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성북동의 정취를 느끼며 즐기는 연극 < 소설을 보다 - 이태준, 달밤 >

글 입력 2017.10.14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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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이 선선한 10월 중순에 아트인사이트(www.artinsight.co.kr)를 통해 '소설을 보다' 시리즈의 이태준 편 < 달밤 >을 관람하였다. 4호선 한성대입구역 근처 공간222에서 공연이 진행되었다.

아마도 소설가 이태준의 단편소설 달밤이 연극 무대에 오르기는 굉장히 쉽지 않았을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른바 팔리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특성화 극장 운영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민체육진흥공단의 후원을 받아 극단목수에서 주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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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 일가]




이번 < 소설을 보다 - 이태준, 달밤 > 공연을 보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배우들의 연기였다. 시골의 정취를 찾아 성북동 골짜기로 이사를 온 소설가 이태준으로 분한 장재권 배우는 '황수건'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소설가의 마음이 그대로 묻어나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황수건 역할을 맡은 이훈선 배우는 가장 인상적이었다. 모자란 사람을 연기하는 것은 정말 곤욕스러운 일일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혀 주저함 없이 '반푼이 황수건'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였다. 극적인 톤은 있을지언정 그 연기는 과도하지도 않았고 거북스럽지도 않았다. 도리어 장재권 배우, 아니 소설가 이태준과 같은 마음으로 따뜻하게 '황수건'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연기였다.


원작으로 인해 분량이 거진 없었던 민아람 배우 역시 묵직하게 자신의 몫을 연기했고, 삼산학교 교사역과 일본인 시학사 역할 등 다양한 남자역을 도맡았던 이규동 배우 또한 다양한 모습으로 맛깔스러운 연기를 보여주었다. 삼산학교 교사역으로 나올 때에는 황수건을 짓궂게 놀리는 모습을 보이며 장난스럽다가도 일본인 시학사로 무게감을 잡는 순간에는, 황수건이 일본어로 말을 걸며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연출해나가기 전까지는, 분위기가 순식간에 전환되는 듯했다.


무엇보다도, 배우들이 이 작품에 얼마나 열성적으로 몰입하는지가 절실히 느껴졌던 것은 황수건 역의 이훈선 배우와 다수 남자역을 맡은 이규동 배우가 가발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머리를 길러 역할에 맡게 분장을 했던 점이다. 이훈선 배우의 바가지 머리도, 단발을 넘어서 중단발에 가까운 이규동 배우의 머리도 그들이 얼마나 이 무대를 위해 노력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가발이었다고 해서 관객들이 몰입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가발이었다면 배우들이 그만큼의 움직임으로 모든 순간을 연기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두번째로 이 작품이 인상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공연이 끝난 후 가진 토론시간 때문이다. 민아람 배우는 토론 시간의 초반에 무대 연출에 대해서 관객들에게 설명해주었다. 무대의 구성은 이태준의 사가였다. 놀랍게도 그 사가는 현재까지도 존재하고 있는데, 바로 성북동에 위치한 유명한 한옥카페 수연산방이라고 한다. 민아람 배우를 비롯하여 이돈용 연출 등이 수연산방을 둘러보고 그 구조를 최대한 살려 만든 무대구성이었던 셈이다.


뒤이어 이규동 배우가 나와 작품 속에서 특이한 요소들을 몇 가지 설명해주었다. 현대인들에게 생소할 수 있는 표현들이 여럿 있어 그 표현들에 대하여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예컨대 외떡과 같은 생소한 표현 말이다. 또한 차미(참외)나 동세(동서) 같은 사투리들이 쓰인 것도, 이 당시에는 표준어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전국 각지의 표현들 중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살리는 표현들을 소설가가 직접 선별하여 사용했다는 것에 대한 설명도 이루어졌다. 소설가 이태준은 사상성보다 순수 문학을 추구하면서, 그것이 내용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 구조 자체도 순수하기를 원했던 것 같다.




성북동에서, 이 연극을 보며 이태준을 생각한다는 것은 참 묘한 일이었다. 배우들의 연기가 실감났던 탓에 새삼 이태준이 어떤 마음으로 황수건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반푼이랍시고 대우도 받지 못하는 그를 그토록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이태준의 마음이 참 곱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글퍼졌다. 결국 그 시대에도(일제 강점기라는 극악의 요소를 제외하더라도 시기적으로 옛날이라는 의미에서) 약육강식의 논리는 통했다는 것이 피부로 와닿았기 때문이다.



과연 현대에는 이태준 같은 마음으로 누군가를 보듬듯 바라볼 수 있을까. 이미 사회가 너무 팍팍해져 제 한 몸 건사하기도 쉽지 않아져 버렸으니 어려울 것 같다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1930년대가 과연 살기 수월한 시대였을까. 그것은 또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보니, 종국에는 결국 사람 마음먹기에 달린 게 아닌가 싶었다. 나는 이태준 같이 마음을 쓸 것인지, 삼산학교 교사처럼 마음을 쓸 것인지, 일본인 시학사 처럼 마음을 쓸 것인지 그도 아니면 황수건을 대체하고 새로이 일하게 된 원배달처럼 마음을 쓸 것인지 말이다.



포근한 듯하면서도 왠지 모를 멜랑꼴리함이 느껴지는 이 작품이 하루종일 불어오는 10월의 선선할 가을 바람과 정말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조만간 수연산방에서 다시금, 오늘의 생각을 되짚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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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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