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심연의 호숫가에 다녀오다, 백조의 호수 [공연]

마린스키 발레단 내한 공연 프리모스키 스테이지
글 입력 2017.11.17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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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의 호수 포스터.jpg
 
 
 
Prologue.


백조의 호수는 차이코프스키의 발레 명작으로, 지금까지도 우수하다고 찬사를 받는 고전 중의 고전이다. 모두가 다 아는 그 멜로디로 러시안 특유의 감성과 함께 우아함을 여지없이 드러내고야 마는 단아함의 결정체. 사실 발레 공연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라 감상이 너무 어렵지 않을지, 조용한 음악과 계속되는 동작들이 조금 지루하지 않을지 걱정도 했었지만 그런 나의 선입견을 기분 좋게 깨주었던 공연이라 기쁜 마음으로 글을 써보려 한다.
 
 
 
Synopsis.


간단한 스토리이다. 저주에 걸린 여인 오데트가 왕자 지그프리드와의 진정한 사랑으로 백조가 되는 마법에서 풀려난다는 이야기. 왜 왕자와의 사랑을 받아 저주를 풀어야 했는지, 고전적인 스토리마다 등장하는 러브스토리-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했답니다(happily ever after)의 이야기 가지가 빠지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드는 아쉬움이었지만, 그런 마음마저 달래줄 정도로 공연은 정말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제1막]
지그프리드 왕자의 성인식 축하연을 준비 중인 곳에 왕자와 개인교사 볼프강이 나타나자 연회가 시작된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왕비가 왕자에게 내일 무도회에서 신붓감을 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2막]
악마 로트바르트의 페허가 되어버린 성이 보이는 호숫가에 백조들이 날아든다. 그곳에서 우연히 백조가 아름다운 소녀로 변신하는 것을 목격한 벤노 등은 몹시 놀란다. 그 이야기를 듣고 왕자가 활을 쏘려고 하는데, 이때 페허에 오데트가 빛을 발하면서 나타난다. 오데트는 자신이 악마의 마법에 걸려 밤에만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서글픈 사연을 하소연한다. 그리고 마법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왕자님의 진정한 사랑뿐이라고 말한다. 이윽고 날이 밝아오자 두 연인은 아쉬운 작별을 한다.
 
[제3막]
무도회가 시작되자 왕비와 왕자가 입장한다. 이때 팡파르가 울리면서 기사로 변장한 로트바르트와 오데트로 변장한 그의 딸 오딜로가 등장한다. 오딜로를 오데트로 착각한 왕자가 오딜로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바로 그때 오데트가 창가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악마의 계략에 넘어간 것을 깨닫지만 때는 이미 늦어 왕자는 백조를 쫓아 호수로 달려간다.
 
[제4막]
어둠이 짙게 드리운 가운데 백조들이 오데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때 몹시 실망한 오데트가 인간의 모습으로 호수에 몸을 던지려고 한다. 바로 그때 왕자가 달려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사랑을 맹세한다. 여기에 로트바르트가 나타나 오딜로와의 결혼을 요구하지만 백조들이 날이 밝기 전에 모두 자살할 결심임을 알고 사라진다. 오데트는 폐허 꼭대기에서 춤을 추다 몸을 던진다. 그 뒤를 따라서 왕자도 몸을 던진다. 그 순간 호수 위를 맴돌던 악마 로트바르트가 몸을 던지고, 동시에 악마의 성도 무너져 내린다. 이제 두 사람의 뜨거운 사랑에 악마의 마법도 풀린 것이다. 악마의 사슬에서 벗어난 두 연인은 영원한 행복의 나라를 향해 여행을 떠난다.
 
[네이버 지식백과] 백조의 호수 [Swan Lake] (두산백과)
    




위의 스토리 라인을 살펴보고 공연을 감상하니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발레에서 등장하는 몇 가지 동작으로 대부분의 연기와 안무를 알 수 있어서 발레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즐겁게 관람하는 데에 문제가 없을 듯하다. 동화같은 스토리와 행복한 결말이라 혹자는 뻔한 결말이라 할 수도 있지만 고전 명작이라는 타이틀에 전혀 손색이 없는 발레 공연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스토리에 충실한 표정과 동작을 담은 프리모스키 발레단의 실력도 무척 뛰어나 공연 시간 내내 깊게 몰입할 수 있었다.
 
 
백조의 호수 공연2.jpg
 

 
음악과 함께라 더욱 우아했던


발레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표현과 연기가 뛰어났고, 안무가 어땠는지까지 상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발레를 이제 막 애호하게 된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백조의 호수가 고전이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1875년 모스크바 볼쇼이극장의 관리인 베기체프가 쓴 발레 대본 《백조의 호수》를 만난 차이코프스키작곡의 《백조의 호수》가 아닐까. 아름답고 깊게 울리는 오케스트라의 연주 위에 얹어지는 발레 동작 하나하나는 음악과 함께라 더욱 우아하게 느껴졌다.
 
발레는 안무가 전부라 생각한다면 큰 오해이다. 공연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며 스토리를 이어가는 중요 요소에 무용수의 연기 뿐 아니라 연주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환희와 긴장, 슬픔과 기쁨을 표현하고 이를 관객에게 잘 전달하려면 안무와 하나가 되어 어우러지는 곡 연주도 무대 위의 무용수들만큼이나 깊은 감정이입이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조의 호수에 담긴 모티브


공연 감상도 무척 만족스러웠지만, 나는 우아한 무용수들의 몸짓과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반하면서도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왜 다시, 계속, 백조의 호수인가.
 
“백조는 영혼의 화신으로 믿어지고 있는데,
또한 백조가 우아한 곡선을 그리면서
목욕하는 모습은
사람들을 무의식 속에 잠재하는
에로틱한 몽상으로 이끈다.”


백조의 호수 공연1.jpg
 

예로부터 에로틱함과 연결되는 모티브는 회화에도 상당수 존재했다. 다소 비판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의 육체미를 가장한 누드(신화 속 여신, 성화 속 마리아)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겠다. 이는 고전주의-신고전주의의 흐름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는데, 백조를 통해 에로틱함을 연상시키는 것도 이것의 연장선상이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고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이 담긴 회화 이미지를 떠올리니 하얀 순결의 이미지를 띠며 몽환을 함께 품고 있던 백조의 호수 특유의 환상적 분위기도 잘 이해되었다.
 
무의식의 에로틱함과 연결되어 그 몽환적임은 한층 더 부각되고, 백조라는 대상 이미지를 통해 사람들은 발레를 감상하며 잠깐 동안 은밀한 꿈을 꾸게 되는 것이다. 그 잠깐 동안의 꿈에 취해 백조의 호수가 더 아름다운 명작으로 계속 회자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꿈을 꾸고 나온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백조가 슬프고 간절한 춤을 추던 꿈. 흑조 오딜로도 못지않게 매력적이었지만, 무언가에 매여 있는 모습에 공감되어 몰입이 잘 되었던 까닭인지 오데트가 더 강한 기억으로 남는다.
   
슬픈 꿈이 나도 모르는 눈물이 되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질 때가 있다. 그처럼 꿈같이 희미해지는 발레의 기억을 좀 더 붙잡아 두기 위해-이제는 그 표정과 손끝과 음악을 하나씩 떠올리며 잠시 백조가 있는 무의식의 호숫가에 다녀와야겠다. 곱씹을수록 좋을 심연 속으로.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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