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함께 있었던 모든 순간들이 사랑의 묘약이었다네. - [전시]

글 입력 2017.11.11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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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함께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해왔던 친구와 함께 갔다. 그래서 더 편하고 깊이 있게 전시 작품 하나하나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프리뷰를 하면서 이해가 잘 되지 않았던 부분도, 함께 머리를 맞대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기회가 되신다면, 함께 전시회를 관람하는 기분으로 이 글을 읽으면서 이야기를 나눠봐도 좋을 것 같다.



첫 번째, 타쿠 반나이의 이야기, 일상


Taku Bannai, Promenade, 2017, 종이에 색연필, 콜라주.jpg
 
Taku Bannai, Way back, 2016, 종이에 색연필, 콜라주.jpg
 

“도대체 왜 이 사람들에게서
사랑에 빠질 징조를 느낄 수 있는 거지?”


이 의문은 직접 그림을 보자 풀렸다. 그림 속 인물들은 전부 자신이 처한 아름다운 풍경이 아닌, 즉 ‘이 곳이 아닌’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노을을 보거나, 땅을 보거나 하는 것과 같은. 어쩌면 얼굴이 세세하게 그려져 있지 않아서 그렇게 상상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사랑을 원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두 번째, 이르마 그루넨흘츠의 이야기, 방황


Irma Gruenholz, Connections, 2015, digital print.jpg
 

“이 작가에게 붉은 실은 무슨 의미일까?”


신기했다. 같이 간 친구는 그림 앞에 있던 설치미술의 실은 초점을 잘 맞추면 하나의 모양으로 일치되었다가, 시선을 옮기면 달라지기도 한다고 했다. 나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가슴 속에서 곤두서 있는 실들이 너무 아파보였다. 내가 감정적으로 만들어버린 듯한, 교차된 실들을 넘어 만나는 모습도 흥미로웠다. 카르마가 만든 인연의 끈 같은 모습이었다.


 
세 번째, 안민정의 이야기, 욕망


안민정, 콩깍지에 관한 연구, 2014, digital print.jpg
 
안민정, 서로를 담다, 2014, 혼합매체.jpg

 
“이걸 보면 라캉의 욕망 이론이 생각나지 않아?”


욕망은 환유이다. 대상은 신기루처럼 잡는 순간 저만큼 물러난다. 대상은 욕망을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기에 인간은 대상을 향해 가고 또 간다. 죽음만이 욕망을 충족시키는 유일한 대상이다. 욕망은 기표이다. 그것은 완벽한 기의를 갖지 못하고 끝없이 의미를 지연시키는 텅 빈 연쇄고리이다.

-권택영, 라캉의 욕망이론 (욕망 이론 해설) 인용.
 

 
네 번째, 정보영의 이야기, 공허


정보영, Belonging  Together Within,  2013, oil on canvas.jpg
 
정보영, Transparent  Shadow, 2015, oil on canvas.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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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공허함을 빛으로 표현했을까?”


친구에 따르면, 빛은 먼 우주로부터 와서 우리 삶의 한 켠을 차지한다. 한 그림에는, 빛을 받지 못한 유리구슬과, 빛을 받은 유리구슬이 있었다. 친구는 이 두 유리구슬 사이에 큰 벽이 있어서 늘 넘어가기 힘들다고 했다. 나는 그런 친구가 안타까웠다. 그래서 빛을 받는 유리구슬과 받지 못하는 유리구슬 두 개를 동시에 보고 있는 자신을 응시하라고 말해 주었다. 밤이 가면, 아침이 오는 게 세상의 진리다. 친구는 마지막 그림 속에서 내가 녹아버린 초인 줄만 알고 있었던 것이 드레스를 입은 여자라고 일깨워 주었다. 우주의 빛으로부터 와서 어떤 방식으로 갑자기 생겨난 존재 같다고 했다.


 
다섯 번째, 신왕의 이야기, 집착


Hsin Wang, De-Selfing NO.08, 2014, pigment inkjet print.jpg
 
Hsin Wang, De-Selfing NO.12, 2014, pigment inkjet print.jpg

 
“으악, 보기만 해도 마음이 답답한걸”


만약 이 사진들이 관람객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 위한 목적으로 찍혔다면 왜인지 모를 거리감을 가졌을 것 같다. 너무 숨막히기 때문이다. 서로를 감싸다 못해 랩으로 감싸버리고, 살갗을 앙 물고 그 자국을 남기는 모습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너무 답답했다. 하지만 이 사진들이 작가 스스로 ‘자기 내려놓기 과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마음이 조금 슬퍼졌다. ‘맞아. 어쩌면 내 모습인걸.’ 하고. 사랑을 하면 얼마나 나빠질 수 있는 지 생각해봤다.


  
여섯 번째, 신단비이석예술의 이야기, 신뢰


신단비이석예술, 만남(MEET), 브룩클린 브릿지x덕수궁돌담길, 2015, print on canvas.jpg
 
신단비이석예술, 만짐(TOUCH),타임스퀘어x서강대교, 2015, print on canvas.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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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의자 


“나는 있잖아, 도저히 신뢰를 모르겠더라.
사람들은 어차피 다들 떠나게 되어 있던 걸.”


신뢰를 T/F라고 규정짓는 순간부터 조금 괴로워지는 것 같다. ‘너와 나의 신뢰는 진리지’라고 말하는 순간 폭력이 되는 것 같다. 정말로 사랑한다면 함께 있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되 떠날 길도 조금 열어 두는 것이 진짜 신뢰인 것 같다. 집착이 조금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한 문이 닫히자 다른 한 문이 열렸다. 이렇게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물론 행동하기 어렵다. 불안은 전염되기 너무 쉽고, 쉬운 길은 늘 사람을 미혹한다.

