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맥베스와 함께 하는 실존적 고민

글 입력 2017.11.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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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_포스터.jpg
 

[PREVIEW]
맥베스와 함께 하는 실존적 고민



ㅇ 일시 : 2017. 11. 9(목)~ 11.19(일)
평일 8시/토 4시, 7시/일4시 (월 쉼)
ㅇ 장소 : 나온씨어터
ㅇ 러닝타임 : 11분
ㅇ 제작 : 창작집단 몬스터
ㅇ 후원 : 서울특별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ㅇ 기획 : K아트플래닛
ㅇ 관람연령 : 만 13세 이상
ㅇ 티켓 : 전석 30,000원
 (중고대학생, 25세 미만 청년 50% 할인)
ㅇ 예매 : 인터파크티켓,  대학로티켓닷컴




1. 맥베스, 그 무거운 고전의 이름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맥베스>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려고 한다. 온갖 전공서의 서문에 지쳐버린 필자도 읽는 사람의 노고를 안다. 하지만 필자는 한 시간전 갑자기 잡힌 데이트 약속과 시놉시스 없는 영화가 얼마나 힘겨운 것인지도 알고 있다. 아무리 재밌고 즐겁고 설레는 경험도 전조 없이는 당황스럽게 느껴지는 법이다. 필자는 먼저 <맥베스>라는 고전이 가져오는 무거운 이름을 조금은 가볍게 해줄 기본적인 정보를 설명하려고 한다. <맥베스>는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쓴 비극으로,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가장 짧고, 급속한 극의 전개로 긴장감을 유지한다. <맥베스>는 우리가 흔히 4대 비극이라고 하는 햄릿, 오셀로, 리어왕, 중 하나이면서 마지막으로 쓰인 작품이다. <맥베스>는 시종 빛이 차단된 밤이나 어두운 장소에서 진행되며, 극 전체가 암흑의 이미지로 충만하다. 이는 극 전체의 무질서와 혼란을 암시하며, 극의 주제인 '악'에 어울리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어두운 배경으로 진행되는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스코틀랜드의 장군 맥베스는 막료 뱅코와 더불어서 개선하는 도중 황야에서 세 마녀를 만나 그와 뱅코의 자손이 앞으로 왕이 된다는 예언을 듣는다. 이를 듣고 남모를 야심에 불붙은 맥베스는 망설이면서도 그 이상으로 야심 있는 부인에게 사주를 받아 때마침 마중 나온 왕 덩컨을 살해하고, 그 후 뱅코와 파이프의 영주 맥더프의 처자마저 죽인다. 하지만 맥베스는 뱅코의 망령에 시달리고, 부인은 양심의 가책으로 말미암아 몽유병자가 되었다가 끝내 자살한다. 마녀의 두 번째 예언은 버넘의 숲이 움직이지 않는 한, 또 여자에게서 태어난 것에는 맥베스가 결코 패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덩컨의 유아 말캄은 버넘 숲의 나뭇가지를 들고 쳐들어오고 맥더프도 제왕절개로 태어났다는 말에 맥베스의 마음이 꺾여 맥더프의 칼에 넘어진다. 결국 맥베스는 맥더프와 싸워 끝내 맥더프가 맥베스를 죽였고 맥더프는 던컨의 아들에게 왕위를 돌려주었다.




2.맥베스의 고뇌에 대한 연극의 새로운 해석

필자는 <맥베스>의 이야기를 유혹과 야망에 시달리는 영웅의 타락으로 기억한다. 앞서 말했지만,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과 다르게 <맥베스>는 '나쁜 주인공'이었다.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베트맨보다 조커가 더 좋아했던 것처럼, 필자는 맥베스를 남몰래 응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필자의 특이한 취향(?)은 규격에 맞춰진 현대인들이 꿈꾸는 종말론적인 판타지가 작용했기 때문인 것 같다. 분업화되고 사회의 규준에 신음하는 우리와 다르게 조커는 도덕과 윤리, 사회구조를 넘나든다. 그가 서슴없이 돈을 태울 수 있는 것도 그가 '돈'이 아닌 구조를 불싸지르는 나쁜 놈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모든 규준에서 자유로운 조커를 부러워하거나 통쾌해한 적 있다면, 나는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도 새끈한 자동차와 아름다운 남녀를 보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의 초라함을 느낀 적 있지 않은가? 현대사회는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만족하기엔 세상이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고 부러워하게 만든다. 당신의 대답을 잠깐 미뤄두고, 필자에게 멕베스는 '그' 욕망에 휩쓸린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조커처럼 모든 것을 불태우기에는 너무나 '인간적'이었다. 그는 조커와 다르게 고뇌하고, 괴로워하고, 그러면서도 그의 욕망에 고개를 끄덕이고만 인간이다. 조커라는 인물상은 말 그대로 '나쁜 놈' 판타지였지만, 맥베스는 판타지나 단순한 '나쁜 놈'이 되기에는 너무나 우릴 닮았다. 맥베스의 야망과 욕망을 자극하는 마녀들의 예언을 우리 안에 존재하는 어두운 욕망이라고 치환하면, 영웅이기를 포기하면서 왕좌를 탐하는 맥베스의 모습에 우리는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사회에 부활해 다시 고뇌하는 맥베스는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 빌어먹을 예언들이
날 여기까지 데리고 온 거잖아?”


누구나 선택의 기로에서
누군가의 조언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려버린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물에 대해 
타인의 책임’으로 ‘운명의 장난’으로
핑계를 대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그런데 과연 내 삶이 타인의 말이나 운명,
혹은 숙명으로 움직여질 수 있을까?

그 모든 결정들 맨 밑바닥에는 
내’가 ‘나의 욕망’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건 아닐까?

<맥베스>-King’s Choice 는
그 답을 관객과 함께 찾아보는
실험적, 심리적인 음악극이다.


이렇듯 현대사회에서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맥베스지만, 유독 이번 연극 <맥베스>가 유난히 기대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연극 <맥베스>는 운명과 선택, 그리고 삶의 주체성에 주안점을 두었다. 당장 논문사이트에서 맥베스 논문을 찾아봐도 알겠지만, 맥베스는 선과 악의 갈등으로 해석되고 있다. 마녀들의 애매한 언어의 유혹으로 떠오른 욕망에 굴복하고 파괴되는 맥베스는 실존의 문제로 다뤄지기보다 내면의 선과 악의 갈등으로 해석되곤 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연극 <맥베스> 는 다분히 실존주의적인 모습을 띤다. 여기서 실존주의란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는 것, 다시 말해서 인간은 주체성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상을 말한다. 분업화되고 마트에 전시되는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연극의 새로운 해석은 기존 작품보다 더 현대사회에 걸맞다고 할 수 있겠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맥베스를 음악극으로 표현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고백하자면 필자는 연극이나 오페라는 비교적 많이 접한 데 비하여, '음악극'을 접해본 것은 처음이다. 음악을 '음학'이라기 보다 막연한 즐거움으로 느끼고 있는 필자로서는 그들이 보여줄 맥베스의 음악이 어떤 것일지는 잘 예상되지는 않는다. 극장을 채울 맥베스와, 그의 연인은 어떤 소리를 낼까? 그럼 기대와 설렘을 안고, 죄를 저질렀지만 우리와 닮아 미워할 수 없는 맥베스를 만나러 가자.


맥베스_웹배너_700px.jpg
 

참고
-위키피디아
-[박기범, 맥베스에 나타난 이미지 분석, 단국대학교 영어교육 전공 석사 논문,2008]


[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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