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보물에는 그 주인의 혼이 담겨 영원하리라.

전시 : 왕이 사랑한 보물 리뷰
글 입력 2017.10.2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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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건왕 아우구스투스

고요하지만 웅장했다. 이것이 내가 전시회장에서 느낀 첫인상이다. 전시는 왕의 보물을 모아둔 박물관이라는 컨셉을 가진만큼, 그에 걸맞는 역사와 스토리, 그리고 화려함과 귀품이 묻어나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대로였다.

전시는 17~18세기 사이 유럽에서 교회와 궁정을 중심으로 발달한 예술사조인 '바로크(Baroque)'로부터 출발한다. 역동적이고 화려하며 장엄함을 지닌 바로크 예술은 17세기 후반, 절대 군주인 루이 14세를 통해서, 그 무대가 교회로부터 궁전으로 바뀌게 된다. 그 당시 궁전은 각종 공식 행사와 연회가 열리는 종합 예술 중심지였으며, 그곳에서 행해지는 미술, 음악, 건축은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매개체와도 같은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 전시의 핵심 지역인 독일의 바로크 문화는 30년 전쟁 (1618~1648)이 끝난 후 피해를 극복한 18세기 부터 발달하기 시작된다. 그 당시 독일 바로크 문화의 중심은 작센의 수도인 드레스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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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건왕_아우구스투스의_군복,_1700년_경,_무기박물관_소장.jpg
 
강건왕_아우구스투스의_기사용_검과_매듭_장식,_1733년_이전,_무기박물.jpg
 

드레스덴의 강건왕 아우구스투스는 선제후 가문 최초로 1697년 폴란드의 왕이 된 작자이다. 그는 프로테스탄트에서 카톨릭으로 개종하여 왕이 될 정도로 왕위에 대한 야심과 열망이 많았으며, 루이 14세의 절대 왕정 권위를 동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당시 작센에는 츠빙거 궁전이 있었는데, 아우구스투스 때문에 이 궁전은 베르사유 궁전 못지 않은 화려함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그는 보물을 모으는 취미를 갖고 있었는데, 단순히 보물을 수집하는데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자신이 모은 보물들을 사람들에게 가장 아름답게 보여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그린볼트'이다. 이 곳은 아우구스투스가 자신의 컬렉션을 전시한 공간으로서, 그의 위엄과 권위를 상징하는 공간인 동시에, 그의 예술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 곳은 예술품과 궁전 건축이 조화를 이루는 장소로, 작품이 재질별 종류별로 나뉘어져 있고, 대중에게 공개되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유럽 최초의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2. 그린볼트 - 왕이 만든 보물의 방

방은 총 여섯개로 나뉜다.

- 상아의 방
- 은의 방
- 금은보화의 방과 코너캐비닛
- 보석의 방
- 도금은의 방
- 청동의 방



<상아의 방>

이 곳은 18세기 그린볼트를 방문하는 관람객들이 두번째로 만나게 되는 전시실이었다. 1729년 상아의 방 내부 벽면을 이탈리아산 대리석을 모방한 무늬로 장식하고, 몇 년 뒤부터 본격적으로 상아 조각품 300여점을 전시했다. 상아는 희귀할 뿐 아니라 매우 섬세한 재료였기 때문에 이를 다루는 데는 고도의 주의력과 무한한 인내심이 필요했다. 특히 상아의 터닝 세공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왕실의 교육에서 중요한 분야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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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의 방> 

18세기에만 존재했던 이 곳은 아우구스투스가 소장한 후기 바로크 양식의 은세공품이 진열되었다. 그 중 대부분은 그의 아들 아우구스투스 3세와 신성로마제국의 황녀 마리아 요세파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1719년 이전에 구입한 것이라고 한다. 이 방의 장식품들은 거의 1톤에 달할 정도로 많았으나, 7년 전쟁(1756~1763)이후 재정난이 심해지자, 17세기 조각상 세 점을 제외한 나머지를 녹여 동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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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은보화의 방과 코너캐비닛>

