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본질’의 해답은 어디에, -연극 '비평가' [공연]

글 입력 2017.11.2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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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한 연극이 초연된 날, 평론을 고심하며 쓰고 있던 비평가 ‘볼로디아’의 집에 연극의 극작가 ‘스카르파’가 와인 한 병을 들고 찾아온다. 스카르파의 연극은 늘 대중에게는 극찬을 받았지만, 볼로디아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늘 그에게서만은 혹평을 벗어나는 법이 없었던 것이다. 방문을 탐탁치 않아 하는 볼로디아에게 스카르파는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비평할 것인지 눈 앞에서 직접 보고 싶다고 말한다.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얘기하지만, 사실상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최초의 호평을 써 줄 것을 암묵적으로 부탁하는 것일 테다.) 볼로디아는 냉정한 자신의 관점을 유지하려고 하고, 매달리다시피 하면서 자신의 작품에 대한 평가를 직접 보고 싶어 하는 스카르파 앞에서 짧은 비평문을 몇 줄 적는다. 그것은 역시나 혹평이었고, 스카르파는 거의 부정에 가까울 정도로 그 평론을 탐탁치 않아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부터 두 사람, 작가와 비평가 간의 치열한 논쟁이 시작된다. 호평을 듣고 싶은 극작가, 그리고 냉정한 혹평을 유지하려는 평론가 간의 견해 차이가 희곡에 대한 철학적 논쟁으로까지 번지게 되는 것이다.

 이들의 첨예한 대립은 이윽고 극작가 스카르파가 자신의 작품 대본을 등장인물에 이입하여 따라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면서 심화된다. 두 사람은 작품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이 되어 대사를 읽어 내려간다. 바로 이 지점에서 ‘비평가’의 극중극 구조가 드러나게 되는 것인데, 이 희곡 작품이 볼로디아와 스카르파의 현 상황을 그대로 투영하며 그들은 작중 인물들을 통해 항변을 끊임없이 거듭하게 된다. 각자가 생각하는 연극에 관한 철학적 견해, 연극은 현실과 어떤 관계에 놓여야 하는가 등의 문제가 그들이 주고 받는 논쟁의 주된 화두이다.

 그리고 결국, 스카르파는 사실 볼로디아의 평에 늘 충실하며 볼로디아의 관점에서 보기에 더 나은 연극을 만들고자 노력해 왔다는 것, 그리고 볼로디아는 다른 극작가들에게서와 달리 스카르파에게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의 차기작을 기대해 왔다는 것을 서로에게 분노 섞인 목소리로 털어놓기에 이른다. 그들은 한번도 서로의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지만, 작품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교감하고 서로 나름의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렇게 극 중 스카르파의 작품 자체와 현실과 희극의 관계와 역할, 그리고 더 나아가 극 중 스카르파의 희곡이 가진 뒷배경에 대한 화제까지 그들의 논쟁은 계속되지만, 끝내 타협 없이 중단되어 버린 논쟁의 상황 속에서 볼로디아가 나가버린 방 안, 스카르파가 자신의 연극에 대한 비평을 스스로 전하는 것으로 연극은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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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가’는 역시 예상한대로, 결코 온전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희곡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연극이 사회 속에서 해야 할 역할을 이 작품을 보고 나면 알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품은 채 관람했지만, 관람 후 극장을 나서는 내 손에 이 작품이 쥐어준 것은 해답이 적힌 정답지가 아니라 또 다시 물음표로 문장을 끝맺는 질문지였다. 그런 점에서 ‘비평가’는 결국 관객 스스로 답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어떻게 보면 일종의 문답법과 같은 연극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렇게 결국 나는 해답을 온전히 찾지 못했다. 연극의 ‘본질’은 여전히 내게 알 수 없는 물음표로 남은 것이다. 하지만 이 연극이 단순히 그 자체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관객에게 이런 류의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관객이 스스로 그에 대해 작품이 상연되는 내내 사유해보게 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는 것은 이 작품이 지닌 큰 성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더 친절한 작품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함께 남기도 했다. 특히 극 말미에 여성 인물의 배경에 대한 스카르파와 볼로디아의 대립이 진행될 때 개인적으로 이 이야기를 제 속도로 따라가기 벅차다고 느꼈다. 두 사람 사이에서 그렇게 큰 논란거리가 되는 그 여성은 과연 어떠한 존재이길래, 그리고 이 작품에서 어떤 의미이길래 이 극을 마무리 짓는 일종의 촉매제로 작용하게 된 것인지에 대한 작품의 설명이 관객에게는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관람 후 함께 갔던 일행과 그 여성 인물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좀 더 이해하고자 노력했지만, 해석이 각각 달랐고 혼란만 더해질 뿐이었다.

 결론적으로, ‘비평가’는 다방면에서 생각할 거리를 묵직하게 쥐어주는 연극이었다고 평할 수 있겠다. 작품 자체는 한 번 관람하는 것만으로 이해가 다소 힘들고 관객으로 하여금 또 다른 의문을 품게 하는 불친절함이 존재했다는 것이 단점이지만, 평소 논문으로만 접하던 ‘메타 비평’의 형식을 극으로 옮겨놓았다는 것, 그리고 2인극 특유의 긴장성을 통해 내내 밀도 있는 극을 완성해냈다는 점에서 내가 이전까지 관람했던 연극들과 다른 특별함을 느낄 수 있었다.

 과연 연극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나는 이번에도 해답을 찾지 못했지만, 적어도 이 작품의 관람을 통해 연극의 본질에 대한 이 질문은 내 뇌리에 깊이 박혀, 꽤 오랫동안 사유하게 될 수 있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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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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