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천경자, 그녀의 슬픈전설의 91페이지 [시각예술]

글 입력 2017.09.21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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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작년 거실에서 뉴스를 보던 엄마가 ‘어머, 결국 이렇게 돌아가셨네.’ 라며 탄식하는 소리에 놀라 ‘누가?’ 라며 뛰쳐나왔던 내가 티비 화면에서 보았던 건 ‘천경자’라는 이름의 여류화가가 별세 했다는 소식의 한 장면이었다. 별세 했다는 소식과 함께 뉴스 영상에 나왔던 몇 점의 그림들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날 정도로 나에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허공을 유영하는 듯 초점 없이 어딘가를 바라보는 눈을 한 강렬한 색감의 여인 그림은 당시 내가 천경자 화백의 생애나 그녀의 예술인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쓸쓸함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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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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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시Ⅱ>, 1985


 처음 본 그녀의 작품에서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졌던 것이 우연은 아니었다. 그녀의 생애에는 크고 작은 굴곡이 있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 두 번의 이혼과 사랑하는 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녀가 겪었을 이 고난과 시련이 이 여인의 두 눈동자에 담겨 있는듯했다. 여인의 초점 없는 고독한 두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그녀의 인생이 내 마음을 관통하는 듯 자꾸만 마음이 아려온다.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는 천경자 화백이 54세 때 그린 그녀의 대표적인 자화상이다. 그녀가 22살의 자신을 회상하며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그녀가 집필한 책 중에도 이 작품과 비슷한 이름을 가진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라는 책이 있을 정도로 그녀는 ‘내 슬픈 전설’ 이라는 말을 좋아했다고 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말할 때 이 여인의 머리위에 앉은 뱀과 가슴에 품은 장미가 한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젊은 날의 슬픈 기억을 초연한 눈빛을 한 여인으로 그려내기까지의 과정에서 느꼈을 천경자 화백의 감정이 물밀 듯이 밀려온다.
 
 그녀는 장미를 자신의 재산목록에 포함시킬 정도로 좋아했다고 한다. <여인의 시>라는 작품은 사랑했던 연인에게 장미 같은 사랑을 바쳤지만 끝에는 장미의 가시가 가슴을 채웠다는 의미를 가지는 작품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온 마음을 다해 사랑을 바쳤지만 그 사랑이 장미의 가시가 되어 돌아왔다는 그녀의 말과 작품 속 여인의 담담한 눈동자에서 느낄 수 있는 그 당시의 비애와 고통을 초월해버린 그녀의 예술성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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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1951


 그녀는 독특한 화풍의 여인상으로 매우 유명하지만, 그 어느 작품보다도 그녀의 뼈아픈 고통이 제일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은 바로 <생태>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52년 부산에서 열린 그녀의 개인전에서 처음 공개되었다고 한다. 여자 화가가 혐오의 대상인 뱀을 무수히도 많이 그렸다는 소문에 더 유명해진 이 작품은 당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한국 화단에 천경자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징그러운 뱀 무더기가 쌓여있는 모습은 그녀의 고통과 비애가 담긴 ‘한’ 덩어리와도 같다. 당시 그녀는 결혼의 실패와, 혈육의 죽음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뱀 그림으로 고통을 극복하고자 했고, 열심히 그리다 보니 33마리였고 여기에 사랑하던 뱀띠 남자의 나이를 맞추어 두 마리를 더 그려 넣어 35마리로 완성했다. 한데 뒤엉킨 35마리의 뱀은 그녀가 겪었을 고통도 보여주지만, 자신의 슬픈 과거를 뱀의 허물처럼 벗고자 하는 그녀의 마음이 보이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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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작 논란이 있는 <미인도>, 1977


 천경자 화백은 이후에도 그녀만의 독특한 화풍의 작품으로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1991년 뜻밖의 고비를 맞게 된다. 미인도 위작 논란이었다. 지인들의 연락으로부터 알게 된 천경자 화백의 화풍을 교묘하게 따라한 작품은 놀랍게도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유였다. 그녀는 "내 작품은 내 혼이 담겨 있는 핏줄이나 다름없습니다. 자기 자식인지 아닌지 모르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나는 결코 그 그림을 그린 적이 없습니다. “라는 항변을 했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 화랑협회에 감정을 맡긴 후 진품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녀는 ‘자기 그림도 몰라보는 화가’라는 오명을 쓰고 충격을 받아 이내 절필을 선언하고 미국으로 떠난다. 이후 그녀는 1998년 11월 채색화와 스케치 등 자신의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했고 뉴욕으로 이주했다. 2003년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소식 이후 외부와의 접촉이 끊어져 그녀의 자취를 알 수 없어졌다. 2015년 8월 그녀는 사망했고 사망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건 2개월 후인 2015년 10월 이었다.
 
 미술비전공자인 내가 봐도 미인도는 천경자 화백의 작품이 아님을 알 수가 있다. 미인도의 제작연도로 알려진 1977년 천경자 화백은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를 완성했다. 이 두 작품을 비교해 보면 천경자 화백의 작품 속 여인의 눈은 살아있지만, 미인도 속 여인의 눈은 죽어있다. 또한 색채에서도 확연히 차이가 나는데, 천경자 화백의 작품의 색채는 매우 화려하고 생동감 있는 것에 비해 미인도는 칙칙하다고 느낄 정도의 성의 없는 색감을 가지고 있다. 우연한 계기로 천경자화백의 작품을 사랑하게 된 한 사람으로서 그녀가 위작사건으로 충격을 받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훌륭한 작품들을 더 볼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작가가 위작이라고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지 않고 진품이라 주장한 국립현대미술관의 태도에 화가 난다. 이후, 유족 측의 사비로 감정을 의뢰한 프랑스 뤼미에르 감정팀이 오랜기간의 감정을 거친 후 미인도는 0.0002%만의 진품가능성을 가진 위작이라고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미인도를 진품으로 결론 냈다.
      
 애석하게도 천경자 화백은 위작 논란에 대한 한을 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은 미인도가 위작임을 알고 있으며, 꾸준히 천경자 화백의 작품들을 사랑할 것이고,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그녀의 예술성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유독 ‘내 슬픈 전설’ 이라는 말을 좋아했던 천경자 화백은 그녀의 슬픈 전설을 91페이지로 끝마쳤다. 그러나 그녀의 영혼은 그녀의 작품에 남아 우리와 함께 오래도록 살아갈 것이다.





이미지출처: 구글이미지


[박윤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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