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비평가를 만나다 : < 비평가 >

글 입력 2017.11.16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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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연극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담은 메타 연극
<비평가> By. 후안 마요르가

출연
김승언, 이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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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view >


  혜화를 갔다. 이번에 본 작품은 극중 인물들이 직접 연극의 소명과 역할을 묻는 메타연극이다. 작품 이름은 <비평가>. 메타형식이라고 들었을 때부터 희곡 대본을 한번 먼저 읽어보고 싶었다. 어떤 기발한 포인트에서 극을 관람하는 관객과 대본을 받았을 때의 배우들에게 '강렬한 충격'을 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메타형식의 소설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미겔 데 우나무노의 <안개>다. 전에 아트인사이트에서 오피니언을 이 주제로 쓴 적이 있는데, 다시 설명하기 위해 내용을 더듬더듬 떠올려봐도 역시나 흥미롭다.

  작중 인물이 창작자인 우나무노를 찾아가 자기 자신의 불행한 결말을 따진다. 어떠한 실존적 존엄을 인정 받지 못하고 그저 소설에서의 한 '불운한' 캐릭터로 소모될 뿐인 사실에 대해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소설가와 열심히 대화를 했지만 우나무노는 절대 그 결말을 바꿔줄 생각이 없어보인다. 마침내, 이에 분노한 주인공은 창작자에게 뼈있는 소리를 담아 고함을 지른다. 창작자의 인생 역시 자기가 만들어 낸 캐릭터와 다름 없이 온갖 한계와 부조리로 가득한 인생을 살 것이며 모든 살아 있는 존재라면 다 그럴 것이라는 거다. 그리고 우나무노의 작업실을 나가버린다.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가? 소설 속 주인공이 자신의 '소설적 실존'을 고민하고 자신의 창조자를 찾아가 그 창조자 역시 인생에서 오롯한 주체로 살기 힘들 것임을 역설하다니. 자신이 만들어낸 허구의 존재 때문에 허구보다 무서운 '진짜 인생'의 불온성을 마주하게 하는 소설이라니. 작품의 제작 과정을 이토록 흥미롭고 얼빠지게 노출시킨 작품이 또 있을까? 어쨌든 그런 의미에서 <비평가>의 시놉시스를 처음 읽었을 때 굉장히 기대감이 컸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이번엔 '비평가'의 입장에서 '연극'의 본질을 분석하고 현실과 연극 사이의 관계를 고찰하다니.

  사실 메타형식은 이미 창작 역사에 있어서 꽤 오래된 설정이기 때문에, 더 이상 신선한 양식이 아니다. 따라서 단순히 메타 형식을 제기하는 정도의 수준에서 이야기가 끝난다면 스토리의 완결성과 신선도 부분에서 미흡하다는 판정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연극 <비평가>에 더 기대를 크게 걸었던 것 같다. 메타형식의 전형성을 어떻게 돌파해 나갈 것인가? 희곡작가가 의도하는 연극의 본질은 무엇이고, 그것이 실제 삶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어떤 식으로 우리의 허를 찌를지. 작가가 갈고 닦았을 예리한 칼날을 제대로 체험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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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소극장이긴 했어도 무대의 디테일적인 측면에서 굉장히 꼼꼼하고 아름답게 연출되었고, 비평가 역할을 맡은 김승언 배우의 열연은 놀라울 정도였다. 연극 <심청>에 출연했을 당시 역할과 비교해 봤을 때, 비평가 연기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줄거리도 매우 흥미롭다. 관객으로부터 15분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친 스카르파는 자신의 작품에 꾸준히 혹평을 가했던 볼로디아라는 비평가를 찾아간다. 공연의 성공을 축하하는 파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평가의 작품평을 확인하러 그의 집에 제일 먼저 달려간 것이다. 그러나 볼로디아는 스카르파에게 만족스러운 반응을 주지 않는다. 이렇게 두 사람 사이의 논쟁은 불이 붙는다. 두 인물 모두 창작자로서, 그리고 성찰하는 사람으로서, 진지하게 자신의 소명을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창작 의도와 캐릭터가 삶의 진실에 닿아 있다고 믿는 스카르파, 요즘 연극들은 진부한 신화를 끌고 와서 사람들이 듣기 좋아할 법한 거짓말을 흘리고 있다고 비난하는 볼로디아.

