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 겨울, 큐슈 -1 [여행]

글 입력 2017.11.20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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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살만한 날씨였던 것 같은데, 이제는 정말 목도리를 휘감고 외투를 꼭꼭 여며야 할 정도로 추워졌다.

날이 추우니 자연스럽게 따듯한 곳이 그리워졌다. 목도리도 필요 없고, 따사로운 햇살에 입고 있던 외투를 훌렁 벗어버렸던 그곳이 문득 떠올랐다. 작년 겨울, 처음으로 친구와 둘이 떠난 큐슈는 춥지도, 덥지도 않고 포근하고 따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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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열도를 구성하는 4대 섬 중 가장 남쪽에 있는 섬, 도쿄보다 부산이 더 가깝다는 그 섬, 그 섬이 바로 큐슈다. 작년 1월, 나는 친구와 함께 그 따듯한 섬으로 떠났다. 여행은 언제나 떨리고 긴장되지만, 가족을 제외한 누군가와 처음으로 함께 떠나는 여행이었기에 더 특별하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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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가 간 곳은 큐슈 전 지역이 아닌 기타큐슈의 몇 개 지방이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기타큐슈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후쿠오카였다. 하카타 공항은 후쿠오카 시내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공항에서 하카타 역까지 가는 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지만, 예약해둔 호텔까지 어떤 버스를 타고 가야 할지 몰라 헤매다 보니 뱃속에는 허기만 가득했다. '맛있는 걸 많이 먹자.' 함께 떠나면서 우리가 했던 다짐은 하나였다. 맛있는 걸 먹자, 될 수 있는 한 많이. 그런 목표를 가지고 후쿠오카 시내에 도착한 우리의 첫 선택은 한국에서도 후쿠오카 함바그로 잘 알려진 '키와미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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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비행기를 타고 도착해 오픈 시간 전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앞에는 이미 웨이팅을 하고 있는 손님들이 꽤 있었다. 조금은 긴 기다림 끝에 자리에 앉은 우리 앞에 동그란 철판이 도착했을 때는 감동이 밀려 왔다. 뜨거운 철판에 깔린 노란 달걀 위로 뿌려진 소스가 자글거리며 내는 그 맛있는 냄새와 동그랗게 뭉쳐진 고기의 비주얼은 정말 환상 그 자체였고,고기가 뜨거운 돌 위에 앉을 때마다 내는 치지직 소리는 그 순간만큼은 성당에서 들리는 종소리와도 같았다. 누군가는 기대에는 못 미쳤다고 혹평한 그 메뉴는 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에게는 정말 천상의 음식이었다. 특히 식사가 끝난 후 제공되는 그 소프트아이스크림의 맛을 나는 절대로 잊을 수도 없고, 다른 곳에서 다시 맛볼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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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친 우리는 특별한 목적지 없이 이곳저곳을 쏘다녔다. 쇼핑센터를 돌아보기도 하고, 골목마다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 골목 골목을 다 헤집고 다니기도 했다. 우리 둘 말고는 우리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 코트 하나만 입고 있어도 포근함이 느껴지는 그곳에서는 그래도 될 것 같았다. 뼛 속까지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가 아닌 기분 좋은 시원함이 전해오는 바람과 그 푸른 하늘 아래에서는 그렇게 자유를 만끽하고 있어도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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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텐진 거리를 쏘다니던 우리는 다시 하카타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사실 그 전에도 일본에 와본 적이 있었지만, 버스를 타 본 적은 없기에 정신을 바짝 차릴 수밖에 없었다. '잘못 내리면 어떡하지?' 걱정하던 것과 달리 제대로 내려야 하는 곳에 내렸던 것 같다. 아니, 좀 전에 내렸나? 사실 잘 모르겠다. 꽤 많은 거리를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했던 것 같은데, 그게 우리가 잘못 내렸던 것이었는지 아니면 원래 그곳에서 내려서 그만큼을 걸어야 했던 것인지. 그렇지만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여행을 하러 간 것이었고, 그건 우리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모두 뜻깊고 추억이 될 일들이었다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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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도착한 곳은 하카타의 캐널시티였다. 