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올해의 작가상 - 박경근 [시각예술]

인간의 조건에 대하여
글 입력 2017.11.20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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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

우리는 하나였다. 밥을 먹을 때도, 걸어갈 때도, 인사할 때도, 잠을 잘 때도 하나였다. 왜 그렇게까지 하나가 되어야 했냐고 묻는 사람도 없지만, 만약 묻더라도 나는 대답할 수 없다. 원래 그런 곳이니까.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나는 그런 압박이 끔찍하게 싫었다. 당장이라도 이곳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내 머릿속에서만 맴돌 뿐 행동이 되지 못하고, 여전히 내 몸은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정말이지 나다운 선택이었다.

그날은 태양이 뜨거웠다. 살이 녹아버릴 수 있다는 말이 오늘 날씨와 잘 어울렸다. 모자 속으로 흐르는 땀이 머리카락 사이사이를 지나는 것이 느껴진 것이 얼마 되지 않아, 땀으로 가득 찼다. 모자의 가장자리가 땀으로 흥건했다. 모자를 비집고 흘러나오는 땀이 얼굴을 따라 눈으로 들어가고, 콧등을 간지럽혔다. 하지만 땀을 닦을 수는 없었다. 시선은 전방 45도를 유지하고 앞에서 외치는 누군가의 말에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은 신경은 손가락 끝까지 힘을 바짝 주는 데 사용했다. 가만히 있는 것이 이렇게 힘들었던가? 맨날 뛰어다니던 우리 집 강아지한테 가만히 있으라고 했던 것이 내심 미안했다.

경례!

포성처럼 울리는 조교의 한 마디에 수백 명이 일제히 손을 올렸다.

다시!

곳곳에서 원망 섞인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 탄식은 규칙과 체계로 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탄식과 날카로운 눈초리가 향한 곳에, 한 아이가 서 있었다. 그 아이는 남들보다 늦게 손을 올렸고, 손가락 끝에 힘도 없었다. 그 아이 때문에 우리는 다시 경례를 해야 했고, 탄식은 체계를 지키지 못한 누군가에게 향하는 것이었다.

전날 밤, 그 아이를 본 기억이 있다. 그 아이가 속한 방에의 아이들은 팔굽혀펴기로 벌을 받고 있었다. 아이는 힘에 부쳤는지 팔이 꺾이고 무릎이 땅에 닿아 같은 방을 쓰는 동료들에게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있었다. 지금과 같은 탄식을 온몸으로 받고 있었다. 때문인지 나는 그곳에서 그 아이만 보였던 것 같다. 떨리는 그의 팔이 애달팠다.

며칠 뒤 그 아이를 봤다. 같은 걸음으로 걷는 무리 속에 있었는데, 어쩐지 땅만 보고 걸었다. 아니, 땅만 보고 걸을 일 밖에 없어 보였다.

아이는 그렇게 '하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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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

