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래도 고발자로 나설 것인가? 연극 '고발자들'

글 입력 2017.10.08 23:5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고발자들_포스터.jpg
 


Review


연휴가 끝나가는 일요일 오후 4시, 연극 '고발자들'을 보고 왔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오르는 극'이라서 놀랐다.

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병원, 학교, 직장, 군대, 공무원 등 다양한 직종에서의 고발자들을 몽타주 형식으로 다루고 있다. 한 인물의 이야기가 대화 몇 마디로 이루어진 대신, 인물은 계속 반복되며 다시 나타나고, 나타난 인물들 사이사이로 고발이라는 하나의 공통점이 드러난다. 여러 직종에서의 여러 대화는 빠른 템포로 엮여져, 극 전체가 굉장히 리드미컬하게 진행된다. 고발을 진행하는 부분에서는 레트로에 가까운 음악이 깔려 상당히 '뛰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참신한 구성과 '고발'이라는 키워드를 다뤘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다만 이들이 무너져가는 과정에서, 임팩트 있는 연출이 반복되는데, 이 반복으로 인해 점점 갈 수록 결말이 오히려 강력하지 못하게 느껴졌다. 조금 아쉬웠지만 커다란 결점은 아니었다. 또, 오리무중인 것이 하나 있었는데, 무대 뒤편에 걸려있는 시계의 의미다. 보는 내내 저 시계는 무엇을 의미하나 고민했다. 끝내 완벽하게 맞는 관념을 찾지 못하고 극장을 나왔는데, 나의 부족인가 싶었으나 같이 보러간 동행 역시 의미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고발자들이 겪어야 했던 참담한 시간의 흐름을 담은 것일까? 연출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전달이 제법 어려웠다.


KakaoTalk_20171008_233245680.jpg
 

그러나 이런 작은 결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극은 고발자의 삶을 상당히 사실적으로, (고발자의 삶을 고발하듯), 다뤘다는 점에서 큰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연극에서는 실제 인물들의 이름, 기업 이름, 자세한 상황 등을 사용하며 아주 사실적으로 현실을 전달한다. 독재 시절, 대학로 연극이 그 때를 고발했던 것처럼, '고발자들'은 고발자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것을 어떻게 고발했으며, 그리고 어떤 비극을 겪었어야만 했는지 진실되게 보여준다.

고발 이후 고발자들은, 권력을 쥐고 있던 사람들 아래서 처참히 무너지진다. 법이 끝내 그들의 손을 들어줬다하더라도, 그들이 떠나보낸 세월과 건강했던 심신은 돌아오지 않는다. "다시 돌아간다면, 하지 않겠어." 정의를 말하다 많은 것을 잃어버린 그들의 모습을 연극은 끝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재미있게도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여러 인물상들을 통해 관객은 다른 결론을 내리게 된다.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여러 인물상들, 특히, 고발자들을 몰아내는 인물들과 그들의 행적은, 정의를 추구하면 돌아오는 비극을 알고 있음에도, 우리가 끝까지 정의와 윤리를 추구해야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주인공이 한 명으로 정해져있지 않은 극이었다. 그러나 주인공이 없어도 고발이라는 하나의 연결고리로 다양한 인물을 엮어내 공감을 이끌어내는 독특한 극이었다. 사회가 언론의 공정성으로 인해 떠들썩한 가운데, 다시 한 번 법과 사회는 누구를 지켜주어야 하는가 돌아보게 되는 극이었다.





작품설명

 
“말로만 듣던 그 소문, 그 풍문이
갑자기 켜진 화면처럼 내 눈 앞에서 펼쳐졌을 때,
내 심장은 아프도록 뛰었다.”

