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수잔나에서 유디트로, 어느 여류 화가의 일생 [시각예술]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삶과 작품
글 입력 2017.11.1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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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udith Beheading Holofernes >, 1618-1620


 유디트 도상은 미술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이다. 미켈란젤로, 카라바조, 클림트 등 우리가 잘 아는 유명 화가들은 물론 르네상스 조각의 한 획을 그었던 도나텔로까지 자신의 '유디트'를 만들어 세상에 전시했다. 그러나 그 많은 예술가들 사이에서 한 여류 화가의 유디트가 주목을 받는다. 바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이다.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잔인하다. 가장 폭력적이고, 가장 사실적이다. 검을 쥔 손은 주저 없이 적장의 목을 썰어내고, 연약한 여인 대신 강한 여장부와 그 하녀가 화면을 차지하고 있다. 그림 속 유디트는 화가 자신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잔나 - 강간 사건과 배신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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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sanna and the Elders >, 1610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고, 일찍이 화가인 아버지 밑에서 그림을 그렸다. 다른 남자 형제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보여줬으며, 아버지 오라치오도 그녀를 결혼시키지 않고 자신의 조수이자 제자로 삼았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나이에 큰 재앙을 겪게 된다.

 세상 물정 모르기로 소문난 아버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와 다르게 그의 친구들은 구설에 자주 오르는 사람들이었다. 교황의 숙박 담당관 코지모 쿠오를리와 원근법이 특기인 화가 아고스티노 타시, 타시는 아르테미시아의 집에 따라들어가 그녀를 강간하고 결혼할 것이라고 변명했다. 당시 사회에서 여성은 결혼을 하거나 수녀원에 들어가는 방법밖에 없었기에, 아르테미시아는 그 말을 어쩔 수 없이 믿고 따랐다.

 그러나 타시는 이미 강간으로 결혼한 아내가있었고, 나중에 그 사실이 밝혀지자 젠틸레스키 부녀는 법원에 소송을 걸어 그를 벌하려 했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아르테미시아에게 남은 것은 고문과 입소문으로 인한 상처뿐이었다.

 그녀의 작품 <수잔나와 두늙은이>는 그녀의 상황과 비슷하다. 구약에 등장하는 수잔나는 정숙하고 아름다운 여성이지만, 목욕을 하는 도중 늙은 장로들에게 알몸을 들키게 된다. 수잔나의 몸을 요구하며 협박하는 두 장로의 탐욕때문에 그녀는 무고한 죄를 짓게 되는데, 많은 화가들은이 이야기를 그려낼 때 수잔나의 몸을 강조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 여성의 억울함, 그 치욕스러움은 중요하다. 아르테미시아의 작품은 이러한 감정이 잘 드러나기에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보인다. 여성으로서, 성폭행 피해자로서의 관점이 잘 드러나는 이 작품은 사건을 겪기 전 완성했지만 하나의 예견, 또는 불안감의 반영이라고 본다.


 
유디트 - 화가로서의 성공과 명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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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udith and her Madeservant >, 1613-1614


 강간 사건 이후 아르테미시아는 결혼을 하고 집을 멀리 떠나 다니게 된다. 그리고 여러 개의 <유디트>를 그렸다. 적장의 목을 베는 가장 유명한 작품 외에도 하녀와 함께 돌아가는 모습의 유디트도 그려졌다. 앞서 말했듯 잔인하고 현실감 있는 묘사와, 카라바조 풍의 극명한 명암이 더 강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유디트 역시 구약에 등장하는 베투리아 마을의 과부로, 적군이 침입하자 어느 날 밤 하녀와 함께 적장을 찾아가 그를 유혹하고, 잠들게 한 후 목을 베어 돌아왔다는 용기있는 여성이다. 이 이야기를 그림으로 옮긴 많은 화가들 중 젠틸레스키의 그림이 특별한 이유는 유디트에 대한 사실감 있는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남성 화가들의 시각에서 유디트는 치명적인 매력의 미인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적장을 제압하는 모습보다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편으로 보이지만,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더 영웅적인 모습이 돋보인다.

 또한 목이 잘린 남자의 얼굴이 그녀를 강간한 아고스티노 타시와 닮았다는 추측도 많이 나오는데, 이는 그녀의 트라우마 때문이거나, 혹은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일지 모른다. 이 작품 외에도 그녀는 클레오파트라나 갈라테이아 등 주도적인 여성들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으며, 인물에 자신의 모습을 반영하기도 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죽기 전까지 그림을 그리며 명성을 떨쳤다. 어린 시절 좌절을 겪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여성으로서 한계에 부딪혔지만 멋지게 떠올랐다. 마치 유디트처럼, 강한 모습을 보여준 여성들의 롤모델로 현대에 이르러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고 있다.
 




 최초로 디세뇨 한림원(바자리가 설립한 예술가 양성 및 학술 토론 모임)에 가입한 여성 화가이자 가장 잘 알려진 여성 화가 중 하나,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를 더 알아보고 싶거나,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고 싶다면 책이나 영화를 보는 것도 좋다. 국내 포털 검색으로는 생각보다 많은 자료가 나오진 않는다.

 
[책] 불멸의 화가 아르테미시아
알렉상드라 라피에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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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르테미시아
 아그네스 메렛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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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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