관객들은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에 종속한다. 물론 써니킴의 작품 역시 그러한 경향이 있었지만, 박경근은 자신의 경험을 관객들에게 어필하는 색이 짙다. 더 자극적이고, 쉽게 각인될 수 있는 이미지들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가령 총이나, 어지럽게 놓인 전선, 푸르고 음산한 조명, 그 사이에 있는 강렬한 조명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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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전시장을 지나 눈앞에 마주한 것은, 박스와 그 안의 징그럽도록 가득한 전선과 K2소총이었다. 큰 박스에는 전선의 연결 단자가 가득했고 여기서 나온 전선이 총에 하나하나 연결되어 있었다. 빨강, 노랑, 검정이 복잡하게 뒤섞이며 도드라진 모습이 지나치게 강렬했다. 오히려 총보다도 강렬했으니까. 이 모습이 마치 생물 교과서에서 본 두뇌와 신경계의 모습처럼 보였다. 뇌가 박스이고, 전선을 타고 신경 물질이 전달되어 총이 움직이는 구조다. 즉, 박스가 모든 것을 조종한다. 징그럽다고 느낀 이유는 아마 이러한 이유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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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어두운 공간 속에서 오직 네모 박스만이 밝은 조명을 받으며 도드라졌다. 박스를 제외한 나머지 공간을 계속해서 바뀌는 푸르고 약간은 붉은빛이 넓은 공간을 감싸고 돌았다. 한쪽 벽에는 지금 서 있는 관객의 그림자가, 반대편에는 총의 그림자가 웅장한 척 흐릿하게 서 있었다. 헌데 이 그림자들이 생각보다 부담스러웠다. 빛이 퍼지는 성질에 따라 그림자는 실제 크기보다 훨씬 크게 보였는다. 이것이 한쪽 벽을 가득 채웠을 때,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누군가 나와 내 행동을 지켜본다는 불안함과 동시에 나 스스로가 지나치게 커졌다는 불편함이 가득했다. 실수를 한 것처럼 당황스러웠다. 이것에 관해 누구도 신경을 쓰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나 스스로가 의기소침해지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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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미지들의 조합은 내 머릿속을 떠다니며 나를 어지럽게 했다. 음산했고, 불안했으며, 해소되지 않은 갈등으로 가득 찼다. 다 봤다고 생각하며 공간을 나설 때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총이 움직였다. 본래 총구는 하늘로 향해 있었다. 이것은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헌데 갑작스럽게 총이 돌아가며 총구가 내 쪽으로 향했다. 공격할 것이라는 의사를 나타낸 것이다. 놀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총구가 돌아갔다. 계속해서 총이 돌아가는 모습은 차라리 쇼(show)에 가까웠다. 5분 정도가 지났을까? 나는 총이 돌아가는 각도가 일정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기계는 설계에 따라 정확하게 움직인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것은 의도적으로 일정하지 않게 설정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총들은 하나처럼 움직였으나, 여전히 ‘하나’의 총이었던 것이다. 만약 이것이 군대에서 펼쳐지는 제식훈련과 같은 쇼라면, 약간의 각도 차이는 집단과 규율 속에서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인간미, 반항심, 자유, 실수, 능력 부족과 같은 것이겠지. 모두 같은 총이라고 생각했던 차가운 것들 사이에 만들어진 불규칙하고 모자라 보이는 간격이 나에게는 어쩐지 따뜻하게 다가왔다. 어쩌면 그것은 아스팔트 사이에 핀 민들레 하나가 아름다웠던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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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먼저인가? 닭? 달걀?]

닭이 먼저일까? 아니면 달걀이 먼저일까? 이 질문을 가져와 이곳에 적용하면 이렇게 바꿔 질문할 수 있겠다.

체계가 먼저일까? 아니면 체계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먼저일까?

작품의 가운데 서면 한쪽에는 총이, 다른 한쪽에는 내 그림자가 있다. 그리고 정면에는 위압감마저 드는 박스가 있다. 그 가운데 서 있노라면, 스핑크스처럼 박스에게 질문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스핑크스 이야기처럼 ‘사람’이라고 대답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커다란 시스템과 규율, 규칙, 법규 등 수많은 체계에 둘러 싸인 우리의 삶은 공동체라는 명목 아래에서 맞춰야 할 것과 개인의 역량으로 남겨두어야 할 것들의 끊임없는 대화를 지속한다. 그 체계라는 것에 대하여 옳고 그름이나 순서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함께 사는 세상에서 그것은 분명 필요한 것이니까. 다만, 대화를 거부하는 체계들이 있다. 그리고 그 체계 안에서 개인의 차이는 사라져야 할 것에 불과하다. 즉, 개인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작가는 이것에 불만을 느끼고, 현실에서의 인간의 조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비록 배경이 군대 생활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거울 내장: 환유쇼’를 군대라는 장황하고 남성 중심적인 단어들로 끌고 갈 수만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품을 이루는 요지가 단순하게 군대에 대한 비판이 아닌, 체계와 인간의 조건 사이의 ‘문제의식’이기 때문이다. 

박경근은 그 문제의식을 작품에 잘 녹여냈다. 시각과 청각언어를 사용해 관람객의 감정을 유발했고, 실제로 나는 그 안에서 무언의 두려움과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무엇보다 이것이 정답이나 기준을 제시하는데 이르지 않았다.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나는 작가가 정답을 제시했다면 실망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부끄럽지만, 나는 이것이 지금 미술이 가지는 소명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공정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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