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금, 여기,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극에 대하여 [공연예술]

글로리아는 평범했다
글 입력 2017.10.15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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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극에 대하여
[공연예술] 혹은, [문화전반]



오늘은 브랜든 제이콥스-젠킨스의 작품, 연극 ‘글로리아’에 대해서 몇 자 토해볼까 한다(토한다는 것이 아주 정확한 표현이다). 관극한지 몇 개월이 지난 후에야 이 글을 써내는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 너무나 오랜 시간동안 고민했어야 했다. “이것들”을 어떻게 말로 풀어내야하는지 어려워서, 그리고 비극적이어서, 글로 풀어내기가 울적해서. 둘, 어제, 글로리아를 봤다. 오늘 그녀를 또 봤다. 그리고 아마 내일도 그녀를 볼 것이다. 연극 글로리아는, 지금 보고 있지 않아도 우리 삶 속 어디선가 반복되고 있는 일들이다. 계속 떠오르는 이 생각들을 그냥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결국 적는다.

연극 ‘글로리아’를 관극하지 않았으나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비극을 알아가고 싶은 분들을 위해 극의 시놉시스를 첨부한다.


시놉시스

  뉴욕 한복판, 미드타운 오피스의 잡지 편집부. 누군가는 꿈을 위해, 누군가는 야망을 위해, 그리고 누군가는 어쩌다 보니 같은 사무실에서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딘’은 언젠가는 자기가 쓴 책을 출판하고 싶어하고, 비슷한 꿈을 가진 ‘켄드라’는 딘에게 늘 비아냥거린다. 인턴 ‘마일즈’는 6주간 이 곳에 있었지만 아직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자조적인 한탄과 불만으로 가득한 이 사무실에서 가장 오랜 기간 근무한 ‘글로리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는 대상이다. 그녀에게 이 직장은 삶의 전부이고 그녀가 아는 사람도 이 곳의 사람들뿐이다. 하지만 지난 밤 그녀의 집들이 파티에 방문한 사람은 오직 ‘딘’ 뿐이다.
  '글로리아'는 평소보다 더 암울하고 이상한 기운으로 편집부에 몇 번의 발걸음을 한다. 사람들은 그녀가 지난 밤 파티 때문에 그러리라 으레 짐작할 뿐이다.
  그리고 각자 자기 일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오후, ‘글로리아’의 예상치 못한 등장은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글로리아의 선택.
  아무의 관심도 받지 못했던 그녀가 모두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1. 글로리아

  글로리아(Gloria). 영광의 찬가, 후광이란 뜻이다. 그녀가 살아온 삶, 그녀가 버텨야 했던 괴로움과는 참 상반되는 이름이다. 더구나 그녀는 이름보다 ‘감정 테러리스트’라는 이름으로 불려왔으니까. 어쩌면 남들이 그녀를 향해 그렇게 부르는 순간, 그날의 테러는 이미 카운트다운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파티 다음날이 하필 디데이였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커리어를 찾아 뉴욕 이곳저곳을 전전하는 동안, 몇 년간 글로리아는 잡지 편집부를 묵묵히 지켰다. 그녀에게 커다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누군가는 야망을, 누군가는 꿈을 쫒을 동안 그녀는 사무실을 지킨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외로움과 괴로움이었다. 반복되는 직장 생활과, 그 직장 생활이 안겨준 외로움. 바보 취급. 이 모든 것은 그녀를 더 암울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극단적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녀의 복수를 향해 잘했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녀가 ‘왜’ 그랬는지는 안다. 알아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에 나가 직장을 얻어 직장 생활을 한다. 이직을 하는 사람도 많지만 오랜 시간 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도 많다. 창의력과 수평을 주장하는 사회라고 떠들어대지만 이 사회는 여전히 수동적이며 수직적이다. 그 속에서 오랜 시간 혼자 남아, 고통의 반복을 경험하는 일. 때때로는 그 누군가의 관심을 받지 못하면서 일하는 기계로 전락하는 삶. 이렇게 이야기하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직장생활을 하며 겪는 일’처럼 정리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글로리아가 겪었던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그 말은 즉, “글로리아는 사회 어디에나 있다”. 우리가 ‘왜’ 그랬는지 알아야 하는 이유는, 이 비극이 지금, 여기, 바로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2. 생존자들

  글로리아가 ‘왜’ 그랬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를 악마취급하고, 본인의 내상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본인들이 그 ‘왜’ 속에 있으면서도 죄책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을 지닌 생존자들. 오히려 그 끔찍한 일을 발판으로, 유명세를 얻으려는 사람들. 참으로 영악하기 그지없다.

