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년이 온다 [문학]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다
글 입력 2017.11.08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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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를 죽였을까, 누가 누나를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생각할수록 그 낯선 힘은 단단해졌어. 눈도 뺨도 없는 곳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피를 진하고 끈적끈적하게 만들었어.
 
누가 그 소년을 죽였을까. 그 소년은 죽었지만, 아직 살아있다. 소년의 혼은 살아서 계속 세상을 떠돌고 있다. 그 소년은 다른 세상에 사는 자신의 친구를 따라다닌다. 다른 세상에서는 군인들의 무자비한 폭행과 살인에 많은 사람이 죽게 되었다. 소년도 마찬가지였다. 영혼으로 떠돌고 있는 소년, 총에 맞아 죽는 사람, 군인의 곤봉에 맞아 죽는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하지만 그 군인들은 그 비명을 듣지 못한다. 그들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한다. 그들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미세하다. 너무나도 미세하기 때문에 군인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반 이상의 문장들에 먹줄이 그어져 있다. 그다음 삼십 페이지가량은 거의 대부분의 문장들에 먹줄이 그어져 있다.
 
취조실에서 맞은 뺨 7대. 출판을 막으려는 국가는 그녀에게 폭력을 가한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문장이나 책들은 모조리 검은색으로 가린다. 검은색으로 가린 것은 그들의 잔인한 행동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검은색을 칠하는 것은 그들의 악행을 더욱더 드러낼 뿐이다. 아직 죽지 못한 소년처럼 말하려는 그녀가 말하지 못하게 그녀의 뺨을 때린다. 그래도 은숙은 아무 비명도 없이 뺨을 맞는다. 얼굴이 부었는데도, 그녀는 계속해서 출판 작업을 계속한다. 계속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고 저항하고 있다. 폭력에 의한 상처는 아물었을까 그냥 잊은 것일까.

 
그러나 당신은 녹음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휴대용 녹음기의 반들반들한 플라스틱 모서리를, 마치 흠집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듯 신중하게 손끝으로 더듬는다.
 
성희와 같이 노동권에서 활동했던 선주. 그녀에게 시민군들의 증언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녀는 선뜻 승낙하지 않는다. 그녀는 시위에서 옷을 벗고 속옷만 입은 채 그들에게 저항했다. 그녀들의 은밀한 부위까지 그들이 폭력을 가하지 않을 거라 그녀들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녀들을 인간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마치 가축처럼, 그녀들은 흙바닥에 끌려다녔다. 그리고 그녀들을 각목으로, 그들의 발로 그녀들을 마구 폭행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의 죽음으로 옷을 벗고 울부짖는 그녀들을 더 이상 폭행하지 않을 거라 생각을 했지만, 그녀의 기대는 산산이 부셔졌다. 그의 신임을 받는 사람이 죗값을 치르지 않고, 당당히 서울에 입성하는 것을 그녀는 보았다. 그리고 더 이상 말하지 않기 시작했다.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수감된 방에서 매일매일 고통스러운 고문을 받는 남자와 김진수. 도청에 찾아온 계엄군이 그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을 쐈다. 도청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사람 중 죽지 못한 사람들은 이곳에서 잔인한 고문을 받고 있다. 살았지만, 살지 못한 사람들. 그들은 죽음을 경험한다. 고문으로 인해 정신적 충격을 받고, 일상생활로 돌아오지 못하는 그들. 그들의 삶은 망가졌다. 국가는 그들에게 입을 막는 것뿐만 아니라, 말을 할 능력조차 상실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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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려한 휴가> 中 
 

『소년이 온다』는 국가가 개인에게 한 폭력을 다룬다. 그들의 입을 막고, 그들이 말할 능력을 상실하게 하고, 그리고 말하지 못하게 죽인다. 이 소설은 그런 사람들, 말할 수 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기록한다.


[오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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