‘미혹되지 않도록 노력해보자.’고 친구는 말했다. 함께 보낸 시간들. 그 속에서 내 눈에는 너의 얼굴이, 너의 눈에는 내 얼굴이 비춘다. 우리는 절대 스스로의 얼굴을 기억하지 않는다. 기억하는 것은 상대방의 얼굴이다. 서로가 서로를 떠나더라도, 서로의 기억을 합쳐야 그 추억은 온전해진다. 그게 신뢰의 다른 얼굴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시간을 보냈다는 이유만으로.
 

 
일곱 번째, 이이언+홍은희의 이야기, 고독




“쉬운 무력감보다는 진심어린 고독이 나을 거야.”


이이언의 노래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의 노래를 쉬운 무력감이 들 때 들으면 분명 독이 된다. 그래서 그 때에는 잘 듣지 않는다. 이기심에 나쁜 생각을 하면 결국 자기를 파괴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무력감은 거짓말이다. 거짓말이 도피처로 편한 순간을 경계한다. 마음이 아픈 고독으로 울어야 스스로에게 용서를 받을 수 있다. 거짓 울음은 자기를 잃어버리게 만든다. 신기한 점이 있었다. 나는 뮤비 속 남자에게 감정을 이입해서 봤는데, 친구는 여자에게 감정을 이입해서 봤다고 했다. 어쨌든 마지막에 보인 듯한 자기동일시가, 고전 문학 교수님이 ‘세상에서 인간에 대해 가장 슬픈 이야기’라고 말씀해 주신 나르키소스 이야기 속 나르키소스처럼 보이기도 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자신만 사랑하는’ 나르시즘은 망상을 일으킨다. 울어도 그저 연극 속 거짓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에 사로잡힌 망상과 그 망상이 연출한 연극에 스스로 각본, 감독, 배우, 관객이 되는 인간은 슬프다.
 

 
여덟 번째, 밥 캐리의 이야기, 용기


Bob Carey, Fame. Wildwood. New Jersey, 2016, digital archival print.jpg
 
Bob Carey, Jeffs Bell 407. Jet Linx Denver. Colorado, 2016, digital archival print.jpg
 

“자신의 조그마한 일에
다른 사람들이 가슴 뛰게 만드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인 것 같아!”


그런 것을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태초에 농사를 짓겠다고 마음 먹은 사람에게, 분명 옆의 누군가는 ‘그런 거 하지 말고 빨리 열매나 좀 주워 와!’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의 노력은 누군가를 감동시켰고 덕분에 세상을 바꿨다. 사람들이 몰랐거나,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고, 그것을 알려주는 일은 기적 같은 일인 것 같다. 그런 일은 용기가 정말 중요하다. 옆에서 그만두라고 하는 말을 무시하고 하고 싶은 걸 하는 용기 말이다. 그저 아픈 배우자를 웃기기 위해 이 일을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 문득 아빠가 엄마를 위해 이상한 춤을 추고 엄마는 옆에서 마구 웃던 상황이 생각났고, 그리워졌다. 엄마를 그렇게 웃길 수 있는 사람은 아빠 뿐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홉 번째, 김현수의 이야기, 희생


김현수, [breik], 2008, mixed media.jpg
 
김현수, Antler, 2011, mixed media.jpg

 
“왜 자기가 하려고 하는 일을 하는데 왜 희생이 되지?”


궁금했다. 자기가 하려는 일을 하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이 아닌가? 자신을 위한 행동인데, 왜 희생이 되는 걸까? 소년으로서의 자신을 간직하기 위해 계속해서 뿔을 잘라내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씩 이해가 됐다.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걷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하구나. 안락한 삶을 선택하면 스릴 넘치는 삶을 포기하는 거고, 뭐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그림에서는 뿔을 잘라내지 않고 사슴이 되어버린 듯한 그림도 있었다. 친구는 이 그림이 모순적이라고 생각했다. 사슴은 원래 순수함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사슴이 된 것은 어쩌면 순수한 소년이 바깥 세상에 보이는 모습일 지도 모르는데. 어쩌면 한 삶이 아이콘으로 남는 순간 그 종류의 삶은 끝난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향해 싸워가야지만 소년의 삶 그대로 남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


 
열 번째, 그들의 방, 홍지윤의 이야기, 기쁨.


홍지윤, Bohemian Edition-Bohemian  in the wind, 2008, C-print mounted on plexiglas.jpg
 
홍지윤, Bohemian Edition-Bohemian in the Rainbow 2, 2008, C-print Mounted on Plexiglas.jpg

 
“동화는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 왜?”


합체되었다는 느낌이 들면, 너무 기뻐서 세상이 무지갯빛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기쁨이 영원하기를 바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축복을 빌어주는 일 뿐이다. 하지만 좋은 결말과 행복한 결말은 조금 다른 것 같다. 결말이 조금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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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땠어?"


근처 밥집에 앉아 방금 보고 온 전시회를 생각해봤다. 오랜만에 혼자가 아니라서 너무 좋았다. 서로만 알고 있는 오래된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와 함께 전시회를 감상했다. 밥집에서는 그냥 일상 이야기를 했다. 그것도 좋았다. 며칠 뒤 친구는 그 기억으로 그간 며칠 간 일상을 버티고 있다고 했다. 문득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라는 시집 이름이 생각났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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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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