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외설과 예술 사이,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 [영화]

‘전 화가예요,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요!’
글 입력 2017.10.15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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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에곤 쉴레는 분명 미술사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화가로 오늘날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과 그의 예술을 긍정적으로 평가할지, 부정적으로 평가할지의 문제는 다른 것이다. 그래서 그의 예술작품들은 지금도 예술과 외설 중 무엇으로 해석되어야 할지를 놓고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 이는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렇다면 화가 본인은 둘 사이의 아슬한 경계에 닿아있는 작품을 어떠한 정서와 배경으로 그려냈던 것일까. 이에 대한 내용을 다룬 영화가 바로 작년 12월에 개봉한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이었다. 개봉했을 당시에 쉴레를 영화로 만나볼 수 있다는 설렘에 영화관에 갔던 경험을 떠올리며 그의 예술세계를 다시금 헤아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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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nopsis.


쉴레는 매우 가난한 화가였다. 쉴레의 가난한 배경과 시대에 맞지 않았던 예술세계는 궁핍한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그러나 쉴레는 짧은 삶을 혼자 살았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를 거쳐 간 많은 여인과 뮤즈가 있었다. 극 중 ‘발리 노이질’이라는 이름의 여인이 그의 예술혼을 가장 불태워주고 작업활동을 이해하며 도와주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가난했던 에곤 쉴레는 부유한 여성과 결혼하며 작업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없게 되었다. 당시 유행했던 스페인 독감은 그를 삼켜버렸고 에곤 쉴레는 결국 쓸쓸한 마지막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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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쉴레와 그의 뮤즈들


쉴레의 작품에 등장하는 모델은 대부분 여성이다. 남성 모델을 구하기 어려웠던 당시의 사회적 배경도 어느 정도 작용했겠지만, 쉴레의 작품에는 유독 여성이 많이 등장한다. 쉴레가 온전히 예술혼만으로 누드화를 그려낸 것인지 그의 성적 욕망이 반영된 것인지는 그 자신도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영화에서는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예술혼과 결합된 성적 욕망으로 그림을 그리는 쉴레로 표현한다. 그림의 모델이자 뮤즈가 된 여성들이 쉴레와 관계를 갖는 장면도 등장한다.

이를 보았을 때 그의 예술 세계 자체가 성적 욕망을 풀어내는 것이었다고 해석하는 것에도 사람에 따라서는 무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뮤즈가 된 여인들이 이런 측면에서 그의 예술적인 면을 잘 끌어내었고 에곤 쉴레는 자신의 예술세계에 충실하여 작품을 그려낸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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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설과 예술, 끊임없는 논란의 주인공


그는 여성의 누드를 드로잉으로 수없이 그려냈지만 그의 작품이 좋은 것으로 평가되는 것은 드물었다. 자연스레 그의 작품은 잘 팔리지 않아 에곤 쉴레는 늘 가난한 삶을 살았고, 그림들은 혹평을 넘어서 외설로 해석되며 극 중에서는 그의 작업방식과 작품이 그가 법정으로 불려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예술에 대한 이해와 허용범위가 넓어졌다고 하는 오늘날도 그의 예술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만큼 당시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더욱이 모델들에는 성인 여성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었기에, 당시와 오늘날 모두 외설과 예술을 놓고 논란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되는 바이다.
 
하나의 그림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것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그의 작품에서 표현성이 강한 힘찬 드로잉을 보는 이가 있는 반면, 에로틱한 분위기와 모델에 집중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에 대한 답이 어떤 것도 옳다, 그르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곤 쉴레가 법정에서 말한 것처럼, 그는 ‘표현의 자유가 있는’ 화가이다. 그는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릴 수 있고 그의 그림에 대한 판단은 다른 사람들의 몫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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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나는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편이다. 꼭 여성 모델이 등장하는 작품이 아니라도, 그의 <자화상>과 같은 작품은 인간의 근본적인 고뇌와 고독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한 작품만을 보고서 화가의 역량을 모두 평가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더라도 그만큼의 감동과 울림을, 그것도 드로잉만으로 다양하고 강렬하게 표현할 수 있는 화가라면 분명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의 이런 점이 외설과 예술인지를 놓고 이어지는 논란으로 모두 덮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의 예술세계와 작품에 대한 다양한 입장과 의견은 어쩌면 에곤 쉴레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앞으로도 이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겠지만, 그 과정을 통해 그의 작품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예술에 대한 이해 범위도 넓어지기를 개인적으로 소망해본다.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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