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에 묘약은 없다, 사랑의 묘약 [전시]

사랑의 묘약
글 입력 2017.1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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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묘약 포스터.jpg
 
 

Prologue.


많은 이가 사람의 힘과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 것들 중에 사랑이 있다고 흔히들 말한다. 그런 사랑을 좀 더 쉽게 해줄 뿐 아니라, 사랑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에서 느끼는 어려움을 덜어보고자 과거의 사람들도 사랑의 묘약이라는 판타지적 존재에 기대를 걸어보았던 것 같다. 나름대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전시를 보기 전부터 사랑의 묘약에서 풍겨오는 오묘한 판타지를 음미해보았다. 그 판타지의 결말은 어땠을지, 이야기의 과정에 전시의 의도가 잘 담겨 있을지도 함께 궁금해하면서 말이다.

 
 
Section.


오페라 ‘사랑의 묘약’은 단선적인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다. 지주의 딸 아디나를 보고 첫눈에 반한 네메리노의 간절한 마음과 아디나의 네메리노를 향한 마음이 만나, 마침내 두 마음이 하나가 되기까지-절절하고도 순수한 감정이 와 닿는 오페라 ‘사랑의 묘약’. 그 내용 전개에 따라 나타나는 두 사람의 마음은 용기, 고독, 신뢰 등 열 가지 감정으로 다시 나뉘었다. 각 감정에는 그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아티스트 10명의 작품이 각기 전시되어 있었다.


사랑의 묘약 섹션.jpg
 


0. 복합적인 감정의 결정체, 사랑


두 사람의 감정선에 따라 섹션이 열 가지로 나뉘기는 하지만, 한 작가의 작품 안에 하나의 감정만 담긴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면, 일상을 다룬 작가 타쿠 반나이의 작품에서는 혼자서 미술관을 다니는 남성의 고독이 함께 느껴졌다.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안민정 작가의 작품에서도 역시 남녀 간의 사랑에서 번지는 집착과 일상의 감각이 동시에 풍겨왔다.
 
이렇게 하나의 작품을 보고 복합적인 감정이 느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감상이나 분류의 편의를 위해 스토리 전개에 맞춰 섹션이 분류되어 있었을 뿐, 제시된 감정에 맞추어 작품을 감상할 필요는 없었다. 그 때문인지 전시의 후반부로 갈수록 전시장에서 마주했던 모든 감각들이 사랑이라는 완전체의 부분이 되어버림을 느꼈다. 바로 이 때문에, 전시 현장은 때로 작품이 아니라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의 순간들을 포착해놓은 것처럼 감각되기도 했다.(한 사람이 겪은 사랑의 부분이 아니라, 모두가 겪는 사랑의 공통 분모를 한 곳에서 경험하는 듯했다고 하면 적절한 표현이 될 것이다.)
 
  

1. 깨뜨림의 역설, 집착


사랑에는 여러 모습이 존재함을 알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많지 않았던 경험만큼 아직 나에게 사랑은 조금 생소한 장르이다. 그 중에서도 필자에게 와닿았던 몇 가지를 추려 그 첫 순서로 집착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집착’ 섹션에는 대만의 떠오르는 신예 작가 신왕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다소 자극적인 사진 연출로 시선을 사로잡았을 뿐 아니라, 그의 작품에 사용된 오브제가 이해하기에 어렵지는 않아서 작품과 감정을 쉽게 연결지어 감상할 수 있었다.

 
사랑의 묘약 집차.jpg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집착은 ‘깨뜨림’이었다. 집착은 두 사람의 관계를 탄탄히 해주는 관심의 정도라 완곡히 해석될 수도 있지만, 결국은 깨뜨렸을 때에야 자신의 진정한 감정에 눈뜰 수 있는 것이라 말한 신왕. 작품에도 이러한 그의 가치관이 잘 드러나 있었고 필자 또한 그 견해에 대해 많은 부분에서 공감할 수 있었다.
 
집착은 지나치면 구속과 통제가 되고 그 얽매임은 결국 자신을 향하기 마련이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이라서,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배려와 표현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순간을 집착이 아닌 신뢰로 견딜 때에 사랑이라는 이름의 관계는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집착을 깨뜨림으로써 깨어질 뻔했던 사랑은 반대로 단단해질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붙잡으려다 놓칠 뻔했던 이의 모습 또한 집착에서 벗어날 때에 더욱 분명하게 보이는 것이다.
 
 
 
2. 가장 기쁜 순간에 외치는 환희


누군가를 만나 사랑한다는 것은 두 사람의 마음이 통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는 서로의 마음이 서로를 향하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환희는 그 힘든 사랑의 가장 기쁜 순간을 표현할 때 나타나 두 사람의 감정을 매우 긍정적인 외침으로 전달되곤 한다.


사랑의 묘약, 신딘비이석예술.jpg


드라마에서 남녀 주인공의 사랑이 이루어졌을 때, 노래 가사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노래한 사랑의 끝이 해피엔딩이었을 때 수용자는 간접적으로 환희를 경험할 수 있다. 마침내 많은 고난을 겪고 마주한 해피엔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 없어도 사랑의 긍정은 환희를 외침으로써 완성된다. 오페라의 두 주인공도 해피엔딩을 맞이했다. 집착을 내려놓고 복합적인 사랑의 여러 감정을 거쳐 두 마음을 온전히 마주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둘은 사랑을 이루었으며, 성취감도 무엇도 아닌 순수한 행복감에서 나온 기쁨을 외칠 수 있었다.


 
사랑의 묘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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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섹션의 작품에 담긴 감정들을 마주하고 나면 사실 사랑의 묘약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그 무엇으로도 조정할 수 없던 마음을 묘약으로 다스릴 수 있다는 기대부터가 부질없다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된다. 전시에서는 이것을 가장 큰 주제이자 의도로 삼고 있었다.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 위대한 사랑의 힘에 많은 관객이 공감하는 것. ‘좋거나, 나쁘거나’하는 이분법과 이성이 가장 적용되지 않는 사랑. 그 사랑 속에서 마음껏 흔들리고 흔들며 서로가 성숙해가는 과정에 묘약은 없다. 온전히 맞잡은 두 손으로 지켜갈 신뢰와 이해, 믿음만이 있을 뿐이다.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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