  삶의 한복판에 자리하는 진실의 '불편한 공명'을 마주하길 거부하고, 적당히 부피감 정도만 있는 '달콤한 거짓'을 소비하면서 자신의 지적 허영을 장식하려는 현대인들. 공허한 자위에 매료된 대중과 그런 대중을 의식해서 철저하게 계산적으로 '껍데기 뿐인 이야기'를 꾸며내는 작가들에 대해 볼로디아는 맹렬한 비판을 날린다. 그의 목소리에 뜨거운 진심이 담겨 있어서 일까, 창작자의 입장을 변호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비평가가 눈을 붉히며 노려보고 있을 '삶의 외로운 진실'에 더 마음이 갔다. 물론, 스카르파 역시 비평가들의 폐쇄적인 문화를 비판한다. 요즘의 비평가들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척 하지만 굉장히 자기 감정에 휘둘리는 존재들이고 오직 비난을 위한 비평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재미있는 불구경이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정말로 '남의 집 불구경'으로 그쳤다는 것이다. 의문점이 많다. 어째서 작가는 스카르파가 볼로디아의 몰아치는 비판에 충분히 논리적으로 반박하도록 설정하지 못했는가? 어째서 이 연극도 비평가, 하면 떠오르는 표독스러운 독설가의 유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두 사람의 논쟁의 끝이 어째서 비평가가 사랑했던 여인의 존재로 마무리 되는가? 물론 비평가가 '가짜'라고 선언한 연극 속 여성 인물이 스카르파가 목격했던, 비평가가 사랑했던 실제 여성이라고 밝혀지면서 '연극'과 '현실' 사이에 놓인 괴리감을 무너뜨리는 결말로 구상한 것이겠지만, 사실 나는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메타연극이 안고 있는 형식의 전형성을 돌파하기 위해 연극과 현실 사이의 관계를 더 구체적인 이야기로 증명하고 설명하려 한 의도 같은데, 그래서 '여성 인물의 사연'을 삽입한 것 같은데. 정말 그런 의도였다면 글쎄? 그 의도는 실패했다고 본다.

 조금은 정석적이고 심심할지라도 연극와 비평, 작가와 비평가가 왜 대립할 수 밖에 없고 어떤 지점에서 서로의 의견이 교차되는지만 설명하는 걸로 마무리한다면. 불화하지만 결국 서로가 서로를 건너야 존재할 수 있다는 이 묘한 관계만 조명했다면. 오히려 더 완전한 스토리가 됐을 거라 생각한다. 굳이! 문제의 '여성인물'을 극 속으로 끌고 들어왔어야 했다면, 끝까지 여성인물이 실재하냐 아니냐를 미궁에 빠뜨렸어야 했다. 관객이 스스로 연극과 현실의 관계를 상상하고 고찰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 여성이 실제 여성이라고 완전히 결론이 나면서 갑자기 연극은 예리한 무기로 작용하던 '메타성'을 내던져 버리며 '이것이 삶이야!'하고 진부한 설명을 해버리고 만다. 연출의 문제일지, 극본의 문제일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작가가 스스로 '돌파구'라고 찾은 해답은 적절한 해답이 아니었던 것으로 난 결론 지었다.

  전체평을 해본다. 이 연극이 소설이었다면, 나는 앞부분에서는 자주 무릎을 치며 무수한 밑줄을 그었겠지만 후반부에서는 책을 덮을 때까지 펜을 들지 않았을 것이다. 기대한 지점에서는 만족스러운 대화들이 있었지만, 예상치 못한 이야기의 삽입으로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마무리해야만 했던 연극이다. 더 좋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기에 더 많이 아쉽다.



< Synopsis >

방금 성공적으로 첫 공연을 마친
희곡작가 스카르파가 볼로디아의 집을 방문한다.
볼로디아는 10년 전,
스카르파의 첫 작품에 혹평을 가한 비평가.

오늘 공연의 작품평 쓰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스카르파 앞에서 
볼로디아는 짧은 비평문을 쓰지만
스카르파는 그의 평이 맘에 들지 않는다.

작품에 관한 이견으로 논쟁은 시작되고, 
그 논쟁은 작품 속 여성인물의
현실성을 놓고 정점에 이른다.

비평가는 그 인물을 ‘가짜’라 단언하고
작가는 그 인물이야말로 현실 속 인물임을 역설한다.

둘의 논쟁이 계속되면서
작품 속 여성의 모델이 밝혀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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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
- 연극창작의 본질을 묻는 메타 연극 -


일자 : 2017.11.10(금) ~ 11.19(일)

시간
평일 8시
토 3시, 7시 / 일 3시
월 쉼

장소 : 동숭아트센터 동숭소극장

티켓가격
전석 30,000원
청소년 50%, 청년 30%

제작
극단 신작로

기획
K아트플래닛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서울문화재단
서울시, 종로구, BC카드
예술경영지원센터

관람연령
만 13세이상

공연시간 : 100분




문의
극단 신작로
02-742-7563





[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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