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몸으로 만드는 이야기:발레 '백조의 호수'

마린스키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리뷰
글 입력 2017.11.2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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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마린스키 발레단(프리모스키 스테이지)의 내한 공연 <백조의 호수>를 관람하고 왔다. <백조의 호수>의 내용은 공연을 보기 전에도 발레는 아니지만 다른 여러 경로로 접한 적이 있어 익숙했다.


<백조의 호수> 줄거리

지그프리트 왕자가 오데트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오데트는 사악한 마법사 로트바르트의 마법에 걸려 낮에는 백조의 모습이며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는 건 밤 뿐이다.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변치 않는 사랑이 필요하다.

지그프리트는 오데트의 마법을 풀기 위해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지만 로트바르트가 자신의 딸인 오딜을 오데트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장시킨 탓에 그녀를 오데트로 착각하고 만다. 착각 속에서 지그프리트는 오데트가 아닌 오딜과의 결혼을 선언하고 그 결과 오데트와 맺은 사랑의 맹세가 깨진다.

뒤늦게 진실을 깨달은 지그프리트는 오데트를 찾아와 용서를 빌며 사랑을 고백하지만 로트바르트가 두 사람을 떼어 놓으려 한다. 지그프리트는 용기있게 마법사와 맞서 그를 꺾고 승리한다. 왕자의 승리로 오데트를 비롯한 모든 백조들은 마법이 풀려 사람으로 돌아온다.



Swan Lake by G Shishkin Soloists -  세르게이, 이리나1.jpg



1장부터 4장까지

  이야기는 익숙하지만 발레 공연으로 <백조의 호수>를 보는 건 처음이라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공연은 1장 '왕자의 생일날', 2장 '숲 속의 호수', 3장 '궁전 무도회장', 4장 '밤의 호숫가' 순서로 진행되었고 중간에 두 번의 인터미션이 있었다.

  5시 정각이 되고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함께 막이 올랐다. 처음 1장이 시작될 때 당연히 막이 다 오른 후에 무용수들이 입장할 거라 예상했는데 막이 오르자 텔레비전 정지 화면을 보는 것처럼 모든 무용수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이미 포즈를 잡고 있어 놀랐다. 무용수들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오르골이 작동하는 것처럼 오케스트라의 음악과 함께 쉴 새 없이 움직였다. 1장이 발레 공연이란 무엇인지 기본을 보여주었다면 수많은 무용수가 연못을 떠다니는 백조들을 표현하던 2장은 발레 고유의 아름다움을 한껏 보여주었다. 무용수 한 명 한 명에 집중해서 보든, 그들이 만든 군무를 보든 눈을 뗄 수 없게 아름다운 무대였는데 '아름답다'는 말로는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담을 수 없어 아쉽다. 백조처럼 흰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의 군무에 푸른 조명과 안개 효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선율까지 곁들여져 완벽한 모습이었다.

  2장이 끝나고 인터미션 후 이어진 3장은 볼거리가 화려했다. 궁전에서 무도회가 열리는 장면이라 무용수들이 추는 각국의 민속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발레 공연에서 볼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라 재미있었다. 2장에서는 오데트 역으로 나왔던 발레리나가 옷을 갈아입고 악역인 오딜 연기를 하며 펼치는 화려한 동작 역시 3장의 큰 볼거리였다. 3장 막바지에서 지그프리트가 오데트가 아닌 오딜과 결혼을 약속하며 공연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마지막 순서였던 4장은 공연 전체를 통틀어 가장 비장했다. 2장에서 차분하고 가녀린 선율이 마법에 걸려 호수를 조용히 떠다니던 백조들을 연상시켰다면 4장에서는 같은 선율이 2장과는 반대로 웅장하고 장엄하게 연주되어 지그프리트와 마법사의 결투가 한층 더 극적으로 느껴졌다. 마지막 순서였던 만큼 가장 집중해서 볼 수 있었던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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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된 몸짓

  발레 공연은 대사가 한마디도 없다. 그래서 발레는 언어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연극이나 뮤지컬에 비하면 세세한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힘들다. 하지만 오히려 덕분에 말로는 온전히 전달할 수 없는 느낌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대사가 없는 대신 발레리노와 발레리나의 몸짓 하나 하나가 언어가 되는 것이다. 말을 통해 의사를 전달하는 데 너무나 익숙한 나는 과연 무대에서 대사 없이 어떻게 관객과 교감하는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궁금증과 의심은 오데트와 오딜 역을 동시에 맡은 이리나 사포츠비코바의 연기를 보며 해소되었다. 그녀는 놀랍게도 대사 한 마디 없이 의상과 춤 동작의 변화만으로 상반된 두 인물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냈다. 대사는 생각만큼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연기에서 볼 수 있듯 발레는 언어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음악과 춤으로 관객에게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원시종합예술에 가깝다. 다만 발레는 원시종합예술과 달리 철저한 계산 하에 무용수들이 피나게 노력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공연 내내 무용수들의 발이 무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그대로 들려왔는데 그 소리를 들으며, 또 도약하기 직전 움츠러들었다 도약과 함께 곧게 펴지는 종아리 근육을 보며 그들이 연기하는 백조가 곧 발레리나, 발레리노의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보여지는 모습은 화려하지만 물 밑에서 끊임없이 발을 젓는 백조처럼 그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단 3시간 동안 편히 앉아 공연을 보다가 돌아가는 관객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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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발레 공연

  <백조의 호수>는 내게 언어가 아닌 몸으로 만들어지는 아름다움과 몸으로 전하는 이야기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덕분에 내 마음 속 아름다움의 폭이 한층 넓어진 기분이다. 화려하고 웅장하던 무대, 수많은 무용수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백조의 형상, 무대 전체에 가득 차 부드럽게 흐르던 오케스트라의 연주, 공연이 끝나고 계속 이어지던 박수와 막이 내린 무대 사이 팬서비스를 하듯 마지막으로 인사를 건내던 발레리노의 모습. 앞으로 다른 발레 공연을 보더라도 <백조의 호수>의 몇몇 장면들과 그 장면을 보며 느꼈던 감정은 계속 생각이 날 것 같다. 나의 첫번째 발레 공연이 <백조의 호수>라서 기쁘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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