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의 가슴이 기억할 멜로디, 뮤지컬 < 지킬 앤 하이드 > [공연예술]

불안과 확신을 넘나드는 감정의 선율
글 입력 2017.10.2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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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가장 좋았던 뮤지컬이 뭐야?”라고 물을 때마다, “딱 하나 꼽지는 못하겠고, 넘버랑 구성 따졌을 때, 나는 < 지킬 앤 하이드 >가 가장 좋았어”라고 대답해온 지도 어느덧 몇 년이 흘렀다. 필자에게 < 지킬 앤 하이드 >는 그런 존재였다. 그 곡들을 들을 때면, 아직도 그 감동에 살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깨닫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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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작품을 이야기하자면, 넘버(number)에 관한 말을 꺼내지 않을 수가 없다. 넘버는 공연에 수록된 곡하나하나를 일컫는 말이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필자는 책으로 먼저 작품을 접했고, 너무나 흥미진진하게 전개된 내용에 즐거워하며, 유명하다는 그 뮤지컬이 어서 무대에 올라가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소식을 확인했고, 학교 중간고사가 이틀 뒤였지만 아랑곳하지 않으며 예매했던 기억이 난다. 곡을 미리 찾아볼까 하는 어렴풋한 마음가짐으로 나름의 시도를 했지만 당시로서는 도대체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를 몰랐고, 결국 제대로 들어 보지 못한 채 공연장으로 향했다. 공연은 좋았다. 그러나 넘버를 미리 익히지 않고 간 대가는 톡톡히 치렀다. 이후 공연장에서 무심히 넘긴 넘버 하나하나의 진가를 이어폰을 통해 깨달으며, 얼마나 한스러워했는지 모른다. 그 이후로 올해 < 지킬 앤 하이드> 내한 팀이 방문하기까지 꼬박 7년가량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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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 지킬 앤 하이드 (Jekyll and Hyde) > 넘버 리스트


‘This is the Moment(지금 이 순간)’으로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뮤지컬이지만, 이 뮤지컬은 해당 곡을 제외하고도 그 매력이 충분한 작품이다. 프랭크 와일드혼(Frank Wildhorn) 작곡, 레슬리 브리커스(Leslie Bricusse)스티브 쿠덴(Steve Cuden) 작사의 본 뮤지컬은 전개되는 각각의 순간이 음악의 모습으로 너무나 잘 표현된 넘버 하나하나는 물론이고, 이것들이 그 전체적인 틀 안에서 긴밀히 연결되며 탄탄한 구성과 맥락을 형성하고 있다. 혹자는 프랭크 와일드혼의 음악이 가진 특징이 우리나라 정서인 ‘한’과 맥을 같이하는 것을 본 작품이 국내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로 꼽기도 하였다. 그가 호소하는 바가 과연 이 땅에서 태어나 자란 것과 관련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필자에게 < 지킬 앤 하이드 >의 음악은 연속적인 가슴의 전율임에 틀림이 없었다. 이번 글에서는 그중에서도 유독 필자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들어 준 넘버를 골라 그대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참고로 필자는 한국어 번역곡보다는 영어로 된 원곡에 익숙함을 미리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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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랭크 와일드혼(좌) 과 레즐리 브리커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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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çade(파사드) – 앙상블

There are preachers who kill! (살인하는 설교자들이 있고)
There are killers who preach! (설교하는 살인자들이 있어)
There are teachers who lie! (거짓말하는 선생들이 있고)
There are liars who teach! (선생질하는 거짓말쟁이들이 있지)
Take yer pick, dear - (하나  찍어봐)
"Cause it's all a façade! (그거 다 껍데기일 거니까!)

- 'Façade' 中


‘겉모습, ’ ‘껍데기’을 뜻하는 제목의 ‘Facade’에는 서민의 분노가 가득 담겨있다. 그들로부터 facade가 묘사되는 대상은 바로 귀족으로, 당시 만연했던 위선적인 귀족에 대해 가차 없이 고발하며 외치는 곡이다. 이 넘버로 인해 작품이 배경으로 하는 빅토리아 시대상 및 주제가 전면에 전달되며, 동시에 극의 전체 분위기를 잡아 구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인상적인 연출이라면 무대의 상하 공간을 분리하여, 위쪽엔 사치스러운 귀족들을, 아래엔 그들에게 닿지 못한 채 울부짖는 하층민을 배치함으로써 시각적인 효과를 준 경우를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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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 me as I Am – 지킬, 엠마

EMMA:
Love meaning me (사랑은 저고)
Love meaning you (사랑은 당신이예요)
We'll make that one dream come true (우리는 그 하나의 꿈을 이룰거예요)
You know who I am (당신은 저를 알잖아요)
Take me as I am (절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세요)

- 'Take Me as I Am' 中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자’는 말은 다양한 곳에서 언급되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한층 애틋함을 가진다. 위험한 길을 고집하는 지킬과 그의 약혼녀 엠마는 자신이 상대방에게 부담이 될까 봐 걱정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달라’고 말하며, 아름다운 하모니가 낳는 부드럽고 단결된 느낌의 선율 속에서 견고해진다. 불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서로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둘의 다짐은 그 멜로디만큼이나 아름다운 연인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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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the Moment  - 지킬

This is the day - (오늘이 바로 그 날이야)
See it sparkle and shine (이 반짝이고 빛나는 걸 봐)
When all I've lived for (내가 지금껏 살아온 이유가)
Becomes mine! (이루어지는 순간이야!)

