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기억] 푸른 하늘과 구름과 꽃이 모두 담겨있었다.

2017.10.01 7.
글 입력 2017.10.01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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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구슬

첫 번째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
구슬치기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매일 등교시간과 하교시간에
아이들에 손에는 구슬이 들려있던 것도 잠깐,
그 관심은 그새 다른 것으로 옮겨갔다.

그때 즈음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서는데,
1층 현관 앞에 있던 작은 화단에서
아침의 햇살에 반짝하고 무언가가 빛나며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뭐지? 하며 다가가니
그것은 구슬.

혹시나 요정이 두고 간 걸까 싶어
조심스레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화단에는 구슬이 하나씩 떨어져 있었다.

다섯 개 정도 모였을 때부터
더 이상 구슬이 떨어져 있지 않았다.

각자 모양이 다른 구슬이
각자 다른 요정이 떨군 것인지,
한 요정이 떨구고 간 것인지.

혹시나 아침에 나서는 길에
구슬의 주인을 만나게 될까
한참을 가방 안에 넣고 다녔던
구슬이지만 주인을 찾아주진 못했다.




ps.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저 구슬이 많던 아이가 하나씩 떨구고 갔을 구슬인데,
왜 꼭 요정이라 생각했는지. 그때엔 꽤나 진지했었다.
구슬 안에 요정의 마법이 들어있지 않을까 싶어서 햇빛에 대고 비춰보며
들여다 보았을 정도이니까 말이다.





#30 도시락

미술학원에서 어쩌다 알게 된 친구가 있었다.
학원에서의 첫 친구.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고,
이름도 생김새도 기억나질 않는다.

오직 기억나는 건
점심과 저녁 사이 어디쯤의 애매한 학원시간에 맞추어
항상 도시락을 가져왔다는 것과
그 도시락을 나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것이다.

부모님이 바쁘다는 공통점에
나름의 고충을 털어놓으며
작은 도시락이지만 항상 함께 나누어 먹었다.


날이 좋았던 하루는
학원 뒤의 놀이터에 갔다.

그 놀이터에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앉을 수 있는
꽤 높은 평상이 있었는데
그곳에 올라가 도시락을 먹었다.

다리를 쭉 뻗고는
나의 무릎엔 밥을,
친구의 무릎엔 반찬을 올려두고는
더운 듯한 햇살을 맞으며
문어 모양의 소시지에 꺄르르 웃던
그 감각이 참 생생하다.




ps. 친구의 성격조차 기억나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오래했던 친구는 아니였나보다.
그럼에도 친구가 나에게 기꺼이 나눠주었던 도시락은 항상 따뜻하고 맛있었던 기억에
고마운 마음이 아직도 깊이 남아있다.





#31 시소

나의 첫 번째 초등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던 놀이기구는 시소였다.

이유는 굉장히 높이 올라가기 때문이었는데,
내려갈 때는 무섭지만 한번에
휙- 하늘 위로 떠오르는 기분이 꽤 좋았다.

매일 점심시간에 시소를 탔었는데
매일 탔던 시소인데
내 머릿속에는 단 한 장면만이 남아있다.

하지만 그 장면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아쉽지는 않다.

학교의 교정에는 벚꽃이 만개해 있었고
적당한 바람이 불어 꽃잎은 날렸으며,
한낮의 햇살의 따스함과 눈부심에 반쯤 감긴 시야에
푸른 하늘과 구름과 꽃이 모두 담겨있었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고
그곳으로 스스로 찾아갈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다시 찾아간 그곳은 기억과는 사뭇 다른 장소였다.

시간이 흘러 그 기억이 미화된 것 일까
내가 달라진 걸까
학교가 달라진 걸까

중요한 건
내 머릿속에는
아직 그 날의 장면이 생생하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ps. 너무나 좋아하는 어린 시절의 기억 중 하나이다.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이기에 항상 어디엔가 걸어두고 지켜보고 싶을 정도인데,
그 감각까지 걸어둘 순 없으니 글로 표현하는 것이 최선일 따름이다.





#32 칠판 지우개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내가 가장 많이 했던 청소는
칠판 지우개를 깨끗이 터는 청소였다.

분필로 잔뜩 필기가 된 칠판을
지우개로 스윽 지워내면
그 가루가 지우개에 한 가득 묻곤 했다.

하루의 끝에는
가루로 새하얗게 변한 지우개를
복도에 있던 지우개 털이에 털어서
다시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 그 청소의 주요 할 일이었다.

지우개 털이란
나무상자에 지우개를 넣고
그 바깥에 있는 손잡이를 돌돌 돌리면
상자 안의 막대기가 돌아가며
지우개를 쳐서 가루를 털어주는 도구로
사실 별로 큰 효과는 없었다.

그래서 결국
다들 창문을 열고 손을 한껏 뻗어서
지우개끼리 팡팡 부딪히게 하여 가루를 털어내곤 했는데
복도 전체에 뿌옇게 일어나는 가루 안개로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것이 지우개 청소의 은근한 재미였다.

짓궂은 아이들은 친구를 향해
분필 가루를 일어나게 하기도 하고,
서로의 옷에 지우개를 푹 눌러
가루가 그대로 찍히게 하는 등
지우개 청소는 다양한 순간들을 만들어냈는데,

완벽히 털린 지우개를
칠판의 끄트머리에 올려두며
다음날 깔끔하게 지워질 칠판을 기대하며
뿌듯해 했던 순간이 가장 좋았던 것 같다.



 
ps. 분필 가루의 악명이 세상에 알려지고 분필의 형태가 달라짐에 따라 지우개의 형태도 달라졌다.
더 이상 가루가 날리지 않는 촉촉한 분필을 천에 물을 묻혀 닦아내는 지우개가 되었는데,
지우개 청소의 재미는 많이 줄어들었던 것 같다.
대학생이 되니 새삼 지우개로 칠판을 지우는 일과는 많이 멀어지면서
오랜만에 떠오른 이 지우개 청소 에피소드가 많이 반가웠다.









전문필진 명함.jpg

 
이미지 출처: 아이유 하루끝 뮤비


[정연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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