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PLASTIC FANTASTIC : 일상 속 상상 사용법 [시각예술]

글 입력 2017.11.08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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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밖의 공간으로
 
 중도휴학을 했다. 개강 후 학기가 반 정도 지난 시점이어서 이미 스트레스는 받을대로 받은 상태였고, 정작 등록금은 전액을 다 돌려받을 수 없었다. 잃는 것이 얻는 것보다 많은, 남들이 보기에는 조금만 더 버티면 될 것을 중간에 포기해버리는 바보같은 결정이었을 수 있지만.

"내 남은 학기, 남들이 버텨줄 것 아니니까!"

 휴학원서를 내고 학교 건물을 나왔다. 정말 뜬금없는 생각이었지만, 이번 중도휴학 결정이 살면서 가장 주체적으로 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시리 웃음이 났고, 가슴 속 어딘가가 간질간질했다.
 
 가보지 못한 새로운 곳에 가보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여름방학부터 지금까지 전시회에 갔던 기억이 없었다. '10월 전시회'를 검색한 뒤 제목이 마음에 드는 전시를 골라서 지도 어플을 켰다. '한남동 디뮤지엄'



PLASTIC FANTASTIC : 상상 사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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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플라스틱 제품이 되는 꿈을 꾸는,
작은 폴리머 알갱이들
                          

 유쾌한 이름이 마음에 들어 찾아간 전시회에서 내가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당황스러움'이었다.

 전시되는 작품들이 플라스틱 소재라는 것은 알고 갔지만, 일상에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아니 당장 근처 식당에 가도 쉽게 구할 수 있을 법한 플라스틱 식기, 수납장, 조명, 의자가 작품일 줄이야!

 미술관에 소변기가 덩그라니 전시되어 있는 것을 처음 목격했을 때, 사람들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일상 속 여기저기 뒤섞여 있어, 특별하게 의식하지 않으면 눈에 보이지도 않을 법한 물건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제각기 서 있으니 굉장히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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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샐러드 주걱.
플라스틱의 투명함을 이용해서 작품 설명 뒤로
작품이 보이도록 연출한 점이 신선하고 좋았다.
  주걱도 설명판도 모두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둘 중 무엇이 진짜 작품인지 모를 일이다.
둘 다 작품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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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면에서 볼 때 빨간색인줄로만 알았던 작품.
몸을 한 걸음 움직여 보니 무색의 작품이었다.
비추는 빛의 색에 따라 무한한 색을 가질 수 있는
플라스틱 소재의 매력이 잘 느껴진다.



'일상의 것’을 ‘일상 밖의 것’으로

 일상으로부터 떼어 나와서 홀로 서있는 플라스틱 일상용품들이 내게 주는 당황스러움은 잠깐이었다.

 그들이 일상 속에서 수행하는 기능, 즉 생활 용품으로서 그것들이 가지는 '실용성'을 전시를 통해 순간적으로나마 완전히 잊고, 있는 그대로의 작품을 감상해보니 플라스틱 소재와 작품 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인상과 느낌을 만끽할 수 있었다. 플라스틱 특유의 매끄러움이 뿜어내는 비현실적인 느낌, 그리고 그 비현실감을 한 층 더하는 작품 자체의 색감, 곡선, 형태 등 평소에는 해보지 못했을 감상이었다.  또한, '플라스틱'이라는 소재 자체가 가지는 본연의 불투명함이 있어서 유리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빛을 통과시켜서 플라스틱 조명은 그것만의 고유한 분위기가 있었다.

 전시되어 있는  플라스틱 작품들이 현실 속에서는 또 나름대로 제 기능을 할 것을 생각하니, 아까 조그맣던 폴리머 알갱이들이 생각나서 기특하기도 했다. 이렇게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위치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작품들은 전시 공간이 또한 현실인듯, 현실이 아닌듯, 두 영역의 경계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심오한 미적 감각을 요구하는 전시도, 거창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전시도 아니었지만, 나에게는 '나의 일상'이 '일상 밖의 공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준 전시이다. 얼핏 들으면 말 장난 같이 들린다. 아니, 어쩌면 괜히 거창한 척 꾸미는 말 장난일지도 모른다.
 
 전시를 통해 얻은 것은 나의 일상 속에도 오늘 이 전시회의 플라스틱 생활용품처럼, 하나의 예술로서 내게 신선한 느낌을 줄, 나를 내 일상 밖의 공간으로 끌어내줄 환상적인 무엇인가가 있을 수 있다는 높은 가능성이다. '일상 '속'에 있는 일상 '밖'의 공간. PLASTIC FANTASTIC은 내년 3월까지 하는 긴 전시이니 앞의 말이 와닿지 않는다면 다녀오는 것을 추천해드린다.


 마지막 사진은 심신이 지친 중도휴학생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해준 전시장 벽에 적힌 문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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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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