- 'This is the Moment' 中


뮤지컬을 잘 모른다는 사람도 들으면 ‘아, 이 노래!’라고 외칠, 대중적인 넘버이자 < 지킬 앤 하이드 >의 대표곡이다. 이 곡은 지킬이 오래도록 꿈꿔온 염원이 이루어지기 직전의 흥분과 기대에 찬 결심의 순간으로, 이후 벌어질 모든 일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곡의 유명세 때문인지 하이라이트에서 지나치게 조명에 힘을 주는 연출을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개인적인 바람으로 그대 관객은 넘버의 명성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어디까지나 관람 중인 무대의 일부분으로서 바라보았으면 한다. 오히려 그런 시각에서 해당 곡을 접근할 때, 더욱 큰 감동이 다가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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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His Eyes – 루시, 엠마

EMMA:
In his eyes I can see (그의 눈에서 나는 봐)
Where my heart longs to be! (내 심장이 어디에 있길 간절히 원하는지 말야!)
LUCY:
In his eyes I see a gentle glow (그의 눈에서 나는 상냥한 빛을 봐)
And that's where I'll be safe, I know! (그리고 그곳이 바로 내가 편안할 곳이야)

- 'In His Eyes' 中


‘눈’은 극 중에서 자주 언급되는 단어 중 하나로, 해당 넘버에서 두 여성은 그들이 사랑하는 지킬의 눈을 들여다봄을 노래한다. 상류층의 정숙한 약혼녀 엠마를 한쪽에, 춤을 추고 몸을 팔며 생계를 유지하는 루시를 다른 한쪽에 위치시켜 다른 공간에 있음을 보여준다. 서로 너무나 다른 상황과 입장의 두 사람이지만, 그에 대한 진실한 사랑은 하나가 되어 하모니로 이어진다. 곡은 끝에 다다를수록 극적으로 발전하는 전형적인 구성을 띠고 있으며, 관객으로 하여금 엇갈린 사랑의 양상을 더욱 깊이 새기게끔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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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New Life – 루시

A new world - (새로운 세상)
This one thing I want (나는 이거 하나 바라고)
To ask of you, world - (너에게 부탁했지, 세상아)
Once! - Before it's time (시간이 되기 전에 한번만!)
To say adieu, world! (너에게 작별하기 전에)
One sweet chance to (단 한번의 달콤한 기회를 달라고)
Prove the cynics wrong! (날 향한 비웃음에게 보란듯이 보여줄 기회말야!)

- 'A New Life' 中


루시의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감과 희망이 처음부터 끝까지 가득 채워져 있는 곡이다. 그녀는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시궁창 속에서 살던 과거를 보내 버리고, 새롭게 펼쳐질 꿈과 삶, 세계를 마음껏 상상한다. 그녀 스스로에 대한 주체성이 처음으로 긍정적으로 드러나는데, 반짝거리는 눈으로 꿈꾸며 노래하는 그녀를 보면 어느새 관객마저 그런 그녀를 응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개인적으로 < 지킬 앤 하이드 >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바로 루시인데, 그녀의 비극적인 상황과 사랑이 때로는 해당 넘버나 ‘No One Knows Who I Am’과 같이 정확하고 강렬하게, 때로는 ‘Sympathy, Tenderness,’ ‘Dangerous Game’과 같이 처연한 멜로디의 여운으로 표현됨으로써 잊히기 쉽지 않은 인상을 남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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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frontation – 지킬

Jekyll:
Soon you will die (넌 곧 죽을거고)
And my silence will hide you (내 침묵은 그걸 숨길거야)
You cannot choose but to lose control (넌 힘을 잃을 수 밖에 없다고)

Hyde:
You can't control me (넌 날 어찌하지 못해)
I live deep inside you! (난 이미 니 깊숙이 사는걸!)
Each day you'll feel me devour your soul! (내가 니 영혼을 매일 먹어치우는 걸 느껴봐!)

- 'Confrontation' 中


작품의 또 다른 유명 장면으로, 자제력을 잃은 지킬(선)이 내면의 하이드(악)와 충돌하는 극의 하이라이트이다. 이젠 이 죽음의 싸움을 그만두려고 안간힘을 쓰는 지킬과 그런 지킬을 지배하려고 하는 하이드의 우악스러운 손아귀가 마구 뒤섞여 있는 내적 갈등의 최고조라고 할 수 있다. 순간순간 전환되는 조명에 따라 목소리까지 순식간에 달리하며 두 인격을 번갈아 연기하는 배우의 소화력에 집중하게 되는 넘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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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 지킬 앤 하이드 >의 넘버는 무엇 하나 제외할 것 없이 전부 소개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오죽하면 뮤지컬만 30여 편을 관람했음에도, 초창기에 봤던 이 작품을 넘버 구성 면에서 필자에게 최고라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이 글을 쓰기 전, 다시 전체 넘버를 찬찬히 하나하나 들어보던 중, 언제나처럼 찌릿한 가슴의 전율을 느꼈다. 필자가 < 지킬 앤 하이드 >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호소력과 전달력이 탁월한 넘버 덕분에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내 안에서 계속 살아나는 이 즐거움에 매료되고 말았다. 소중한 감동의 순간으로 다시 한번 날 가득 채워주는 그 마법 같은 매력을 그대 또한 겪을 수 있기를 진심을 담아 기대해 본다.





사진 및 이미지 출처: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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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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