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공자 숭배는 사실 법칙이 아닙니다. 중국 핵심 강의 - [문학]

글 입력 2017.11.18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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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이 굉장히 중요한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표지를 보면, ‘중국인은 왜 실리에 강한가’라는 질문과, ‘현대 중국의 기원을 만나다’라는 표식이 있다. 그러니까, 저자는 ‘왜 중국인들은 실리에 강하지?’라는 질문을 가지고 중국사를 탐구하다가, ‘오늘은 현대 중국의 기원을 만나게 되었어’라는 말을 일기에 쓰는 것으로 탐구를 마친다는 말이다. 저자의 시작하는 말을 보면 이 책의 목적이 ‘중국인이 가진 인문주의와 실용주의 정신은 어디에서 왔는지’에 있다고 한다. 이제, 다시 표지와 시작하는 말의 맥락을 합쳐 보자면, 저자는 ‘중국인이 가진 인문주의와 실용주의 정신’과, ‘현대 중국의 기원’, 그리고 ‘중국인의 실리’를 주제로 잡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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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저자의 의도를 처음에 이해하고, 그 후로 ‘왜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는데요?’라고 질문하고, 그 이유를 듣는 과정은 재미있다. 중간 중간에 ‘음, 그 생각은 좀 아닌 것 같은데.’라던가, ‘오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들을 하면서 말이다. 즉 ‘대화하듯 책을 읽는 것’ 이다. 강의는 이러한 방법이 정말 필수적인 정보 전달 방법이다. 강연자가 혼자 수업하는 강의는 별로 재미가 없다. 그 강의 속에서 청자는 강연자가 주입하는 모든 정보들을 흡입하는 스펀지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 고등학교 때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를 생각해보면 쉬울 것이다. 도발적인 질문과 논리적인 대답은 오만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도록 돕는, 열린 창이다. 그리고 인문학의 목숨과 같은 것이다. 오랫동안 인문학자들은 책을 통해 그 창을 유지하려 노력해 왔다. 그 외의 부가적인 사실들은 기본적인 상식 외에 팩트 체크를 할 때 필요할 뿐이다. 그러한 부가적이면서도 상당히 전문적이어야 하는 사실은 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팩트 체크는 최대한 정확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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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읽으면서 이 책의 목적이 자신이 가진 질문을 해결하는 데에 있다기보다는, 중국에 대한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 전달에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시작하는 말’을 보니, 마지막 문장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정말 알뜰하게 쓸모가 많은 중국 핵심 지식들을 모아 두었다고 자부합니다.’ 그 순간, ‘아, 이 책은 알쓸신잡의 중국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인문학적 마음보다는 상경학적 마음으로 쓴 책이 된다. 경영학 교수님이, 내 사업계획서를 보고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렇다면, 네가 이 사업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말이야, 지금껏 나온 동업계의 다른 사업들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으며, 그 메리트는 어디에서 나오는 거냐?’ 그러니까, 이 책을 입문자를 대상으로 했다고 가정하고, 알쓸신잡의 깊이로 내용을 구성했다고 했을 때, 이 매체는 종이책이기 때문에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므로 가지고 있었던 알쓸신잡의 정보 전달 방법과는 다를 것이다. 이 때, 종이책의 매력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어떻게 사람들로 하여금 그 종이책을 소유하고 싶게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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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이 책은 차례와 내용의 구성을 통해 그 길을 잡았다고 생각했다. 목차를 보면, 그래도 살면서 한 번씩은 들었던 말들이 차례에 있다. 청나라의 역사보다는 공자가 있었던 춘추가 친숙하고, 마르코 폴로도 어디에서 한 번씩은 들어 봤다.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것들에 대해 정확히는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을 소유한다면, 조금은 알지만 구멍이 숭숭 뚫려 있던 지식들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나는 이 방식이 나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고 우연히 마주한 어딘가의 대화에서, 공자에 대한 지식을 꺼낼 때가 올 때, ‘어 나 그거 알아’ 하고 그 대화를 더 들어보거나, 그 때 이해가 잘 안 되었던 부분을 대화 과정에서 질문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지식을 소유하는 방식으로는 알 수 없는 인문학의 중요한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pp. 408 ~ 409 를 보면, 공자가 연애 이야기인 시경을 좋아했으며, 그 모습이 ‘요즘 관점에 따르면’ 체통이 떨어져 보일 수는 있지만 인간답다고 기술되고 있다.


엄숙하게만 느껴지는 「시경」이라는 시집에 남녀 간의 사랑을 나누는 시가 첫 머리에 실려 있다니 놀랍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공자가 이런 사랑의 노래를 책에 실었다는 게 우리의 기존 관념을 깹니다.(...) 음악의 명인이었던 공자는 거문고나 비파 등 당시 악기를 뜯으며 이 노래를 불렀을 것입니다. 요즘 관점으로 보면 조금 체통이 떨어져 보이기는 하지만 훨씬 편안하고 자연스럽지 않은가요?

pp. 408 ~ 409


여기서 요즘 관점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만약 공자가 힙합을 했다면 유학자로서 섬길 작정이 아닌가? 아니, 기본적으로 학자는 왜 체통을 지켜야 하는가? 학자는 그렇게 고고히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또한 결과적으로 아무 근거 없이 이 책은 공자를 두둔하고 있다. 만약 이 두둔의 이유가 지금껏 많은 사람들이 두둔해왔기 때문이 아니라면, 저자는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 공자 두둔은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것과 같이 사실 법칙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술은 진정한 본질을 흐리기도 한다. 체통이 떨어지는지 떨어지지 않는 지는 인문학 강연에서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왜 유학을 창시한 공자가 연애 이야기를 중시했냐는 거다. 유학과 연애가 어떤 연관이 있는 지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강연자의 몫이다. 인문학 강연자는 청중으로 하여금 인문학의 세계로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인문학의 세계에서 한 인간의 체통은 중요하지 않다. 그 사람의 생각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 생각이 현재의 자신에게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끼치는 지도 중요하다. 저자가 스스로를 소개하는 날개에 썼듯, ‘역사 속에서 세상을 읽는 통찰력’을 전달하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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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인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인문학의 깊이 또한 진정으로 사랑할 것이다. 하지만 그 깊이는 관심 없는 친구들은 잘 모르게 된다. 좀 오랫동안 기다려야 나오는 게으르지만 사랑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랑스러움을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을 것이다. 관심 없는 친구들에게도 알리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관심 없는 친구들은 참을성이 부족하다. 이득이 될 것 같지 않으면 빠져나간다. 그러니까 인문학 강연자의 인문학 세계로의 흥미로운 인도는 필요하다.
 
지식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수동적이어야 하는가, 능동적이어야 하는가. 문제는 그 과정에서 ‘옳은 것에 대해 정말 옳은 지’, 즉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정말 옳은 지’에 대한 겸허나 숙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것을 그다지 허락하지 않는다. 이 세상 알쓸신잡이 그렇듯이 말이다.

다시 한 번 외치고 싶다. 인문학은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이 정말 중요한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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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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