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자야의 기억과 백석의 언어가 완성하는 미완의 사랑 : 뮤지컬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글 입력 2017.11.07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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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이야기

인생이 하나의 full 영상이라면, 기억은 ‘pause’ 된 것들의 집합이다.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한 모든 것들이 의미를 가지진 못한다. 특정한 사건, 특정한 인물, 특정한 시공간이 우리에게 선택되고, ‘기억’이란 이름으로 남는다. 선택된 것들을 모아 하나의 줄에 꿸 때, 그것은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죽음을 앞둔 한 여자가 인생을 되돌아본다. 그녀가 돌아보는 것은 유년시절의 찬란함일 수도 있고, 직업 생활의 고단함일 수도 있다. 이 즐비한 사건들 속 그녀가 선택한 것은 한 시인이다. 그녀 평생을 걸쳐 사랑했던 한 시인, 한 남자에 대한 기억이 선택되어 비로소 이야기가 된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그녀 정인의 시가 무대 위로 읊어지는 가운데, 그녀, 자야가 걸음을 옮긴다. 자야와 백석의 사랑이라는 미완의 이야기는 그렇게 대나무가 빽빽한 무대 위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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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中
 
 
이야기는 백석의 언어로 노래된다. 민족상잔의 비극으로, 살아있어도 영원한 이별을 해야 했던 연인의 비극은 시인의 아름다운 언어를 통해 구체화된다. 그러니 ‘나타샤’의 정체에 대한 의문은 이 이야기 속에선 참으로 의미 없는 논쟁일 수밖에. 자야의 기억 속에서, 백석이 그녀에게 이 시를 건넸다면, -그래, 그게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타샤는 오로지 자야일 수밖에 없는 것을 말이다. 자야의 회상 속에서 젊은 날의 백석이 그녀에게 다시 찾아온다. 고향으로 가자고 그녀에게 손을 내민다. 두 사람의 만남, 잠시간의 이별, 동거, 질투, 좌절, 영원한 이별이 평상 위 무대에서 펼쳐진다. 그렇게, 남북으로 갈라진 공간 속에서 만나지 못했던 두 사람의 미완의 사랑 이야기는 그녀의 기억 속 그의 언어로, 눈이 나릴 것만 같은 겨울날 당도한다.


 
자야, 사랑의 주체

   
극의 중심에는 늙은 자야가 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자야는 젊은 날의 자야가 되었다가도, 금세 허리가 굽은 노인으로 변모한다. 그녀 앞에 나타난 백석을 놀란 얼굴로 바라보던 늙은 자야는 또 금세 젊은 날의 자야가 되어 그 회상 속으로 들어가, 기억의 단면을 재현한다. 그 속에서 자야는 백석의 얼굴을 보며 설렘을 감추지 못하다가도, 다시 늙은 자야로 돌아가 사무치는 그리움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자야가 계속해서 월경하는 회상과 실재의 경계 속에서 관객들은 오롯한 자야의 얼굴을 마주한다. 객석을 바라보는 자야의 맨얼굴은 끊임없이 이 이야기의 주체가 자야임을 상기시킨다. 사랑을 향한 기다림도, 사랑도, 지난날에 대한 후회도 모두 자야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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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한 남자를 향한 자야의 기다림이 전통적 여성상의 재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생을 대하는 자야의 태도는 대단히 주체적이다. 생존을 위해 붉은 치마를 두르고 백석이 싫어하던 기생 일을 다시 시작하는 끈질긴 생활력과 백석을 따라나서지 않기로 결심하고, 돈을 벌어 그의 시를 위해 바치던 자야의 사랑은, 전통적 여성상의 피동적 사랑이 아닌, 백석을 향한 자야의 주체적 사랑이다. 자신이 ‘시의 대상’으로만, ‘백석의 여자’로만 남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자야는 말한다. “이 시엔 내 젊고 아름다웠던 시절이 고스란히 있으니 고마울 따름입니다.”라고. 그에 대한, 그의 시에 대한 자야의 사랑은 숭고하게까지 느껴지며, 자야는 백석의 언어로 노래되는 극의 중심에 단단히 서 있다.

 
 
강렬한 색채로 덧칠한 스케치의 나열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마치 한 장 한 장의 스케치를 나열하는 것처럼, 자야와 백석의 생애 중 단면만을 떼어내 무대에 늘어놓는다. 기억의 자의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듯한 이 극은, 선택한 것은 명백히 펼쳐놓고, 배제한 것은 과감히 들어낸다. 이야기에 설명과 촘촘한 서사를 덧붙여 밀도 있게 진행하는 것은 포기하면서, 장면 장면을 충실히 표현해내는 데 집중한다. 장면 사이의 완급 조절은 능수능란하다. 애절한 감성을 극 전반에 깔아두면서도, 원치 않는 결혼을 하게 된 백석의 처지를 해학적으로 풀어내며, 비극의 정서를 내내 고집하진 않는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파놓은, 그리고 ‘기억’의 본질상 어쩔 수 없는, 커다란 구멍들은 초반부 관객의 집중력을 휘어잡진 못한다. 여기에 대나무 사이로 왔다 갔다 움직이는, 정제되지 않은 동선도 한몫하며, 어쩐지 구심점이 없이 흘러가는 이야기로만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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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빈틈에 채워지는 것은 강렬한 색채감과 움직임이다. 특히 ‘북관의 계집’ 넘버에서 색채와 움직임은 빛을 발하는데, 어두운 무대에 내려앉는 치마의 붉은 색감과, 허리에 치마를 두른 후, 치마를 천처럼 이리저리 휘저으며 무너지는 자야의 모습을 통해 그녀의 고통을 설명하지 않고도 감각적으로 구현해낸다. 자야와 백석의 의상 또한 주목할 만하다. 노인 자야가 입는 까만색 장옷, 젊은 날의 자야가 입는 연분홍색 치마, 기생 일을 다시 시작하며 허리에 두르는 붉은 치마, 죽은 이를 상징하는 소복. 백석의 흰 양복과 주황색 넥타이, 그리고 엔딩에 이르러 자야를 찾아올 때 입은 초록색 모던보이의 양복. 극은 시공간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해주지 않고, 의상의 색감을 통해 당면한 씬이 회상인지, 실재인지를 파악하는 것을 관객의 몫으로 남겨둔다.



