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욕망은 어디로 흘러가는 가- 철의 문화사, 王이 사랑한 보물

글 입력 2017.10.31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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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철의 문화사
王이 사랑한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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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문화사, 왕의 사랑한 보물. ‘철’이랑 말이 주는 어감과 ‘보물’이라는 말이 주는 어감의 차이만큼 상반된 두 전시를 하루에 관람했다. 투박한 것과 아름다운 것. 역사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 평행선을 달릴 것이라 생각했던 두 전시였으나, 철의 문화사를 관람하고 왕이 사랑한 보물을 관람하니 두 번째 전시를 관람할 때는 이상한 기시감이 들었다. 두 전시가 어느 정도는 겹친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전혀 다른 두 전시에서 어떻게 기시감을 느꼈을까. 두 전시에 대한 리뷰를 통해서 그 기시감의 정체를 밝혀 보고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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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철의 문화사다. 쇠, 철, 강 철의 문화사의 1부 ‘철, 인류와 만나다’는 광물 자원으로써 철의 물리적 특성을 알아보고 인류가 철을 도구로 만들어간 과정을 말한다. 철은 다 같은 철이라고 생각했는데, ‘주철’과 ‘강철’이 나뉘고 또 어떻게 ‘주철’을 ‘강철’로 만들어나가는 가에 따라서 역사가 바뀌었다고 하니 느낌이 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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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금속 금, 사라지는 금속 철.”


전시에는 위와 같은 문구가 있었는데, 항상 ‘영원’을 갈망하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역사를 바꾼 것은 금보단 철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 오로라라는 현상이 지구 내부의 철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그렇게 1부는 ‘철’이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역사를 그려낸다. 그리고 1부 마지막 부분에 전시된 ‘철의 숲’은. 그 영향이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 미리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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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철, 권력을 낳다’는 철로서 이뤄낸 생산력 증가와, 그로 인한 전쟁을 말한다. 철을 잘 다루게 된 인류는 그로인해 생산력이 증대되고 보다 풍요롭게 살게 됐지만 인간의 욕망은 그저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여유는 ‘더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욕망하게 했다. 권력을 과시하고 다른 이들의 것을 뺏는다. 2부에선 그 인간의 추악한 욕망을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이러한 모습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던 것은 황남대총에 무더기로 매장돼있던 철덩어리들이었다. 철이 화폐가치를 가지기 시작하자 지배계층은 ‘철을 사용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이를 독점해 자신들의 권력을 과시하고자 했다. 총 3200여점의 철이, 그 중에서도 ‘덩이쇠’가 무더기로 묻혀있던 황남대총이 이를 증명한다. 죽은 후에도 자신의 권력을 자랑하고 싶어했던 것이다.
 
권력에 대한 과시. 이는 곧 전쟁으로 이어졌다. 단순히 ‘잘 살기’위해서라기보다, ‘남들보다 더 잘살기’위해. ‘남들의 것을 빼앗아 내가 지금보다 더 잘 살기 위해’ 벌어진 것이 전쟁이었다. 인가들에게 생산력 증대라는 꿈을 안겨주었던 철은 전쟁이라는 절망도 함께 안겨줬다. 전시장 내부에 ‘전쟁’을 나타내기 위해 있었던 빨간 방은 꺼림직해 들어가보지도 못했다. 인간의 추악한 욕망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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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철, 삶 속으로 들어오다’는 농기구 같은 생산을 위한 철이나, 무기같은 전쟁을 위한 철을 넘어 정말 일상적인 삶 속의 철을 조명한다. 3부에서 인상깊었던 것은 단연 철을 이용한 예술품들이었다.

“귀얄로 발라진 백토 바탕 위에 주저없는 필치로 그린 꽃이나 구름, 새나 물고기 같으 무늬들을 보면 익살스럽기도 하고 어리광스럽기도 해서 속이 후련해질 때가 가끔 있다.”
 
3부에는 최순우의 마음이 이해가는 작품들이 여럿 있었다. 민중들에게 친숙한 것은 철화임은 물론. 지배계층에게도 임진왜란 이후 청화에 대한 욕망을 대신했던 게 철화였다고 알고 있는데, 청화와 철화는 다른 매력이 있다. 청화는 섬세한 아름다움이 있다면, 철화는 대충 시원스레 그려낸 아름다움이 있다고 해야할까. 철화 작품에선 그 거침없는 붓질이 느껴지는 듯 해서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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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권은 단연 홀로 전시됐던 철불이었다. 늦은 시간에 방문해 전시장에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그래서인지 철불의 신비로움을 더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신묘한 힘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 철불에 가까이 가기가 망설여질 정도였다. 철은 인간에게 있어서 힘이자 권력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아름다움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 아름다움 조차 ‘권력에 대한 과시’로 쓰일 때가 많지만.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서 인간이 욕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철불을 마지막으로 철의 문화사 전시장을 나서서 왕이 사랑한 보물 전시장으로 향했다. 전시장 입구에 드레스덴에 대한 설명들이 나열된 벽면이 보였다. 거기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그린볼트가 폭격으로 한번 파괴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앞서 ‘힘’으로서, 더 많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 인간은 ‘철’로 무기를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그린볼트 또한 그 ‘철’에 의해, 인간의 욕망에 의해 한번 파괴된 적이 있었다니 기분이 묘했다. 

