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의 링 위에 '비평가'

두 선수가 링 위에 섰다. 끈질기게 싸운다. 서로의 펀치는 서로의 움직임을 파고든다. 연극의 링 위다.
글 입력 2017.11.18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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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비평가> Review



  두 선수가 링 위에 섰다. 끈질기게 싸운다.
서로의 펀치는 서로의 움직임을 파고든다.
연극의 링 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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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가'를 보고 왔다. 극장에 입장하는 순간, 무대에 쌓인 책들에 시선을 빼앗긴다. 책들이 지저분하게 들어찬 무대는, 이 연극은 이미 두 사람이 무엇으로, 또 무엇을 향해서 시합을 벌일 것인지 알아채게 만든다. 연극이 시작되고, 볼로디아가 잔뜩 짜증난 채로 등장한다. 한숨을 쉬다가 책상에 앉는다. 그리고 글을 쓰려는 순간, 누군가가 찾아온다. 바로 희곡작가 스카르파다. 비평가 볼로디아는 스카르파의 공연을 보고 비평문을 쓰려하던 참이었던 것이다.

  볼로디아는 스카르파 앞에서 그의 공연에 대한 비평문을 몇줄로 써내고, 스카르파는 그 평이 마음에 들지 않다. 스카르파는 볼로디아의 비평문 한 문장 한 문장을 뜯어서 설명하기 시작한다. 둘은 그렇게 링 위에 오르게 된다. 연극의 링 위에. 스카르파는 숨가쁘게 희곡이 완성하고자 했던 모습을 대사와 꼼꼼한 묘사로 그려내고, 볼로디아는 그의 대쉬를 기분 나쁜 표정으로 피해간다.

 이윽고 점차 절정에 들어서며 볼로디아는 스카르파에게 자신이 품었던 기대와 연극의 본질에 대해 연속 펀치를 날려댄다. 훅 들어오는 펀치에 스카르파는 비평문으로 자신을 인도해온 스승, 볼로디아에게 자신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항변한다. 그의 말에는 참혹한 스승에 대한 애증이 깃들어있다. 권투 사범과 권투 선수의 싸움은 10년 전부터 시작된 것이었음을 두 사람의 애증이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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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스카르파가, 스승의 인정을 향한 노력이 집착으로 변환된 것을 고백하며, 링의 경계는 사라진다. 관객 그리고 극장 밖 현실까지 연극의 링은 허물어진 무대가 된다. 현실을 직시하라던 스승은 자신의 오판을 믿을 수 없다. 아니 그 것보다 더, 연극과 현실을 믿을 수 없다. ‘현실을 옹호하는 자와 현실을 적대하는 자가 있다. 관객들은 옹호를 좋아하지만 적대적인 희곡이야 말로 본질이다.’라고 주장하던 그는 결국 혼란 상태에 빠진다. 그 것은 이 광경을 보고 있는 관객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비평은 연극의 가치를 짚어내고, 공연을 향해 ‘왜?’ ‘어떻게?’를 따져낸다. 그리고 더 나아가 연극이 완성해내야할 본질, ‘왜’ ‘어떻게’를 던져준다. 볼로디아는 스카르파에게 그 역할을 차갑지만 분명하게 해내려 노력했고, 스카르파 역시 지친 마음을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달래가며 10년을 달려왔다. 하지만 두 사람이 당착하게 된 것은 현실과 연극의 경계에 대한 물음이다. 권투의 링, 연극의 링은 결국 현실의 링까지 넓혀진 것이다. 팽팽했던 싸움은 그렇게 서로 뒤로 물러선다. 허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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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의 팽팽한 싸움은 이상한 곳에서 결판이 난다. 결판이 난다고 하기도 어렵지만, 어쨌든 다른 곳으로 프레임이 넘어간다. 연극의 본질에 대한 질문은, 연극의 가치 회복을 향한 논쟁은, 무대 위에는 등장하지도 않은 한 여성의 정체로 돌아간다. 현실과 연극의 경계와 그 상관관계는 우리 모두가 주목해온 것이긴 하다. 하지만 매듭새가 영 못 마땅찮다. 아마 내가 이 연극에서 원했던 것은 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기대에 들어찼다고는 할 수 없다. 내 생각을 펼치기 쉬운 극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쁜 극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용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고민해야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고민이 언젠가 더 좋은 연극을 마주할 수 있는, 쓸모 있는 고난이기를 바라게 되었다.


연극의 가치와 본질에 대해 나는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
그리고 꼭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결국 경계란 것이 필요한 것인지.
한편으로 두 사람의 입장에서 관용이란 것이 필요한 건 아닌지,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꾸며진 허물에만 환장하는 관객’이란 혹시 날 얘기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결국 연극은 꾸며진 허물덩어리가 맞는 건 아닌지.
15분간 기립박수를 한 관객들은 결국
비평가와 희곡 작가라는 권력에 의해 바보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관객에 대한 기만은 아니었는지,
작가는 왜 스승과 선수-비평가와 희곡 작가로 연결 지은 것인지,
그리고 정말 비평이 작가를 가르치는 수단이 되는 것이 맞는지.
결국 그 여성에 의한 결말이 꼭 필요했던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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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가> 리뷰는 아트인사이트 문화초대를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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