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낭만적 미스터리로 풀어낸 근대적 개인의 여정 : 뮤지컬 < 사의 찬미 > [뮤지컬]

글 입력 2017.10.16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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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 배제를 통한 '기억하기'

 
기억엔 선택과 배제의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어떤 사건을 선택했을 때, 다른 사건은 배제된다. 그리고 선택된 것은 완결한 사실의 저장인 양 여겨진다. 그것이 기억이다. 특히나 강렬한 굴종의 체험과 해결되지 않은 과거사 문제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조선을 ‘수난과 저항의 역사’라고 기억하게 한다.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에 폭력으로 작용하면서, ‘민족’은 식민지 조선을 기억할 때 필수불가결한 관념이 되어 왔다. 민족주의적 역사 인식에 따르면, 민족 피해의 역사와 민족 저항의 역사로 양분화된 기억은, 나쁜 일본인과 피해자 조선인, 그리고 일본에 부역하는 비열한 친일파라는 이미지를 재생산한다. 제복을 입고 총검을 든 압제적인 일본 순사, 그에 신음하는 가난한 행색의 조선인, 양장을 입은 채 일본인에게 기생하는 친일파의 이미지는 많은 서사에서 재현해왔던 식민지 조선이다. 당시 사람들 ‘개개인의 체험’은 민족이라는 의장을 입고 ‘공동체의 기억’으로 재편되고, 민족의 수난과 저항의 식민지 조선이라는 기억은 반박의 여지가 없는, 아니 반박하기도 힘든 자명한 것이 된다.
 
분명 이러한 기억은 사실에 기반한 것이고, 피해자들을 위해 해결해야 할 역사적 과제는 잔존한다. 그러나 이 기억 속 ‘모던 보이’나 ‘신여성’은 어디에 위치하는가. 집단화된 기억 속 민족이 선택되었다면 이들은 배제된다. 민족사라는 큰 줄기 속 미시사에 속하는 이 군상들은 ‘민족’의 자리에 있지 않은 인물들로, 기억의 곁가지에 자리하거나 지워지기 십상이다. 심지어는 그들을 향한 조명과 풍속에 대한 관심은 일각에서는 ‘낭만화 작업’이라고 비난받기도 한다. 지극히 민족주의적 기억에서는 양장을 입고, 근대적 인식을 지니며, 경성 거리를 활보하는 이들은 마치 친일파와 다름없는 양 여겨지며, 이들을 향한 관심은 억압받고 신음하는 피해자의 군상들에 대한 기만의 일종이라고 지적된다. 그러나 1910년부터 1945년까지는 일제 치하의 식민지 조선임과 동시에,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이행이 이루어졌던 시기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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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많은 근현대사 연구와 스토리텔링에선 ‘민족’이라는 거대 담론과 개개인의 욕망과 체험에 집중한 이야기들이 공존하고 있다. 뮤지컬로 한정해 이야기하자면, <명성황후>, <영웅>, <아리랑>과 같이 민족수난사와 저항사를 재현해낸 극과 <콩칠팔새삼륙>, <사의 찬미>, <팬레터>와 같이 개인의 욕망에 주목한 접근들이 공존한다. (연극으로는 <만주전선>, <1945> 등 역사에 대한 보다 문제적인 인식과 다양한 감각이 제시되고 있다.) 특히 뮤지컬 <사의 찬미>는 올해로 네 번째 개막을 맞으며, 흥행리에 공연 중이다. 뮤지컬 <사의 찬미>는 조선인 인텔리 청년 김우진과 윤심덕 두 인물이 현해탄에 몸을 던진 의문의 정사를 모티브로 삼는데, 극은 이들의 큰 서사만을 따와, 미스터리로 재구성한다.

 
 