  그들만 생존자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글로리아를 통해 돈을 벌려는 작자들. 글로리아를 기억하지도 못하면서 이익을 챙기려는 제 3자들. 글로리아가 ‘왜’ 그랬는지 보다는 ‘글로리아’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 언론, 지나가던 사람들, 가십거리에 환장한 사람들. 그리고 거기서 살아남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에만 주목하는 사람들. 모두 생존자다. 글로리아는 사회 어디에나 있으니까.



3. 희생자

  반면 의미 없는 죽음도 있었다. 그 날이 마지막 출근이었던 인턴 ‘마일즈’의 죽음이 그러했다. 편집장은 이름도 기억 못하는 그 인턴은, 무려 하버드대를 다니던 인재였다. 다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던 젊은 청년이었다. 글로리아를 그날 처음 만난,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나고 지나칠 수 있었던 청년. 인턴은 의미 없이 죽었다. 하지만 무조건적으로 의미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뭘 해야할지 모르는 청년’은 취업 후 ‘글로리아’가 되거나, 글로리아의 ‘왜’ 안에 포함되는 생존자가 되었을지도 모르니까. 다만 언젠가 벌어질 비극이 조금 앞당겨진 걸 수도 있다.

  다음은 누구 차례일까?



4. 로린

  글로리아의 ‘왜’ 안에 포함되어있지 않고, 동시에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 로린이다. 그는 테러 이후로 어디론가 전전한다. 새로운 직장을 잡아 취업하고, 사소한 일처리를 반복해낸다.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가 그 일을 겪고도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만이 글로리아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는 팩트체킹팀 팀장이었다. 팩트체킹한 것을 다시 팩트체킹하는 사람이다. 팩트체킹한 것을 다시 팩트체킹하고, 팩트가 아닐 시 돌려보내 팩트체킹 후, 돌아온 원고를 팩트체킹하는 사람. 대부분의 잡지가 그렇듯 “결국 금요일밤 지나치듯 읽히고 버려질텐데 뭣하러 이 고생을 하는” 사람. 그가 생각하는 글로리아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자기가 구운 쿠키를 나누어주고, 일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 그가 그녀를 끔찍한 테러범으로 진술하지 않은 이유는 그 역시도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만 테러의 장본인이 아닐 뿐이다. 로린은 지금, 여기, 이곳, 글로리아와 비극은 언제든지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존재와 이해 자체로 보여준다.

  로린의 진술에 그 누구도 흥미를 가지지 않는 장면은, 참 인상적이다. 이슈가 될 만하지 않으니까. ‘왜’는 궁금하지 않으니까. 모두들 그를 무시한다. 놀랍게도 새로운 사무실은 이전 사무실과 다를 바 없다. 모두들 이슈만을 쫒고, 사람을 바보취급하고,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친한척, 속으로는 저마다의 경쟁을 한다. 로린은 그 속에서 하나의 존재로 살아남아있다. 그는 생존자이자 이 사회의 구조와 반복이 만들어낸 고통의 산증인이다. 그런 그가 말한다. “글로리아는 평범했다”고.



5. 글로리아는 평범했다

  글로리아는 평범했다. 누구나 그렇듯이. 어쩌면 당신도 그렇듯이. 다만 하필 그녀의 이름이 ‘글로리아’였던 것뿐이다. 그 이름은 ‘낸’이 될 수도 있었고, ‘딘’이 될 수도 있었고, ‘켄트라’가 될 수도 있었고, ‘마일즈’일 수도 있었고...

  우리는 무뎌지고 또 무뎌졌다. 그리고 앞으로도 무뎌지고 무뎌질 것이다. 업무에만 메여있는 말이 아니다. 업무를 끼고 마주보고 있는 사람들, 서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글로리아를 포함한 모두는 지쳐있고, 미쳐있었다. 그리고 아마 우리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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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글로리아 포스터


2015년 발표된 <글로리아>는 강렬하고 비극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인간의 욕망과 본성을 신랄하게 풍자한 작품으로 Outer Critics Circle Award, Drama League Award에 노미네이트되었을 뿐만 아니라 2016 Pulitzer Prize 드라마부분 최종후보로 선정되며 다시 한 번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이다.

- 연극 <글로리아> 설명에서 발췌


[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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