기묘한 기분을 뒤로하고 전시장으로 들어서자, 화려한 색감이 눈을 사로잡았다. 태양왕 루이 14세처럼 되고싶어했다는 아우구스투스를 보니 또다시 기시감이 들었다. 훨씬 화려하고, 훨씬 아름다웠지만 그럼에도 그린볼트와 덩어리쇠가 가득했던 황남대총이 겹쳐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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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4세처럼 되고 싶어서 황금 가면을 만들어 쓰고, 헤라클레스와 같은 모습으로 자신을 묘사했던 아우구스투스의 흔적이…위대하거나 대단하다기 보다, 안쓰럽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왜 이 사람은 자신을 과시하지 못해서 안달일까. 단순히 ‘아름다운 것을 사 모은다’는 것 보다, ‘예술품으로서 나의 대단함을 세상에 알린다!’는 느낌이 강해서. 예술을 애호했던 사람이라기보다 단순히 자신의 힘과 권력을 자랑하지 못해 안달난 사람처럼 느껴졌다. 권력과시라는 측면에선 전쟁을 일으켰던 이들과 비슷한 동기처럼 보였다. 욕망의 끝판왕이라고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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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강건왕 아우구스투스에 대한 개인적 소견과 달리, 전시 자체는 훌륭했다. 화려함의 끝판왕을 달리는 수많은 작품들은 시선을 뺏기 충분했다. ‘상아의 방’엔 ‘터닝기법’을 이용해 세공한 상아 작품들이 있었는데, 물레에 상아를 돌려서 이러한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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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보화의 방’에서 가장 눈에 띠었던 것은 수정으로 만든 잔이었다. 수정을 ‘녹지않는 얼음’이라고 믿었던 고대 그리스인들의 믿음 때문일까. 수정으로 만든 잔은 정말 무엇을 마시든 시원하고, 청량하게 마실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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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의 방’에 들어서고서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산호로 뿔을 표현한 악타이온 형상의 음료용기부터, 고둥으로 만들어진 술잔, 자개로 만들어진 앵무형상의 음료용기까지. 온갖 비싼 천연재료로 만들어진 화려한 작품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런 작품들이 세상에 탄생하게 할 정도라면, 아우구스투스의 어찌 보면 치졸한 그 욕망도 쓸모 있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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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방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도자기 궁전’이었다. 사실 도자기와 관련해서도 유럽과 중국에 자신을 과시하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유럽에서 자기를 시도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보석의 방과 마찬가지로, 치졸한 욕망도 쓸데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이센 자기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황색사자’ 식기세트와, ‘붉은 용’ 식기세트였다. 그저 중국의 자기를 따라하는데 급급했던 다른 자기들과 달리, ‘용’이나 ‘사자’등 동양의 모티프를 따왔지만 그럼에도 유럽의 미감으로 만든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동양과 유럽의 미감이 적절히 섞인 자기를 보자 느낌이 묘했다.

왕이 사랑한 보물 전시를 다 보고 나서자, 그린볼트 자체가 아우구스투스의 욕망의 결정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를 보기 전에는 단순히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이라고 생각했다면, 전시를 보고 나니 ‘자기과시 욕망’의 결정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전시를 보고나니 ‘인간의 욕망’에 대해서 고민해보게 됐다. 철이 생산력 증대를 가져왔던 것 처럼, 그린볼트의 아름다안 작품들이 만들어진 것 처럼. 그리고 전쟁으로 그 모든게 파괴됐던 것 처럼. 인간의 욕망은 인간을 파괴하기도, 발전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가 역사를 만들어 나간다. 어쩌면 인류의 역사 자체가 욕망의 역사일지도 모른다.

긍적적이기도, 부정적이기도 한 이 욕망. 나는 이 욕망을 어떻게 바라봐야하고 어떻게 다뤄야할까. 두 전시 내내 진득하게 나를 쫓아오던 '욕망'이란 글자의 무게가 새삼 무겁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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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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