'사내'라는 가상의 세이렌

 
극은 김우진과 윤심덕이라는 실존 인물과 그들이 현해탄에 투신했다는 서사만을 가져온 후, 사내라는 가상 인물을 투입하여 극의 장르를 미스터리로 구축해낸다. 우진과 심덕의 죽음에는 사내라는 인물이 개입되어 있으며, 정체불명의 사내는 이들을 죽음으로 이끌며 갈등의 중심축에 자리한다. 특히 사내는 작품의 다양한 해석을 낳아, 마니아층의 재관람 비율을 높이는 가장 큰 요소로, 이 사내가 실체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에서부터 해석의 즐거움은 시작된다. 사내가 회의주의의 실체화라는 해석이 주류의 의견이지만, 사내라는 캐릭터는 배우에 따라 인간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초월적 존재나 관념적 존재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신경증을 겪고 있는 우진의 또 다른 자아로 읽힐 여지마저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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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체불명의 인물 사내는 수미쌍관으로 ‘죽음의 비밀’ 넘버와 함께 극의 처음과 끝을 미스터리로 채우는데, 사내의 존재는 끝까지 모호함만을 남기며 극의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를 이끈다. 분명한 것은 그가 우진과 심덕의 이야기를 희곡으로 만들고, 결국 그들을 죽음으로 이끌려 하는 세이렌이라는 것뿐, 나머지 여백은 배우의 캐릭터 해석과 관객의 상상력으로 채워진다. 사내를 이용한 ‘그림자’ 연출은 사내 캐릭터의 매력과 존재감을 증폭시킨다. 사내는 벽면을 이용하여 손으로 마리오네트를 움직이듯, 그림자로 우진과 심덕을 조종하기도 하고, 사내가 등장하지 않을 때조차 그림자는 사내의 존재를 암시하며, 관객과 우진에게 강렬한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사내라는 가상 인물의 투입으로 우진과 심덕을 둘러싼 식민지 조선의 상황은 상대적으로 주변화된다. 우진과 심덕을 둘러싼 ‘가난’, ‘편견’, ‘계급’, ‘차별’ 등의 갈등요소는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을뿐더러, 대사를 통해서 배경요소 중 일부로 제시된다. 대신 무대 위에서 현현하는 존재인 사내를 통해, 우진과 심덕 사이 갈등과 그들의 고통은 직접적으로 구현된다.

 
 
근대적 개인의 여정

 
그래서 뮤지컬 <사의 찬미>는 사내가 안타고니스트인 미스터리극이나, 신파극 정도로 느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사내의 존재 이면에는 ‘빼앗긴 조국’, ‘억눌린 삶’, ‘윤리’, ‘편견’, ‘봉건’, ‘가난’ 등, 전근대 조선을 가리키는 지표가 도사리고 있다 . 사내의 존재에 감춰진 전근대 조선의 관념과, 봉건과 개화 사이의 과도기적 갈등들은 우진과 심덕이 현해탄에 몸을 던지는 결정적인 작용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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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과 심덕의 욕망은 자유이다. 이는 비단 사내로부터의 탈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진과 심덕의 첫 갈등은, 부친의 엄명으로 인한 우진의 조혼에서 비롯되었고, 심덕의 괴로움은 신여성 심덕을 향한 조선 대중의 ‘욕하고 침 뱉는’ 편견 어린 반응에서 기인한다. 넘버 ‘이 세상엔 없는 곳’이 그들을 둘러싼 굴레들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데, 그들이 바라는 ‘내일’은 ‘편견’, ‘경계’, ‘슬픔’이 없는 곳, 즉 모든 봉건적 가치와 속박에서 벗어난 곳으로, 관부연락선이 다다르게 될 조선에는 ‘없는 곳’이다. 그래서 이들이 희구하는 자유는 개인이 개인으로 행복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갈망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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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개인의 기본 이념은 자유다. 자신의 정체성을 집단에서 찾지 않고, 자신을 개인으로 구축해가며, 스스로 주체의 자리에 위치시키는 것이 근대적 개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과제이다. 그러나 그들이 살고 있던 1920년대 조선은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 아래에 놓여 있던 식민지였기 때문에, 조선인 청년들은 제국과 식민지의 위계화에 의해 주체의 자리보다는 타자의 자리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근대적 개인으로 거듭나고자 했던 이들의 행보를 ‘탈선’, ‘타락’으로 간주하던 전근대의 사고방식들이 여전히 잔존했던 시기였다. 우진과 심덕이 꿈꾸는 ‘새로운 세상’은 사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공간임과 동시에, 그 모든 편견과 재단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이다. 사내로부터의 탈주가 표면적 서사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전달되진 않지만, 분명 그 이면에는 주체가 되어 자유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근대적 개인의 주체 정립의 여정이 서사화되고 있다.
 