성공적인 백석 시의 무대화

 
백석의 시는 넘버가 되어, 이 스케치 속에서 이야기를 만든다. 한 대의 피아노가 만드는 단조로운 선율은 시와 만나, 자야와 백석의 사랑을 노래한다. 백석의 <바다>, <절망>, <여승>, <흰 바람벽이 있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등, 백석의 시는 등장하는 모든 넘버의 모티브가 된다. 이때, 익숙하지 않은 시어들이 넘버에 포진해 있어, 넘버에 공감하고 집중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확한 의미보다는 감상으로, 느낌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거기에 흔히들 생각하는 드라마틱한 ‘뮤지컬’적 넘버를 기대했다면, 이 단촐한 넘버들은 마냥 밋밋하고 지루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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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뮤지컬의 강점은 백석의 시 활용에 있다.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백석의 시를 무대 위에 안착시키는 것에 성공했는데, 백석 생애라는 거시적인 서사에 시를 욱여넣지 않은 구성이 성공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을 주인공으로 한 많은 이야기들이 시인의 생애라는 큰 서사 안에서 시의 의미와 위치를 찾는다면,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오히려 시인의 생 그 자체보다는 시에 방점을 찍는다. 자야의 기억이 백석의 언어로 노래된다는 극의 전체적인 구성에 따라, 백석의 생애는 상대적으로 주변부에 머무르고, 오히려 그의 시가 작품 전반을 지배한다. 스케치 같은 서사 위에서 꼿꼿이 중심을 잡고 있는 백석의 시는, ‘자야와 백석의 사랑 이야기’를 구축해내며 피아노 선율 위에서 제 목소리를 낸다. 그렇기에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송스루 뮤지컬이 아님에도 대사의 언어보다 넘버의 언어가 더 큰 힘을 지니며, 백석의 언어를 성공적으로 극 속에 담는다.
 
 
  
눈이 나리는 날 

 
자의적인 선택에 의해, 그리고 백석의 언어에 의해 꿰어졌던 자야의 기억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엔딩 넘버에 이르러 인정받는다. 백석의 나타샤는 자야 당신이라고, 자야 이야기의 자의성은 마법처럼 확인받는다. 자야의 기억이 만들어왔던, 흰 양복에 노란 넥타이를 맨 백석이 아닌, 초록빛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마치 영혼 같은 백석이 늙은 자야 앞에 나타난다. 그리곤 ‘나타샤’가 누군지 알려주지 않았던 그가 자야를 바라보며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눈이 푹푹 나린다’라 읊는다. 백석의 재등장은 자야가 넘나들던 회상과 실재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판타지적 시공간을 만든다. 아마, 죽은 자야를 마중나온 백석의 혼일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으면, 대나무 위로 내리는 하얀 조명이 그가 그녀를 찾아온, 그녀가 그를 찾아온, 그래서 눈이 나리는 마법 같은 순간을 선사한다. 눈이 나리는 날, 서로 손을 잡고 대나무 숲 저편의 마가리로 향하는 자야와 백석의 뒷모습을 관객은 잔뜩 눈물을 흘리며 바라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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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시만 있으면 아무래도 괜찮아요.”


자야의 대사는 극 전반에 펼쳐진 백석 시의 아름다움과 그를 향한 자야의 사랑, 두 사람의 비극적인 사랑을 모두 아우르며, 결국 봉합한다. 지루하고 산만했던 요소들은 이 봉합과 결말의 감성 앞에서 맥을 못 춘다. 과감한 구성과 영리한 시의 활용은 미완의 사랑을 하나의 완결된 형태로 완성했고, 자야의 기억과 백석의 언어로 완성된 사랑 이야기는 눈이 나리는 겨울 날 우리 앞에 당도했다. 응앙응앙, 명징하게 드러나는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흰 당나귀처럼 좋아서, 슬퍼서 울고 싶은 기분은 어쩔 수 없나보다.



공연 정보



공연기간
2017 10 19 ~ 2018 1 28
공연장소
대학로 유니플렉스 2
공연시간
,,20 / 16, 20/ 15, 19/ 14, 18(월 공연 없음)
티켓가격
당나귀석 60,000 / 응앙응앙석 40,000
관람연령
7세 이상 (미취학 아동 관람 불가)
러닝타임
100 (인터미션 없음)
출연배우
강필석, 김경수, 오종혁, 고상호, 진태화, 정운선, 곽선영, 정인지, 최연우,
윤석원, 유승현, 안재영, 김바다
주최/제작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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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제공 - (주)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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