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발, 시대의 초상이자 누군가의 자화상 연극 '고발자들'

글 입력 2017.10.13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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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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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고발자들' 리뷰
: 고발, 시대의 초상이자 누군가의 자화상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삶의 고민은 개인의 문제거나 혹은 사회가 지닌 오래된 상처일 수도 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맥락의 가지로 보이나, 궁극적으로는 같은 뿌리를 지닌다. 개인의 문제는 사회의 문제일수도, 사회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사회는 개인을 품고 있는 더 큰 개념어로 느껴진다. 만약 사회가 개인을 머금고 있는 것이 맞다면, 그 사회는 그 속에 속한 개인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위로할 줄 알아야 한다. 이때의 고민과 위로라는 것은 개인이 사회를 향해 던지는 문제의식을 열린 마음으로 들어주고 함께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일이다.
 
 우연치 않은 때에, 우연치 않은 일로 인하여 한 개인은 공동체 속의 부조리를 마주한다. 이때의 우연은 마치 신의 계시라도 되는 것처럼 필연적으로 한 개인의 도덕성을 가늠케 한다.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개인은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는지, 아니면 묵인해야하는지’에 대한 깊은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긴 고민의 끝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마침내 용기를 낸다. 이제껏 그 누구도 알고 있지만 미처 말하지 못했던 사회 속 부조리를 개인의 양심과 도덕을 걸고 고발하는 것이다. 한 개인이 움직인다. 함께 공감하고 머리를 맞대어 고민하는 자들이 생겨난다. 고민하는 이들은 외치고 또 외친다. 세상을 향해 던져진 부조리는 과연 무너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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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고발자들’은 누군가의 경험이자, 당신의 아픔이자, 우리 사회의 썩어 문드러진 상처에 대해 이야기 하는 연극이다. 그렇게 수면 위로 떠오른 부조리는 이 시대를 비추는 슬픈 초상이자, 누군가의 좌절을 담아낸 자화상으로 다가온다. 연극은 우리 사회 곳곳에 침투한 부조리들을 여러 인물에 의해서, 여러 사건을 통해서 무대 위로 끌어 올린다. 고요하던 호숫가에 돌멩이 하나가 던져져 그 잔상이 일렁이는 것처럼.
 
‘왕따를 당하는 친구를 모른 체 할 수 있을까?’
‘회사의 리베이트 건을 보고도 지나칠 수 있을까?’
‘내가 하는 일이 타인의 인격을 말살시키는 일이라면,
그것이 돈과 명예를 준다하더라도 계속할 수 있을까?’
 
 연극은 계속해서 우리가 들어 보았던, 혹은 직접 마주쳤던 사실 그 자체에 대해서 파고든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고발에 대해서 적극적이지 않으며, 고발자는 세상을 향해 불만을 외치는 이단아라 생각한다. 우리는 그 무엇도 경험해보지 못하면 공감할 수 없고, 그것으로 나아갈 수 없다. 부조리를 향해 마땅한 목소리를 외치는 과정도 이와 같다. 내 눈앞에 당장 들이 닥친 일이 아니라면 쉽게 나서기 어렵고, 설령 마주했다하더라도 나아갈 용기가 없으면 드러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연극 ‘고발자들’은 왜 고발로 나가기까지가 그리도 힘든지, 용기를 내어 세상을 향해 외친 목소리는 왜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오는지 고발자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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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통 회색으로 가득한 무대 위에, 회색 옷을 입은 인물들이 여럿 등장한다. 회색은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그야말로 혼탁 그 자체다. 고발자에게 닥친 사회의 빛깔이 그렇고, 고발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그러하다. 고발인의 모습은 그 자체로 흑일 수도 있고 백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 속 회색분자들에게 비춰지는 모든 것은 회색이기에 극중 무대와 인물의 의상을 회색으로 배치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 닥치지 않으면, 몸소 경험하지 않으면 절대로 공감도 위로도 하려하지 않는 것이 오늘이니까. 극의 중반에 이르러서 인물들의 옷은 얼룩진 회색 옷으로 변한다. 여기서 얼룩은 용기 내어 고발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웃사이더의 반란이란 사회의 부적절한 시선과 부당한 처우뿐임을 의미한다.

 이 연극을 보고나서 누군가는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슬퍼하고 함께 아파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왜 이들이 이렇게 용기내 말하려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나의 일이 아니라 해서 완전히 나와 무관한 일은 그 어느 것도 없다. 이것은 사회의 아픔이자 시대의 상처를 뜯어내고 고쳐나가는 과정이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 - '自畵像'

 

 극 중 마지막에서 주인공은 벽에 기대어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을 낮게 읊조린다. 극을 보고 나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던 까닭에는 그가 노래한 ‘자화상’이 있다. 지금도 곳곳에서 고발자들은 사회 속의 부조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고 소리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폐쇄와 묵인으로 가득한 사회에서 억압되고 무시된다. 결국 한 낱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는 사회 속에서 고발자들이 겪는 것은 자기 자책과 황폐해진 일상으로의 복귀뿐이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이 사회 전체의 잘못 속에서 우리는 슬픈 시대의 자화상을 마주할 수 있고, 짓눌린 누군가의 초상을 바라볼 수 있다. 과연 무의미한 바라보기는 언제까지 지속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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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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