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모네의 공간으로의 초대 : 모네, 빛을 그리다

글 입력 2017.10.19 14:3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빛이 좋은 날이었다. 날씨가 마음에 들면 땅속으로 다니는 지하철이 아니라 괜히 빙 돌아가는 버스를 타고, 두 세 정거장 거리는 일부러 걸어서 가기도 하고, 갈 곳도 없는데 무작정 집 밖으로 뛰쳐나오곤 하는 나로서는 최고였던 날. 생각해보면 모네를 만났던 날은 늘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날씨, 하늘을 어지럽히며 자수를 놓는 구름들과 나뭇잎 사이를 비집고 땅바닥에 빛을 흘려놓는 햇살, 그 사이를 걸어 <모네, 빛을 그리다> 그 두 번째 전시가 열리는 본다빈치 뮤지엄으로 향했다.


1.jpg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 전시가 더 좋았다. 모네의 ‘작품’을 기준으로 하자면 말이다. 초창기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모네의 작품들이 특유의 색채를 띠면서도 꾸준히 변화해가는 과정들을 바라보는 것이 즐거웠다. 모네는 알지 못했으나 빛과 그림자는 사랑했기에, 인상주의를 태동시킨 그의 작품세계에 빠져들기엔 더할 나위 없었다. 멍하니 앉아 스크린을 타고 움직이는 <인상, 해돋이> 속 물결, 연못 위를 동동 떠다니는 수련들의 우아한 움직임을 응시하며 마음이 안정된다는 게 이런 거구나-했었다.


2.jpg
 
 
 이번 전시는 작품보다는 모네라는 ‘사람’그리고 모네의 '공간'에 집중한다. 모네가 직접 가꾸며 다듬었던 지베르니 정원, 많은 시간을 보냈던 식탁과 오랑주리 미술관의 수련 연작과 같이 사실적인 재현에서부터 시작해 모네 평생의 뮤즈 카미유만의 공간에 이르기까지. 기대했던 바가 아니었을 뿐 작품 그 자체는 물론이고 모네의 집에 초대된 듯한 느낌을 주는 구성이 나쁘지 않았다.


3.jpg
 
 
 확실한 건, 전에 비해 전시장을 꾸며나가는 방식이 보다 다양해졌다는 것이다. 기술과 예술의 융합을 기본으로 하는 컨버전스 아트는 처음엔 신선할 수도 있으나 자칫하면 지루해지기 십상이다. 매번 프로젝트 빔에서 모네의 원작이 흘러나오는 걸 보는 일이란, 여전히 ‘원작’이 훨씬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감흥을 선사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프로젝트 빔은 학교 강의실이나 초등학교 수업시간에도 흔히 사용하는 장치가 아닌가? 하지만 <모네, 빛을 그리다> 展에서는 '어떻게 하면 이곳에 들어서는 사람들이 모네의 작품 세계와 그의 삶을 보다 생동감 있게 느낄 수 있게, 빠져들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집을 향해 걸어가는 소년과 한 마리의 개를 보여주는 섹션은 단순한 직사각형의 스크린이 아니라 그 바닥과 옆면에 둥글게 선 스크린을 통해 입체성을 높여 마치 그 소년의 뒤를 쫓아 모네의 집으로 초대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거대 모형으로 다시 태어난 까미유, 그 백색의 피조물을 모네의 작품들이 휘감는 모습은 애틋하면서도 흐른 세월만큼이나 흐릿해진 두 사람의 사랑과 다르지 않았다.


4.jpg
 

 전시는 아름다웠다. 하루 빨리 파리로 날아가 지베르니 정원의 일본식 다리를 건너고 이제껏 모네 전시에서 매번 사왔던 엽서들과 사진을 찍고, 앞서 걸어가는 모네와 까미유를 상상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아름답다는 생각. 그의 작품들은 화려함과 거리가 멀다. ‘빛’을 화폭에 끌어다 놓는다고 하여, 그것이 밝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모네를 생각하면 동트기 전, 해돋이, 아침, 오후, 석양, 해질녘의 불그스름하면서도 차분한 갖가지의 하늘빛과, 달이 비치는 푸르스름한 어둠 같은 수련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전시는 그에 비해 너무 많은 색깔들이 떠다니고 있었고, 너무 많은 조형물들이 위치해 있었다. 공간이 넓으면 모르겠지만, 사람이 많아서인지 약간 협소해보였다. 그러한 화려함을 쫓느냐 모네는 사뿐히 지나치는 사람들도 많아 보였다. 관람객들은 사진을 찍느냐 여념이 없었고, 그의 시선이 포착한 수많은 형태의 빛들엔 집중하지 않는 듯 했다.


5.jpg
 
 
 자연과 빛을 사랑했던 모네를 사랑하는 나로서는 전시가 좀 더 모네다웠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복잡다단한 생각들을 제쳐두고, <모네, 빛을 그리다 展> 두 번째 전시는 정신 없이 흘러가는 일상 속에 발걸음을 늦추고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어 충분히 행복했다.


[반채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