 
 
장르 속 약화된 주제의식, 그러나

 
근대적 개인의 여정은 미스터리라는 장르 속에선 정공법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특히 분절적인 장면 진행은 미스터리를 표현하는 것에는 효과적이었으나,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구와 자유에 대한 갈망은 포착하지 못한다. 거기에 셋의 만남 이후의 장면들은 세 캐릭터 각각의 캐릭터성과 관계성만을 구축할 뿐, 서사에 있어서는 상당히 불친절한 전개를 보여준다. 우진이 심덕을 배신했다, 사내만이 심덕의 곁에 있어 줬다, 우진과 심덕이 다시 재회했다는 주요 서사들은 단지 극의 전사(前事)로서만 기능할 뿐이다. 각 장면은 관객에게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상당히 매력적인 연출을 보여주지만, 분절적인 장면 연출과 불친절한 전개로 인해 주제의식은 감춰지고 가려진다. 그래서 특히나 이 극은 배우가 밀도 있는 연기를 보여주지 못하면, 그 불친절만이 보기 좋게 수면 위로 드러나기 때문에, 여백을 메울 배우의 역량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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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의 연기와 함께 이 여백을 채우는 것은 뮤지컬 <사의 찬미>의 강점인 넘버이다. 뮤지컬 <사의 찬미>의 넘버는 여타 뮤지컬과 비교했을 때도 손에 꼽히게 잘 만들어졌으며, 1920년대 분위기와 잘 맞아 떨어져, <사의 찬미> 특유의 분위기를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특히, 윤심덕의 ‘사의 찬미’의 원곡 ‘도나우강의 잔물결’의 코드는 공연 중간중간 사내의 허밍으로 들리거나,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등, 미스터리하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성공적으로 주조한다.
 
사연에 이르러서는 몇몇 넘버를 편곡하면서 극의 드라마를 강화했는데, 하나는 성공했으나, 다른 하나는 실패했다고 평하고 싶다. ‘날개가 찢긴 한 마리 물새’와 ‘1926년 8월 4일’ 모두 단조롭고 깔끔하던 멜로디에 뮤지컬 넘버로서의 드라마를 강화했는데, 전자는 넘버의 풍성함이 세 인물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냈으나, 후자의 편곡은 오히려 과도한 ‘뮤지컬적 순간’으로 느껴져 긴장감을 무너뜨렸다. 후자는 가장 긴박한 순간에 발화하는 ‘새로운 세상’, ‘자유’, ‘사랑’이라는 외침을 넘버로 편곡하면서, 미스터리 서사가 주는 불안감에 몰입하고 있던 관객에게 순식간에 스트레오타입화된 ‘뮤지컬’을 느끼게 한다. 우진과 심덕의 외침은 극의 주제의식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 대사였으나, 가뜩이나 미약했던 주제의식에 스트레오타입화 된 ‘뮤지컬적 순간’을 만들어내니, 근대적 개인의 여정과 자유를 향한 갈구는 더욱 약화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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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사의 찬미>는 미스터리하고 음울한 분위기로 주조된 관부연락선에서 곧 네 번째 출항을 마친다. 우진과 심덕의 투신이 새로운 세상을 향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적막한 바다에서의 죽음으로 이어졌는지는 이 극에서도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극은 사내라는 가상 인물의 개입을 통해, 투신까지의 긴장과 미스터리함을 증축시켰고, 그 이면에는 근대적 개인의 여로라는 중요한 '가지'를 포착해냈다. 한편, ‘세이렌’ 사내의 존재가 극의 매력이 되는 동시에 사내를 필두로 한 미스터리라는 장르는 주제의식의 밀도를 약화시켰고, 이는 극의 완성도 측면에서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혹자는 뮤지컬 <사의 찬미>가 당시 경성과 일본을 낭만화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조선에 굶주리고 핍박받았던 민중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도쿄를 낭만적으로 느끼고, 자유를 갈망하는 이들의 모습이 다분히 문제적이라고 말이다. 분명 뮤지컬 <사의 찬미>는 민족 수난사와 민족 저항사를 직접적으로 재현하지 않았고, 근대적 개인으로 거듭나고자 자유를 희구했던 두 인물의 욕망을 ‘선택’하여 재현했다. 그렇다면 이 선택이 당시 식민지 조선을 '기억'하는데 무의미한 것일까. 판단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절대 무의미한 선택이 아니었다고 답하고 싶다. 오히려 그 선택이 장르에 잠식당해 약화된 것이 아쉬울 뿐, 근대적 개인들의 주체정립의 여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기에, 문제적 상황에서 스스로를 주체의 자리에 놓고자 했던 이들의 욕망은 분명 유의미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 참고
오태영, 「식민지 조선인 청년과 이동의 시선」, 『한국학연구』 61,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7

※ 자료제공 - (주)N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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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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