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가족 속 잊혀졌던 개인의 얼굴을 더듬다

글 입력 2017.11.19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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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view]
가족 속 잊혀졌던
개인의 얼굴을 더듬다


아내의 서랍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가족 상담 수업을 처음 들었을 때가 떠올랐다. 2학년 때의 나는 상담장면에서 프로이트의 의자 정도를 떠올리는 풋내기였다. 당시 내가 그리는 상담 시스템은 기껏 해봐야 1:1 상담이었고, 마음의 문제는 그 스스로가 성찰하면서 풀어갈 수 있었다. 그것이 개인의 트라우마건, 가족 문제건 개인의 안에서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가족 상담은 내가 가지고 있었던 프레임을 뒤집었다. 가족 문제는 개인의 잘못이 아닌 상호작용의 실패에 있다는 점이 특히 그랬다. 가족 상담에 따르면 가족 간 만들어진 많은 상처는 나쁜 개인이 만들어낸 일방적인 영향이 아니라 그 각자가 일으키는 어떤 역동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인 예로 가족의 사랑을 얻고 싶어 열심히 돈을 벌어오지만, 정서적인 유대가 없어 가족들에게 권위를 내세우는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있겠다. 그는 실제로 모든 삶을 가족에 바치지만, 가족들에게 왜곡된 방식으로 표현해 가장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한다. 이런 가족의 경우 아버지를 제외하고 다른 가족끼리 정서적으로 강하게 연합되어 아버지를 더욱 소외시킬 수 있다. 이 가족이 아버지의 권위로 정서적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아버지가 잘못했다기보다 그들의 상호작용이 잘못된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런 방식이 이들 가족이 꿈꿀 수 있는 최선의 행복이 아니라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이들이 적절한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삶을 이해할 기회를 준다면, 그들은 가족 간 사랑을 기반으로 조금씩 나아갈 것이다. 가족 상담은 이들을 한데 모아 다양한 방식으로 이런 특별한 대화의 연결고리를 이어준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우리가 모두 용기를 낸다면 이런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체계 이론이 모든 가족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에 자행되는 모든 폭력을 묵인하는 것은 가족 상담의 목표가 아니다. 가족 상담에서 말하는 가족이란 단순한 혈연관계가 아니다. 다문화건, 그룹홈이건, 한부모 가정이건, 동성애 부부이건, 그 형태가 어떤 식이건, 많은 사람은 각자의 가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특별한 애정과 유대감을 공유한다. 가족은 모든 인간관계 집단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사회이다. 가족들은 친숙하면서 강한 감정을 교류한다. 쉽게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만큼 쉽게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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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서랍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가족 간 상호작용과 강한 감정의 연결이 떠오른 것은 내가 엄마의 서랍을 열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엄마의 서랍을 열기 전에는 엄마를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엄마는 늘 나를 지켜주는 여자 어른이었고, 내 시절이 있을 거라는 인식이 흐렸다. 그건 우리가 앞서 말했던 '특별한 대화'를 잘 나누지 않았기 때문이고, 새삼스럽게 개인의 이야기를 나누기엔 우리가 너무나 가족이라는 틀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우리는 자라가면서 무언가가 되어가는 것이지, 무엇인 상태로 자라가진 않았다. 그런데도 엄마건, 아빠건, 나건, 동생이건 우리가 모두 한 개인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가족이라는 틀에서 쉽게 잊어버리게 된다. 내가 열은 우리 엄마의 서랍은, 그러니까 '엄마'의 서랍은 원래 '안선미'의 서랍이었다.

연극 <아내의 서랍>은 퇴직 이후 아내가 사라진 이후, 아내의 서랍을 열어본 남편의 이야기다. 아내의 서랍을 열어본 남편의 심정은 내가 엄마의 서랍을 열었던 것과 비슷할 것 같다. 사실 자식으로서 열은 서랍보다, 40년의 세월을 거치고 연 서랍이 더 충격적이었을 것 같다. 퇴직할 나이에 이른 그들의 시대는 지금보다 더 가족 속 개인의 정체성이 흐릿했다. 그때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아내와 남편의 역할이 명확했고, 낯부끄러운 대화를 나누는 것도 어색했을 테니 말이다. 극에서는 남편이 아내가 좋아하는 것을 모른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지만, 사실 아내도 가부장제 속에서 홀로 앓았을 남편의 속사정을 자세히 알지는 않았을 것이다. 은퇴 후 그들 사이에 기묘한 빈 곳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가족이라는 구조 속에서 서로 간직하고 있었던 특별한 개인의 모습을 잃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시대에 휩쓸린 아내와 남편의 삶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서로의 서랍을 열지 못했을 뿐이다. 극에서 어떤 이야기를 보여줄지 궁금하다. 가부장제도와 페미니즘 이야기도 섞여들어 오겠지만, 그들에게 영향을 미친 사회적 영향보다 가족 속에서 서로의 얼굴을 더듬거릴 그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글을 끝내고 나도 오랜만에 엄마의 대학교 때 일기를 펼쳐봐야겠다.



관람정보

ㅇ 일시 : 2017.11.22(수) ~ 2018.01.14(일)
평일20시, 토16시, 일15시
ㅇ 장소 : 명작극장
서울 종로구 대학로8가길 30 (혜화역 2번 출구 흥사단 뒷 건물)
ㅇ 러닝타임 : 100분
ㅇ 제작 : 극단  고향 :김태수, 연출 신유청, 기획 장경민, 극단 시민극장
출연:주호성, 김순이 / 매주 월.화 박민관 신혜옥
ㅇ 후원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ㅇ 주최 : 극단 시민극장
ㅇ 관람연령 : 만 15세 이상
ㅇ 티켓 : 전석 30,000원

▶특별할인 : 증빙자료 지참
학생, 장애인, 국가유공자, 군인, 경찰, 만65세 이상 어르신
동반 4인까지 1인 15,000원
▶부부동반특혜
1. 입장료 할인(1장 2인 입장)
2. 팸프릿 증정
3. 기념사진촬영 출력증정
4. 추첨 케잌 증정
ㅇ 주관/문의 : Who+ (후플러스) 0505-894-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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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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