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직장생활이 다 그래, 제일 슬픈 말 [문화 전반]

글 입력 2017.10.26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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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싫어하는 말이 생겼다. 직장생활이 다 그래. 그 말은 사람을 청개구리로 만든다. 뭐가 다 그래. 왜 다 그래야만 해? 발버둥치는 중이다. 기로에 서있는 것이다. 이 시점이 지나버리면 나는 저 말을 기대에 찬 신입과 자연스럽게 하며 어엿하게 적응해버릴 것이다. 그러나 왠지 적응하고 싶지가 않다. 비단 직장생활이라는 말만 그런 건 아니다. 사랑이 다 그렇다는 말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이란 말도,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란 말도. 나는 아직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직장인 다 됐다란 말도 달갑게 들리지 않는다. 누가 말리랴, 이 청개구리같은 심보.
 
  처음 신입으로 직장에 왔을 땐 왜 주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번개를 하고 한탄을 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기적이게도 그 땐 직접 겪지 못했으니까 그 상황을 아는 것으론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1년이 지난 나는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알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고, 한숨 한 번에 술잔을 오손도손 채우고 비우는 나의 새로운 모습도 발견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나쁘지 않다. 엄밀히 따져보면 좋은 곳이다. 알고 들어갔고 여전히 그렇다고 생각한다. 들어간지 두세달쯤 지났을 땐 이 곳에서의 미래가 생생히 그려졌다. 무던하고 평온한 삶. 좋은 걸까. 좋은 거라던데.그러나 그것이 마냥 좋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 속에 나는 큰 의미가 없는 사람이다. 상사는 나에게 점심을 먹으며 이 일은 침몰하는 배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럼 배가 침몰하기 전에 얼른 그만두고 떠날까요, 했고 대답은 없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누구나 배우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 보람을 느껴본 적은 없다. 도움이 되었을 때 조금 기쁠 때는 있다. 그제서야 입사연수 때 들은 말이 이해갔다. 자아실현은 직장이 아니라 바깥에서 찾으라 했었지.
 
  실업률이 최악이라는 말이 연이어 갱신되고 있는 상태에서 마음고생하고 들어간 곳이기에 쉽사리 내팽개치겠습니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관계에선 환승이 나쁠지 몰라도 직장생활은 환승이 안전하다. 몇 번이고 되새기는 말이다. 그러나 대책없이 내일부터 나오지 않겠습니다, 하고픈 순간이 올해는 유독 많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별일 아닐지 몰라도 크나큰 별 일이었고 넌덜머리 나는 순간이 있었다. 납득되지 않는 논리로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장님 3년'을 보내야 한다며 직장생활의 기본이 안 되어 있다는 말에, 할 말 있으면 해보라는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은 너무 할 말이 많았는데. 짧은 시간동안 여러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저는 '직장생활의 기본'이 영영 안되어 있을 것 같아요. 할 말을 다 하고 내일부터 나오지 않겠다고 하면 드라마같을까. 그만두면 당장 어쩌지. 어디서 돈을 벌지. 황당함에 얼빠진 부모님의 표정. 못해도 등짝은 흠씬 얻어맞겠지. 혹은 그 이상. 나는 그 순간 깨닫고 말았다. 그렇게 부루퉁해하면서도 나는 이곳에 벌써 적응하고 말았다는 걸. 그 뭉근한 월급이란 녀석에, 이 곳의 생활에 꽤나 많이 잠겨버렸다는 걸.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이러고 있는 내가 너무나 꼴보기 싫었다.
 
  사람들은 언제라도 상관없으니 꿈을 좇으라 하거나 아니면 현실을 직시하고 돈을 좇으라 한다. 나는? 그 사이에 있는 겁쟁이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두는 사람이지 않을까. 혼란스럽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복에 겨운 메아타령인가, 원하지 않던 신에 발맞추는 아우성인가. 직장인이 되고 나니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일은 물론 전보다 익숙하고 능숙해졌는데도. 무엇 하나 특별하고 탁월할 것이 있던가. 직장 사람들은 내게 밝은 사람이라고, 남을 기쁘게 해준다고 했다.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이가 소문을 들었다며, 우리같은 사람들은 남을 기쁘게 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농담반 진담반 말했다. 기쁨조라고. 분위기를 살리라는 확고하고 결연한 의무 전가가 부담스럽다. 나는 나의 대답을 기억한다. 그럼 저는 누가 기쁘게 해주나요.
 
  웃긴 일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 내가 늘 기분이 좋아보인다고 한다. 나는 내가 생각보다 더 우울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끔은 이렇게 무덤덤한 듯 잠겨있는 게 너무 오래될까봐. 혼자 방 안에 덩그라니 앉아 잠잠하게 휘몰아치는 바람에, 스스로도 위험하다 싶으면 얼른 잠들어버린다. 일시정지는 유용하다. 언젠간 바람에 그냥 몸을 맡겨버리고 사라져 버릴 것도 같아서. 왜 사람들이 산에 들어가 살고 싶다고 하는지도 이해가 갔다. 사람이 늘 싫은 건 아니지만 사람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은 때도 있다. 바득바득 서로를 할퀴고 사는 것은 지친다. 나만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그냥 살면 되는건데. 다른 직업도 어렵겠지만 나에겐 직장인이라는 직업이 참 어렵고 존경스럽다.
 
  그나마 조금 늦게 취업한 친구가 문득 연락이 왔다. 일을 하다 보니 네 생각이 났다고, 너가 무척 힘들었겠다고 말했다. 그 때는 나 이외에 취업한 친구가 거의 없었던 때였으니까. 그 한마디에 별 다른 설명이 없이 이해가 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가 잡히지 않아 불안한 친구들에게 직장의 고충을 얘기하는 것은 이해받기 힘들고 부러운 투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너는 돈을 벌잖아, 나도 얼른 돈이나 벌었으면, 하는 말이 돌아올 걸 아니 입을 떼기가 어렵다. 나도 그랬었으니까. 남의 돈 받기가 참 쉽지 않다는 걸, 시간이 돈만큼 귀하다는 걸, 돈을 번다는 것 뒤에 숨겨진 우여곡절을 그 때는 잘 알지 못했다. 혼자 많은 밤을 골똘히 보내곤 했다.
 
  이 모든 꼬리 없는 생각을 담아, 고였다 넘어간 눈물, 답답한 숨과 쓰린 속을 안고 직장생활이 쉽지 않다고 힘들다고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돌아오는 말이 직장생활이 다 그래, 너 정도면 힘든거 아냐, 편하게 다니는 거야, 일 때 세상은 조금 더 슬퍼진다. 응, 그렇겠지, 그런가보다.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벌써 가을이네, 시간 참 빠르다. 흔하고 안전한 이야기로 돌아오면서. 역시 괜한 말이었지. 방금 당신이 해 준 말보다 말 없는 가을 바람이 훨씬 좋았는데.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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