아이들의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답지 않은 수다를 떠는 선생님의 말들에
짤막한 대답뿐이 하지 못했지만,
이런 시간을 내어 들여다봐주시는 선생님의 마음만큼은
길게 남아 이렇게 글로써 마침표를 찍어봅니다.






#52 잠버릇


큰 이모네에 있을 때면
항상 1살 많은 사촌 언니의 침대에서 둘이 자곤 했습니다.

누가 침대 안쪽에서 자느냐는 매일의 화두였는데,
대개는 가위바위보로 정해졌지요.

가위바위보에 취약한 역사는 이때부터였는지는 몰라도,
항상 졌기 때문에 침대 바깥쪽은 항상 저의 차지가 되었어요.

문제는 끝 쪽에서 자는 아이의 잠버릇이 아주 험했다는 것입니다.

넓지 않은 침대에서 둘이 잔다는 사실만으로도
바깥쪽의 누군가가 떨어질 확률이 커지지만,
눈만 감으면 이리저리 굴러다녔던 아이에게는
아침은 항상 차가운 침대 밑에서 시작되곤 했어요.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한 첫 번째 시도는
제가 안쪽에서 자는 것이었습니다.

안쪽에서 잠이 든 다음날.
어김없이 바닥에서 눈을 떴습니다.
언니를 넘어 침대 밑으로 떨어진 것이었죠.

첫 번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뒤
새롭게 생각해낸 두 번째 시도는
침대 옆에 피아노 의자를 두는 것이었습니다.

공간이 좀 더 늘어났으니
의자를 지나 바닥으로 가진 않겠지 하는 생각이었지만
다음날도 또 바닥에서 눈을 뜨게 되었지요.

마지막 시도는 피아노 의자 옆에
언니의 책상 의자, 오빠의 책상 의자를 붙여놓는 것이었습니다.
등받이가 있는 의자였기에 굴러가는 저를 막아주길 기대하며 말입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피아노 의자 위였습니다.

한 바퀴 굴러갔지만
두 바퀴 구르려니 의자가 막고 있어,
피아노 의자 위에서 멈췄었나 봅니다.

그 다음부터 우리의 취침 준비는
집안의 의자들을 주섬주섬 가져오는 것부터 시작되었죠.

신기하게도 지금은 잠버릇이 사라져,
거의 한 자리에서 얌전히 자게 되어 참 다행이에요.






#53 죽음과 년도


새로운 개념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평생에 걸쳐 일어나는 일이겠지만
어린 시절에는 특히나 많은 것을 배우며
깨닫게 됨으로써 충격을 받았던 일이 많았어요.

대표적으로 죽음과 년도가 두 가지가 있는데,
우선 죽음보다 작은 충격을 받았던 년도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해요.


유치원 때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새해가 다가오는 시점에
내년의 나에게 편지를 쓰는 활동을 하게 되었어요.

양식이 정해져 있는 편지지를 선생님께서 나누어 주셨고,
가장 처음에 써야 하는 빈칸이 년도였지요..

올해가 2003년이니
내년은 2004년 이겠지요?

하고 화이트 보드에 글씨를 써주시는 선생님을 따라
2004를 적는데 갑자기 의문이 들었어요.

아니 왜 2003 다음이 2004가 되지?
년도가 뭐길래 숫자를 4개나 적는 거지?
나는 7살이고 선생님은 나이가 더 많은데 왜 똑같이 2004이지?

다급히 선생님을 불러 물으니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하기로 정한 것이라고 일러주셨어요.

사실 그 설명을 듣고서도 잘 납득이 가진 않았지만
엄청 많은 사람들이 저렇게나 긴 숫자를 같이 쓰기로 했다는 것이
꽤나 신기한 개념이었답니다.


죽음의 개념은 년도보다도 훨씬 큰 충격과 슬픔과 두려움을 가져다 주었어요.


죽는다는 것은
단순히 많이 아픈 것 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아주 사라지는 것으로,
사라지면 다시는 볼 수 없고
볼 수 없으면 너무나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었지요.

스스로가 죽는다는 사실도 무서웠지만
가족이 죽어서 사라질까, 보고 싶어도 못 보는 것이 가장 두려웠어요.
밤에 잠 못 들고 훌쩍이며 엄마를 찾기도 했으니까요.

우는 저를 안아 달래며
사람은 누구나 죽을 수 있지만
엄마는 오래오래 살 거라는 늦은 밤의 말을 마지막으로
이 때문에 눈물을 흘렸던 일은 아주 나중의 일이었습니다.


아직도 누군가의 죽음이 두렵지만
이제는 죽음 이전의 것을 생각하려 노력합니다.
함께하는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많이 보고 대화하며 사랑하는 것 말이지요.











전문필진 명함.jpg

 
[정연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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