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빼빼로데이’에 대한 작은 기억들 [문화 전반]

글 입력 2017.11.20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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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없이 바쁜 일상 속에서 어느새 빼빼로데이가 9일이나 지나버렸기에 이제 와서 이 글을 적기가 괜히 멋쩍다. 하지만 이왕 떠올린 빼빼로데이의 추억을 그대로 다시 묻어버리기는 아쉽기에 아직 다 먹지 못한 빼빼로를 오독오독 씹으며 이 글을 마무리해보고자 한다. 빼빼로데이는 확실히 천재적인 마케팅의 산물이 맞다. 11월 11일, 정말 별 의미 없던 날에서 전국민이 빼빼로를 먹는 날이 되어버리다니 다시 생각해봐도 대단한 상술인 것 같다. 그러나 이 날은 확실히 ‘초딩 시절’ 또래 문화의 일부이기도 했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빼빼로 쇼핑을 하던 기억이 난다. 마트 한 가운데에 산더미처럼 쌓인 각양각색의 빼빼로 중엔 ‘정품’ 빼빼로로 있고 뚱뚱한 모양, 길쭉한 모양, 딸기맛, 바나나맛 등등 별 특이한 것들도 많았다. 그 주위를 몇 번이고 빙글빙글 돌면서 어떤 빼빼로를 살까 한참을 고민하곤 했었다. 빼빼로를 고르는데 시간이 좀 더 걸렸던 이유가 있기도 했다. 대부분의 빼빼로 과자들은 맛이 있는 편이었지만 ‘짝퉁’ 빼뺴로 중에선 간혹 오래된 재고였는지 영 텁텁하고 쾌쾌한 맛이 났던 것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혹은 직접 만들기도 했었다. 어설픈 솜씨로 초콜릿을 녹여 참깨스틱에 묻힌 뒤 곱게 포장을 하면 마음이 꽤나 뿌듯했다. 물론 결국에는 손이며 주방이며 온통 초콜릿 범벅을 해놓아 엄마 눈치를 살펴야만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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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서 샀든 고사리손으로 서툴게 직접 만들었든, 맛있는 빼빼로가 가득 든 쇼핑백을 들고 등교할 때는 학교 가는 길이 평소보다 한층 즐거웠다. 하지만 교실에 들어서면 그 때부터 누가 얼만큼의 빼빼로를 받았느냐를 두고 은근하면서도 꽤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곤 했다. 그래서인지 학교에서 빼빼로 교환을 금지하기도 했었다. 그랬던 와중에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빼빼로가 하나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한 남자아이가 여자친구를 주겠다면서 여러 개의 빼빼로를 이어 붙여 자기 몸통만한 하트 모양을 만들어 가지고 온 것이었다. 아마 어린 마음에도 꽤나 열렬했던 사랑이었나 보다. 그 큼지막한 것을 교실 바닥에 턱 하니 내려놓던 그 남자애의 의기양양한 표정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아마 그것을 받은 친구는 그 날 하루 종일 주목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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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나름대로 열렬히 챙기던 빼빼로데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무슨 무슨 데이’ 따위는 시시해지는 나이가 되고 한동안은 ‘빼빼로데이 같은 거 다 상술일 뿐이야’라며 무시하고 지나쳐왔다. 그러나 남자친구가 생기고 빼빼로데이가 다시 돌아왔다. 물론 이런 자잘한 ‘데이’는 안 챙기고 넘어가는 쿨한 커플들도 많다던데 과자 같이 단 것들을 워낙 좋아하는 나로써는 왠지 조용히 넘어가기 아쉽기는 했다. 게다가 이제 과자를 교환하는 날이라기 보다는 연인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날이라는 의미까지 더해지니 은근히 신경 쓰여 그냥 지나치긴 어려웠던 것이다. 다른 성인 커플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빼빼로데이는 어느새 ‘정통’ 빼빼로의 제조사뿐만 아니라 각종 크고 작은 제과점의 대목이 되었다. 성인들이라 그런지 돈 쓰는 씀씀이도 초등학생 시절과는 달라 하나에 천원 내외인 빼빼로보단 마카롱이나 쿠키, 수제 빼빼로 등을 더욱 잘 팔린다. 어찌나 인기가 있는지 조금이라도 이름난 제과점이면 추운 날씨에도 1시간씩 줄을 서기도 한다. 정말 한 가득 만들어두어도 오후가 되기 전에 동이 날 정도이다. 고사리 손으로 빼빼로를 고르던 꼬마들이 커서 이렇게 통 큰 손님으로 돌아온 것이다. 나 역시 그런 곳을 가볼까 하다 2시간 기다려 겨우 샀다는 말을 듣고 빠르게 포기해버렸다. 대신 다른 가게들에서 수제쿠키, 카라멜 같은 작은 것들을 이것저것 사모아 수줍게 전해주었다. 그러자 빼빼로데이는 챙기지 않아도 된다던 남자친구 역시 온 얼굴에 은근한 미소를 띠더니 주섬주섬 각종 빼빼로를 꺼내놓았다. 우리 둘은 마치 ‘초딩 시절’로 돌아간 것 마냥 한참을 키득댔다.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정신 없이, 별 의미 없이 흘러가는 듯한 나날들 속에서 작게나마 이렇게 의미를 가지는 날이 있다는 것도 썩 나쁘진 않은 것 같다. 혹은 빼빼로데이 덕분에 소비를 통해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한다는 꽤나 거창한 핑계를 대보기도 한다. 어쨌든 작은 선물로 기분 좋아질 수 있는 날,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달콤한 것을 나누어 먹으며 한번 웃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니 빼빼로 회사의 상술 정도는 그냥 눈 감고 지나가볼까 한다. 그리고 올해도 빼빼로는 특유의 오도독, 하는 소리와 함께 어릴 적 먹던 그 맛처럼 여전히 참 달고 맛있었다.


[차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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