이곳은 그린볼트의 핵심공간이다. 르네상스 시기부터 존재해온 이 곳은 궁전의 오랜 장엄함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이 곳을 완성한 이는 아우구스투스로, 그가 직접 방문했던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에서 영감을 받아 이 방을 새롭게 꾸몄다고 한다. 코너캐비닛은 말 그대로 금은보화의 방 내부 모퉁이에 위치한 16 평방미터 크기의 작은 창고 역할을 하는 방이다. 16세기 중엽부터 그물 모양의 철문으로 금은 보화의 방과 구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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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석의 방>

이곳은 아우구스투스가 보석 컬렉션을 전시하기 위해 만든 방으로, 그린볼트의 방 중 가장 화려하다. 보석은 18세기 바로크 왕실에서 왕의 위엄과 권위를 상징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헀다. 그는 방 가운데 놓인 사면 거울 기둥에 자신의 모노그램과 훈장을 배치하고 그 주위를 식물 문양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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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금은의 방>

이곳은 나름대로 많은 풍파를 겪은후에, 몇백년뒤의 우리에게 보여지는 곳인 만큼, 그 긴장감이 남달랐다. 재정난에 의해 녹여져야만 했던 수 많은 작품들을 대신해서 그 고개를 빳빳하게 내밀고 있기라도 한듯, 선택되어져서 남겨진 작품들은 더 숭고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바다 유니콘 형상의 술잔이라는 작품을 보면서, 옛 왕족의 사치스러움과 기품을 느꼈다. 술 한잔을 기울일 때도 아무 잔이 아닌, 최대한 화려하고 격식이 담겨진 잔으로 마셔야 한다는 그들의 생각이 나에게까지 전달되는 것만 같았고, 혹여 그 잔을 실제로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술잔이라는 소재로 저런식으로 상상력을 발휘하여 창작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에 감탄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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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동의 방>

이곳에 들어섰을 때 느낀 것은, '아 청동으로도 이렇게 이름답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낼 수 있구나..'였다. 묵직하고 단단해보이는 느낌의 청동은, 자칫하면 투박하고 우악스러워보이기 때문에 왕의 궁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린볼트의 청동들은 달랐다. 나는 이 작품들을 보면서 '재질보다는 모양이 중요한거구나.'라는 것을 느꼈고, 또 '천재는 재료를 가리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떠올려냈다. 그들은 오래된 세월의 흔적을 견뎌낸 것 처럼 견고하고 강인해보였다.



3. 도자기 궁전 - 미완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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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초의 자기 - 마이센>

독일의 마이센 자기는 오늘날 유럽 대표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다. 작센을 상징하는 마이센 자기의 쌍검 표식은 마이센 자기가 역사적으로 드레스덴 왕실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마이센 자기는 처음에는 중국과 일본 도자기를 모방하는데서 시작했으나, 이후 유럽에서 자주 쓰이는 문양으로 표면을 장식하고, 정교한 조각으로 탄생시키는 과정을 거치며, 단순한 실용기가 아닌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두_점의_중국_관음상과_마이센_복제품(오른쪽),_17세기_후반(왼쪽),_16751720.jpg
 
’붉은_용’_식기_세트,_17301770년_경,_도자기박물관_소장.jpg
 
세_점의_병,_17001720년_경,_도자기박물관_소장.jpg
 
일본_장식_자기_세트,_17001720년_경,_도자기박물관_소장.jpg
 
중국_봉미병과_마이센_복제품(오른쪽),_16621722년_경(왼쪽),_1725년_경(오른.jpg



마치며

18세기 유럽은 강력한 군주들이 이끄는 시기였다. 아우구스투스는 궁정 문화의 웅장함과  화려함이야말로 왕으로서의 권위를 가장 잘 나타내는 수단이라 믿었다. 그는 당대 최고 건축, 조각가를 동원하여 드레스덴에 대규모 궁전을 조성하고, 진귀한 예술품을 열정적으로 수집하고, 이를 궁전 안에서 아름답게 전시하는데에도 많은 노력을 쏟았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바로크 예술을 이끈 당대 최고의 종합 예술 감독이라 할 만하다.

한 나라의 왕으로서 나라를 통치하고 백성들을 돌보는 일 뿐만 아니라, 왕으로서의 체통과 권위를 지키고, 문화 예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그 시대의 발자취를 남기는 일을 해낸 그야말로 강건왕이라는 칭호를 얻기에 충분한 자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미지 출처 : 국립 중앙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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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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