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 곁의 수많은 김지영을 위해 [문학]

82년생 김지영은 소설 속 인물이 아니다.
글 입력 2017.10.02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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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년생 김지영’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베스트 셀러에 이름을 올린 책이다. 이 책은 유난히 주변에서 빌려주겠다는 말이 많았다. 친구든 언니든 혹시 아직 그 책을 보지 않았다면 빌려주겠다는 그런 호의가 주변에 넘쳐났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를 기다리는 시간에 서점에 들렀다. 약 20분간의 시간이 있었고, 그 시간 동안 나는 사람들이 그렇게 빌려주고 싶어 했던 책을 집어 들었다. 이야기가 슬슬 진행될 때쯤 약속 시간은 다가왔고 아쉽게 읽다 만 책이 계속 생각나 그 후에 책을 빌려 읽게 되었다.

  책을 읽고 난 후로, 왜 사람들이 그렇게 이 책을 빌려주려고 했던 건지 조금은 이해가 갔다. 어쩌면 당연하게 느껴졌을 수많은 김지영 들의 삶을 객관적으로 책으로 펴내니 왜 이렇게 이상하고 불합리한지, 너무 화나는 삶이라 남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런 삶을 당연시하지 말라고,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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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82년생 김지영'


  82년생 김지영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시대의 가장 표본적인 여성이다. 너무나 흔한 이름인 김지영 씨의 집안은 9급 공무원 아버지와 전업주부 어머니, 언니와 막내 남동생으로 구성된 아주 평범한 집안이다. 그녀의 학창시절 성적은 중간, 어중간한 성적으로 서울권의 인문학부에 진학했다.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너무나 흔한 여성이다. 작가는 이 인물을 통해 이 시대의 여성들을 묘사한다.

  김지영 씨가 가장 먼저 겪은 차별은 할머니로부터의 차별이다. 할머니가 막내인 남동생을 아끼는 환경에서 자라나,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당연히 남자는 1번이 되는 학급 번호를 거친다. 남자부터 시작하는 학급 번호, 자연스럽게 남자부터 급식을 먹는다.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아이의 괴롭힘에 고통받지만, 선생님은 ‘저 친구가 너를 좋아해서 그래.’라는 말로 이해를 강요한다. 그 후엔 김지영 씨가 자신을 좋아한다 착각한 남자의 스토킹으로 남자 공포증을 겪기도 하고, CC(Campus Couple)를 하다 헤어진 김지영 씨를 ‘씹다 버린 껌’이라고 표현하는 남자 선배들의 대화를 듣기도 한다. 여성에게 가혹한 취업에서 성희롱에 가까운 면접 질문을 받고 광고홍보대행사에 입사한다. 남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회사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지만, 아이를 가진 후 바로 퇴사한다. 힘들게 아이를 키우지만 ‘맘충’소리를 듣는 그녀는 결국 정신병에 걸리고, 그녀 주변의 여성들에게 빙의하는 증상을 겪는다. 이야기는 그녀의 증상을 설명하는 정신과 의사의 말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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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충'은 개념없는 행동을 일삼는 무개념 주부들을 일컫는 인터넷 신조어다.
주로 비하의 의미로 많이 쓰인다.


  줄거리 요약만 보자면 김지영 씨에게는 불합리한 일들만 벌어지는 것 같다. 책을 읽다가 순간, 책 속 내용이 꾸며낸 이야기인 소설이기 때문에 일부러 여성이 겪을 수 있는 차별을 모두 넣은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 쯤엔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김지영씨와 너무나 흡사한 내 주변의 인물이 떠오른다. 혹자에게는 아내가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엄마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 너무나 현실적이면서도 현실이 아니었으면 하는 이야기에 부정하고 싶지만, 거기에 대입되는 인물이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책이 나에게 준 충격이었다.

  엄마는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넉넉지 못한 시골집 형편에 대학을 포기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을 하자마자 서울로 향했고 그곳에서 열심히 돈을 벌었다. 엄마는 열심히 돈을 벌어서 큰삼촌의 학비를 댔다. 그 당시엔 그게 당연한 거였고, 엄마는 지금도 후회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딸인 나의 입장으로 이 상황은 이상하다. 그런 엄마는 내가 어릴 적, 대학에 대한 아쉬움으로 방송통신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나와 동생을 키우면서 동시에 일을 하느라 결국 졸업은 하지 못했다. 엄마는 요즘도 가끔 사무실에서 일하다가도 영어 공부에 대한 아쉬움에 영어 강의를 듣는다. 그런 엄마가 스쳐 지나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김지영을 당연시 여겼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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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스페셜의 82년생 김지영 편. 대표되는 80년대생 여성들의 일상을 보여주었다.
82년생 김지영은 소설 속 인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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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82년생 김지영'은 82년생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김지영 씨를 지나간 연도들에 국한하기엔 우린 아직 많은 김지영 씨들과 함께하고 있다. 또한, 95년생인 내가 김지영 씨와 전혀 닮지 않았냐 물으면 그것도 아니다. 할아버지가 남동생을 조금 더 좋아하셨던 기억, 나를 괴롭히던 남자애는 나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주변에서 이해하라고 했던 기억,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변태 아저씨들을 만났던 기억. 그 모든 기억이 세상은 아직 수많은 김지영씨들과 함께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세상은, 이런 김지영 씨를 이해하기보다는 서로를 적대하는 경향이 더욱 커지고 있다 남혐이니 여혐이니, 양극단으로 서로를 나누고 헐뜯기만 하는 세상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서로를 힐난하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분명 서로가 가진 고충이 있을 것이다. 이를 ’82년생 김지영’처럼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서로를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는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묻는다. ‘82년생 김지영 읽어봤어? 안 읽어 봤으면 빌려줄까?’하고 말이다.


[이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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