크고 신기하게 생긴 건물과 분수 쇼를 했던 곳, 사실 그것 외에 딱히 큰 특징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곳에서 먹은 라멘이 엄청나게 맛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한국에서도 몇 번 라멘을 먹자고 권할 때마다 번번이 거절하던 친구였기 때문에 조금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의외로 일본에서 먼저 라멘을 먹자고 한 것은 친구였다. "일본까지 왔는데, 라멘은 먹어봐야지." 그런 그녀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게 하려고 선택한 것이 캐널시티의 '라멘 스타디움'이었다. 일본 전 지역에서 유명한 이치란의 본점이 후쿠오카에 있지만, 왠지 맛이 없으면 바로 가게를 빼야 한다는 '라멘 스타디움'에서 한 곳을 골라가는 것이 더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 뽀얀 고깃국물에 동동 뜬 아지타마고는 그야말로 환상이었고, 걱정과는 달리 친구 역시 자기가 좋아하는 제주도 고기 국수 맛이라며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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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멘으로 통통해진 배를 이끌고 우리는 또다시 캐널시티의 이곳저곳을 누볐다. 고작 쇼핑몰인데 규모가 얼마나 큰지 그 안에서 길을 잃기도 하고 다리가 아프다며 쉬었다 가기도 하다 분수 쇼를 보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위로 솟았다 아래로 꺼졌다 하는 물줄기가 뭐가 그렇게 예쁘다고 한참을 앉아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마 그 따듯한 날씨에 물방울마저 포근하게 느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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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굉장히 빡빡한 일정이었다. 그 후 우리는 곧바로 야경을 보기 위해 후쿠오카 타워를 향해 떠났다. 후쿠오카는 작은 도시라 지하철이 발달해있지 않았기 때문에 역시 버스를 타고 가야 했는데, 버스 정류장이 매우 멀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우리는 밤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소리와 번쩍이는 간판에 쓰인 글씨를 제외하고는 한국과 다를 바가 없어', 친구는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그렇게 말했다. 사실 나는 그래서 그곳이 좋았다. 아예 낯설지는 않지만, 와본 적 없고 나를 아는 이도 없는 그곳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하쿠의 세상 같았고, 정신을 차리면 깨버릴 꿈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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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밤거리를 정말로 하염없이 걸었다. 중간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깜깜한 골목으로 들어가 조금 두려웠던 기억이 난다. 분명 그 길 말고 다른 길이 있었을 것 같은데, 구글 지도가 우리에게 안내한 길은 정말 이상했다. 정말 평범하지 않았고 평범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후엔, 다시 한참을 기다려 버스를 탔고, 한참을 버스를 타고 달려 후쿠오카의 해변에 도착했다. 시간이 늦어 '마리존'은 이미 불이 꺼져있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우리 말고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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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아직도 그 고요한 해변이 생생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이 흐려질 만도 한데, 어째서인지 그 해변만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곳은 고요하고 평화로운 암흑이었다. 사실 친구는 낮의 해변을 보고 싶어 했다. 어쩌면 그래서 그 해변이 계속 떠오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밤에 방문한 해변이 너무 좋아서 시간이 나면 꼭 낮에 다시 오자고 했지만, 결국 돌아가는 날까지 틈이 나지 않아 그 해변을 다시 방문하는 일은 없었고, 나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곳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변을 뛰어다니고 나뭇가지로 모래사장에 이름을 새기고, 사진을 찍는 우리의 모습이 그려진다. 마음 한쪽을 따듯하게 하는 그 순간을 상상하면서, 나는 오늘도 그곳을 그리워한다.





PHOTO BY. J.UKJIN


[정욱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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