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금기에 도전한 학자 마광수 [문학]

글 입력 2017.09.18 21:2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다운로드.jpg


 마광수 교수가 우울증으로 9월 5일 자택에서 자살한 채 발견되었다. 향년 66세에 고인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스카프로 목을 맨 채 숨져 있었다. 그는 시인으로 그리고 작가로서, 그리고 학자로서 많은 작품을 남기고 연구를 했다. 1977년 <현대문학>에 ‘배꼽에’ 등 여섯 편의 시를 발표하여 박두진 시인 추천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1983년에는 ‘윤동주 연구’ 논문으로 연세대에서 문학박사가 되었다. 윤동주 시인과 시에 대해 알려진 건 거의 마광수 선생님의 연구가 바탕이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즐거운 사라’는 도발적 성애를 다룬 음란물로 몰려 금서가 됐다. 1991년 첫 출간된 ‘즐거운 사라’는 아직 출판금지 상태이고 마광수 사망 후 이 소설은 중고 판매 사이트에 한권에 25만원에 팔리고 있다. 1989년 장편소설 <권태>로 소설계에 데뷔하고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출간하였지만 언론의 혹평을 받았고, 대학에서 강의가 취소되는 시련을 겪었다. 1992년에 문제의 장편소설 <즐거운 사라>가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구속됐다. 문제는 사법의 이름으로 그의 책을 출판 금지시키고 심지어 긴급체포도 하고 형사 처벌을 했다는 것이다. 대중들에게도 잘 안 알려진 사실은 2007년 자신의 홈페이지에 <즐거운 사라>이 텍스트를 올려, 벌금 200만원을 물었단 것이다. 

 당시 대법원 판결문을 읽어보는 것은 역사적 의미가 있을 것이다.



[대법원 1995.6.16. 선고 94도 2413 판결]

 이 사건 소설 “즐거운 사라”는 미대생인 여주인공 “사라”가 성에 대한 학습요구의 실천이라는 이름 아래 벌이는 자유분방하고 괴벽스러운 성적묘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 묘사방법도 매우 적나라하고 장황하게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또한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어서 주로 독자의 호색적 흥미를 돋우는 것으로 밖에 인정되지 아니하는바, 이 사건 소설은 작가가 주장하는 “성 논의의 해방과 인간의 자아확립”이라는 전체적인 주제를 고려한다 하더라도 음란한 문서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마 교수의 여러 행적은 앞으로도 여러 가지 각도에서 평가될 것이다. 금기에 도전한 용기있는 학자였지만, 비판적으로 볼 대목도 많다. 문제는 사법의 이름으로 그의 책을 출판금지 시키고 심지어 긴급체포도 하고 형사처벌을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았어도 그냥 내버려 뒀으면 자연스럽게 평가받고 비판받고, 도태되고.. 그렇게 흘러갔을 것이다. 2017년 기준으로 마광수의 책은 노잼일 뿐이다. 그리고 나서 마교수는 성 말고 또 다른 금기를 찾아 나섰을 수도 있다. 그러나 1991년의 이 필화 사건 덕분에 그는 수십년간 ‘즐거운 사라’의 덫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즐거운 사라’ 사건 이후 법적 책임은 두 달 정도 구속되어 있었던 기간으로 그쳤지만 그 뒤에 계속 어려움을 겪었다. 출판사를 찾기도 어려웠고 그래서 시선집을 내면 문학평론가를 찾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번 마광수 교수 제자들이 이건 사회적 타살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선생님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힘 닿는데까지 노려하겠다 이런 말도 했다고했다. 좀 다른 얘기지만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 얘기를 하자면 에밀 뒤르켐은 ‘자살론’에서 자살은 사회현상이며 자살의 원인 역시 사회적이라는 표현을 했었다. 빈센트 반 고흐가 알아주지 못하고 상당히 가난하게,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는데 그것에 극작가이면서 시인인 앙토넹 아르토가 ‘사회적 타살’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마광수 교수도 이와 같이 사회가 제대로 못 알아봐준 사회적 타살이다. 이런 식으로 표현 한 것 같다.


 문명의 역사는 금기 타파의 역사다. 문명은 어쩌면 표현의 자유를 부르짖는 세력과 사회 미풍양속 보존을 위해 지나친 표현을 막아온 세력 간의 길고 긴 갈등의 역사였다. 지금은 명작으로 꼽히는 보들레르의 <악의 꽃>이나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같은 작품도 당대에는 음란 혐의로 몰렸다.

 마광수를 떠올리면 일본의 대표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떠오른다. 둘은 비슷하면서도 너무 다르다. 하나는 시대를 잘 못 만났고 하나는 시대를 잘 만났다. 그러나 마광수와 무라카미 하루키는 동 시대의 작가였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1987년에 ‘100퍼센트 연애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내건 ‘노르웨이의 숲’을 발간으로 일약 베스트 셀러 작가로 등극했고 마광수는 1989년 장편 소설 ‘권태’로 소설가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스타가 됐고 마광수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한국인들에게 억압받고 외면당하던 ‘즐거운 사라’가 1994년 일본에서 번역 출간되어 일본에 소개된 한국 소설 중 최초의 베스트셀러이다.

 마광수의 책을 당시 시대적 맥락을 초월해서 평가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2017년의 맥락에서 보면 그의 책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윤동주의 아름다운 싯구를 연구하던 한 문학가가, 1991년 한국사회의 맥락에서 아주 의도적으로 도전장을 던진거라고 본다면 얘기가 좀 다르다. 윤동주를 연구하던 사람이 이렇게 품위없는 언어로 성애를 묘사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유 없이 그렇게 썼겠어요, 문학의 품위주의, 양반주의, 훈민주의 이런 것들에 대한 반발이지.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야한 소설을 쓴다고 해도 어법이나 전체적 틀은 경건주의를 유지하려 애를 쓰고 꼭 결론에 가서 권선징악으로 맺는다거나 반성을 한다거나 그런 식으로 글을 맺잖아요. 저는 그런 것에 대한 반발로 사라를 부각시키려고 했어요. 우리나라 소설에 사라 같은 여자가 있나요. 다 자살하거나 반성하거나 그러지”
심지어 그는 <즐거운 사라>가 페미니즘 소설이라고까지 주장한다.

“한국 소설 역사상 여자가 성을 주도한 경우는 없어요. 남자가 끌고 가고 여자는 상처받고, 자살하고 회개하는 게 우리나라 소설의 기본 구성이지. 팜므파탈. 그런 걸 그리려고 해”
작가가 정말 페미니즘 소설을 의도 한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좀 논란의 여부가 있다. 


 당시 마광수 교수의 변호인은 한승헌 변호사였음. 한 변호사의 말씀을 인용할 필요가 있다. 한 변호사는 심경 발표를 할 때, “제 변론 목적은 억울함을 푸는 것이지만 설령 그것이 판결에서 안 통하더라도 분명한 사리와 정의를 재판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어요. 벌거벗은 권력 앞에 외롭게 서있는 피고인에게 위로가 되는 우군이 되어주자, 그리고 이런 우스꽝스러운 재판 현장을 후세에 알려주는 증인이 되자는 목적으로 변호를 했습니다.” 이런 말을 했음. 어쨌든 모로 보나 마광수 교수의 자살이 사회적인 고립에서 영향을 받지 아니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마광수는 천재로 불리던 문학도에서 외설 시비로 사회의 손가락질과 함께 구속되는 고초를 겪어야 했던 '예술과 외설의 경계인'이 아니었나 싶다.


[김윤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