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초록물고기 : 그가 찾던 물고기는 어디 있는가? [영화]

글 입력 2017.09.1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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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물고기
: 그가 찾던 물고기는 어디 있는가?


-본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가였던 이창동 감독의 연출 데뷔작인 초록물고기(1997)는 현재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젊은 시절 모습이 먼저 눈에 띤다.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으로 이어지는 굵은 줄기의 시작이었던 초록물고기에는 세심하고 문학적인 연출이 녹아들어 있다. 20세기가 끝날 무렵, 혼란하고 변화무쌍한 도시와 그 변화를 따라가기엔 버거운 젊은이의 이야기. 그가 찾던 물고기는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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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막동(한석규)의 전역과 함께 시작된다. 기차 안에서 만난 묘령의 여인은 스카프만을 남긴 채 사라진다. 바뀌어버린 고향의 풍경에 그는 더듬더듬 집에 찾아간다. 노쇠한 어머니, 장애를 가진 형이 기다리고 있는 집. 자신의 삶을 살기 바쁜 작은 형과 큰 형은 막동에게 큰 관심을 주지 않는다. 그런 형들에게 예전처럼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건내보지만 반응은 시큰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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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나이트클럽에서 기차에서 만났던 묘령의 여인 미애(심해진)와 재회하게 된다.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하는 미애는 조직폭력배 배태곤의 애인이었다. 막동을 눈여겨보았던 미애는 배태곤에게 부탁하여 막동에게 일자리를 준다. 주차장에서 일하게 된 막동은 어느 날 배태곤의 부하와 싸움에 휘말리게 되고, 막동의 배짱을 높이 산 배태곤은 그에게 일을 청탁한다. 일을 처리한 후엔 자신을 형님으로 모시라며 조직의 일원으로 막동을 영입한다. 그런 배태곤을 막동은 마음을 다해 모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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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생신을 맞아 오랜만에 가족 모두가 모여 음식을 하고 나들이를 떠나지만,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허름하기 짝이 없다. 꽃 한 송이 없는 황량한 강변에서의 나들이는 결국 가족들 간의 싸움으로 번진다. 막동이 기대했던 즐겁고 단란한 자리는 아니었다. 그러한 가족들을 뒤로한 채 막동은 벗어나고 싶지만 어찌할 도리를 모르는 듯, 차를 몰고 같은 자리만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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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으로는 미애를 좋아하지만 그녀에게 함부로 대하는 배태곤을 질타할 수도, 그녀를 지켜줄 수도 없는 막동은 소극적으로 행동한다. 막동의 순수한 태도와 자신을 향한 마음에 미애는 흔들리게 되고 막동에게 의지한다. 배태곤을 위해 살인까지 저지른 막동은 큰 혼란에 빠진다. 미애와 도망가려는 계획까지 배태곤에게 들킨 막동은 그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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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무리는 현재의 막동의 집, 즉 일산의 풍경을 보여주며 이루어진다. 영화의 초반에 보여주었던 옛 사진 속 막동의 집과 어린 시절의 막동과는 변해버린 현재. 형들을 만나 예전처럼 같이 살면 안되냐며 과거에 대한 향수를 품고 무너져버린 가족관계 안에서 혼란해하던 그는 새 세상에 자리하지 못한다. 새롭게 생긴 도시의 형제들에게도 막동이 기대한 소속감과 연대의식은 찾을 수 없었다. 철저히 그를 도구로 이용하고 가치가 없어지면 내치는 그들의 세계에 막동은 편입될 수 없었다. 그가 가진 순수함은 가족에게서도, 사랑에 있어서도, 어두운 세계에서도 더 이상 아무런 힘을 내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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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을 저지른 뒤, 전화 부스 안에서 형에게 물고기를 잡으러 갔던 기억을 되묻는 그의 모습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먹먹함을 짙게 안겨준다.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고 느낀 그 순간 그에게는 형과 함께했던 어린 시절이 간절한 듯 보였다. 차창에 달라붙어 마지막 숨을 내뱉던 그의 모습은 흡사 물고기가 물을 찾지 못해 죽어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가 그토록 찾아다녔던 초록 물고기는 사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가 다시 얻고 싶었던 따뜻한 가족 관계처럼 말이다. 결국 가족이라는 물을 발견하지 못한 막동이라는 물고기는 처참히 죽어가고 만다. 막동의 식당에 밥을 먹으러 배태곤과 함께 온 미애는 언젠가 막동이 보여주었던 사진 속 나무를 실제로 보고 오열을 한다. 그를 보며 잠시나마 어지러운 현실을 떠나 순수의 세계로 떠날 희망을 품었던 그녀의 울음은 다시 한 번 막동의 얼굴을 떠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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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잘 있어 괜찮어.
큰 성 생각나 빨간 다리? 빨간색 철교.
우리 어렸을 때 빨간 다리 밑으로 물고기 잡으러 많이 다녔잖아…
큰 성 그 때 생각나? … 그 때 생각나…?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 내 캡쳐


[유세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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