 
내부고발자들은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며 영웅이 되지만 그것도 잠시. 조직의 책임자들은 사실을 부정하고 고발자들을 음해한다. 동료들은 배신자를 보듯 그들을 멀리하고, 언론은 사실을 비틀고, 이해당사자들로부터 노골적인 압박이 가해지고, 도리어 조직으로부터 고발되고…… 결국 그들은 조직에서 추방되고, 건강을 잃고, 가정은 붕괴되고, 홀로 남겨진다.

“그래도 고발자로 나설 것인가?” 이 연극은 이 질문을 객석에 던지기 위한 공연이다.


_DSC7152_메인2.jpg
 

내부고발자의 고뇌과 고통, 그 순간순간의 마음 길을 따라가 보는 작품

내부고발자들이 문제를 발견하고 고민하다 동료들과 공분하고, 내부에서 항의하고 바로잡으려다 실패하고, 증거 자료를 수집한 후 가족과 동료들의 지지를 확인하고 마침내 문제를 고발하고 폭로하기까지……많은 이들이 포기하고, 다시 용기를 냈다가 또 돌아서고, 양심과 정 의감에 다시 결심했다가 마지막에 또 다시 주저하고, 그랬다가 마침내, 드디어, 피 토하듯 결행한 이들의 마라톤 레이스 같기도 하고, 서바이벌 게임 같기도 한 이야기, 라기보다는 그들의 목소리와 몸짓, 떨리는 숨소리를 담은 연극이다.


_DSC7256.jpg
 

모든 배우가 몇 십 명의 역할을 번갈아 연기,
파편을 모아 하나의 질서와 구조를 드러내는 구조적 글쓰기가 돋보이는 작품

이 연극은 특정인물을 특정 배우가 전담하지 않는다. 다수의 내부고발자와 그들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을 13명의 배우가 번갈아 연기한다. 내부고발자가 문제의 단초를 발견하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는 시작부터, 어렵게 어렵게 폭로를 결심한 후 그들에게 가해지는 상식적이지 않은 비난과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을 경험하기까지… 그리고 투쟁에서 이기거나 진 이후의 고통스런 현재까지… 여러 인물을 둘러싼 얽히고 섥힌 관계와 상황, 사건을 박상현 작가는 그의 주특기인 구조적 글쓰기로, 교묘하게 파편들을 직조해 커다란 작품 하나를 완성시킨다.
 

_DSC7642_메인.jpg


내부고발자들의 육체적 고통에 주목, 불감시대에 신랄한 비판의 칼날을 들이미는 작품

<고발자들>은 내부고발자들이 겪는 분노와 불안, 긴장, 공포, 배신감, 자책감, 울화 등이 어떻게 육체적으로 나타나며, 육체적 고통을 주는가를 표현하는 데 큰 비중을 둔다. 배우의 숨 소리, 심장 박동 소리, 신음 소리, 비명 소리, 울음, 웃음, 울부짖음 등 대사를 통해 전달되는 것 이상의 다양한 소리들이 극 전체에 드리워진다. 이는 가슴보다는 머리가 더 앞서는, 타인의 아픔보다 내 손톱 밑 가시에만 예민한 불통, 불감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예리한 칼날을 드리미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작가의 말


“나는 내부고발을 한 사람의 삼중고에 주목했다. 처음에는 마음 속에서의 갈등, 다음엔 조직 내에서의 낙인, 그리고 사회에서의 오해와 의심……. 이 갈등과 충돌의 삼겹, 오겹은 연극의 구조로서 더 없는 조건이기도 하다.”

“1985년 보도지침을 폭로한 김주언 기자, 1990년 감사원 감사 비리를 폭로한 이문옥 감사관, 국군 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윤석양 이병, 1992년 군 부재자투표 부정을 고발한 이지문 중위……. 이 분들은 내부고발인의 원조격인 분들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우리 민주화의 속도도 더디어졌을 것이고, 우리 무대에 오르는 내부고발자들의 숫자도 훨씬 적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작,연출 박상현





고발자들_상세_수정.jpg
 

본 리뷰는 아트인사이트 문화초대를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이주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