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영웅에 대해서,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공연 - [공연]

허황에 사로잡히면 괴물이 됩니다.
글 입력 2017.11.10 18:5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gavrilov.jpg
 

그렇게 연주를 보고, 어젯밤 꿈에서, 고등학교 시절로 다시 돌아가, 플룻을 연주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반 전체가 클래식 음악을 합주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반 친구들이 보통 고등학생이 아니었습니다. 전부 역사 속에서 한 가닥 하는 연주자들이었습니다. 저는 연주자들을 잘 모르기에, 재즈 분야 전문가이건 클래식 분야 전문가이건 마구 섞여 있었고, 대부분 얼굴도 잘 몰라서 상상한 그대로의 모습을 띄고 함께 연주했습니다. 연주회의 플룻이 아름다웠던 탓일까요, 아니면 오랜만에 플룻을 보니 고등학교 시절, 친구와 몰래 음악실로 가서 친구는 피아노를, 저는 플룻을 연주하던 게 떠올랐을까요. 아니면 고등학교 수행평가로 ‘언제나 몇 번이라도’를 준비하던, 플룻장으로서의 제가 어제 연주회에서 팔짱을 끼고 연주를 지켜보던 한 플루니스트와 겹쳐보였던 탓일까요.


hogwarts_0_1.jpg
워너 브라더스 픽쳐스


플룻을 불고 고등학교 교실 속 역사적으로 위대한 그들과 마구 놀고 떠들면서 ‘아, 나는 이런 학교에서 이렇게 즐겁게 다니고 싶었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왕 학교 다닐 거 해리포터처럼 신나게 다니고 싶었어요. 하지만 현실 속 저는 냉소적이었죠. 회한이 남고, 인내가 아쉽군요.


루이 암스트롱.jpg
루이 암스트롱이 이렇게 생기셨군요!!


꿈에서, 스스로는 루이 암스트롱이라고 자부하는 - 하지만 저는 루이 암스트롱의 얼굴을 몰라서인지, 분명 모건 프리먼인 - 남자가 모두에게 척이라고 불리는 - 깨어나서 생각해보니 쳇 (쳇 베이커)을 잘못 들은 것 같습니다. - 남자에게 ‘쟤는 30년동안 플롯을 연주하지 않았어. 그런데도 저렇게 잘 부르다니.’라고 말한 게 어쩌면 제 욕망일지도 모릅니다. 연습을 하지 않고도, 잘해내고 싶다는 욕심. 만약 연습을 하지 않고도 공부를 잘해냈다면, 친구들과 놀 시간도 더 많았을 거고, 내가 도전해볼 수 있는 직업도 많았을 텐데. 그러면 활동의 반경이 더 넓어져서 마법 같은 일들이 정말 많이 벌어졌을 텐데.





지금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렇게 글로 꿈을 남기는 중입니다. 꿈을 더듬다 보니, 어쩌면 중 1 영재원에서 만난, 하얗고 예쁜 언니와 더 놀고 싶어서 저는 꿈 속에서 어떤 언니와 놀았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 1 때 저는 그 언니랑 노는 걸 선택하는 대신 공부를 선택했거든요. 제 까칠함은 거기서부터 시작된 듯도 합니다.


Gavrilov 3.jpg
 

어쩌다 이런 꿈을 꾸었을까요? 7시 16분에 잠깐 깨었다가 다시 잠들고 8시 18분에 다시 일어났는데, 그 사이에 룸메가 부스럭둥당대며 밖에 나갈 준비를 했거든요. 그 소리가 어쩌면 합주 연습 소리였을 지도 몰라요. 그리고 마지막에 반 일동이 한 아름다운 합주는 어쩌면 7시 50분에 맞춰 둔 핸드폰 알람소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폰 알람 소리는 아시다시피 정말 잔잔합니다. (원래는 바로 듣고 일어나는데, 오늘은 전혀 못 듣고 8시 18분에 일어났긴 했어요.)

어쩌면 그 하얗고 예쁜 언니가 손열음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유튜브 동영상을 켰는데 지금 우연히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3악장을 듣고 있는 중입니다.


길가메쉬 서사시.jpg
길가메쉬 서사시가 적혀 있는 점판.


무엇이 좋은 연주인가. 잘 모르겠어요. 고전 문학 교수님이 해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던지 삶은 각자의 의미가 있다. 가브릴로프 씨도 분명 칭찬할 점이 있을 거에요.

30년 동안 플룻을 연주해보지 않고 잘해내는 게 가능할까요? 쳇 베이커는 죽었어요. 이렇게 그 사람이 죽었다면 그렇겠죠. 삶이 멈추면 그 노력이 창조해내는 의미도 사라질 테니까요. 물론 가끔 기적은 일어나요. 어쩌면 가브릴로프 씨도, 저도 기적의 어떤 순간을 노리고 바보처럼, 그 기적을 억지로 살아내려 하는 인간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연습, 인내와 회한은 기적을 위해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가메시 서사시 속 길가메시는 자신의 전부를 잃어서야 ‘전부 아는 자’가 되었죠. 허황에 사로잡히면 괴물이 됩니다.


뚱이로 변한 러시아 정교회 별.png
Vladimir Malder


어젯밤 연주를 들으면서 한 사진이 생각났어요. 스폰지밥 ‘뚱이’로 변신한 구소련 상징 건축물인데요, 어떤 사람이 한밤중 사이에 소비에트 스타에다 뚱이를 그려놓았더라고요. 현지 경찰은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이 사람을 찾고 있는 중이래요. 엄청나게 높은 건물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 건물에 그 밤중에 어떻게 올라가서 그렸는지 모르겠어요.


11.9(목)_GAVRILOV 포스터.JPG
 


성채윤.jpg
 

[성채윤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