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손에 쥔 바다를 내려놓기 : < 나만의 바다 > [문학]

글 입력 2017.09.15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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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곡히 글자로 뒤덮인 책들을 읽다보니 그림이 그려진 책들은 멀리했었다. 현대 소설을 전공하면서 빽빽한 글자의 향연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언어로 축조한 성들을 찬미하다 보니, 의식 속에서 나도 모르는 층위가 만들어졌다. 글자로 가득한 이야기는 상위의 것이고, 그림책은 하위의 것이라는, 내가 생각해도 오만한 층위가 말이다. 마치 ‘순수’문학이라는 표현으로 이것과 저것을 구분 짓고, ‘저것’을 낮은 층위로 범주화하고 솎아내듯이, 내가 싫어했던 기존의 방식들을 그대로 답습한 채로 이야기를 마주해왔다. 좋은 말로는 내가 먹어본 것만 최고라는 이야기의 편식, 더 정확하게 나는 지나치게 완고한 고집불통의 독자였음을 고백한다.

 
넓은 종이 위, 한 장에 많으면 네 문장, 적게는 한 문장까지. 그림책의 언어들은 시만큼이나 함축적이다. 그리고 그 모든 언어들은 삽화와 함께 어우러져 ‘느낌’들을 만들어낸다. 밑줄을 치고,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즉각적인 느낌들. ‘A는 B일 것이다’, ‘여기엔 이런 의미가 있을 것이다’라는 독서가 아니라 그림이 주는, 짧고 쉬운 문장들이 주는 그 즉시의 느낌. 그래서일까? 인물에 대한 생각, 주제의식에 대한 생각보다 더 개인적인 내 내면의 생각들이 책을 덮은 후 마음 곳곳에서 튀어 오른다.
 

나만의바다_앞표지.jpg

 
한 아이가 가족과 함께 바다로 향한다. 아이는 바다에 가고 싶지 않아 한다. 그러나 바다에 들어가서 따뜻한 물결을 느낀 아이는 바다를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이 바다를 집으로 가져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바다는 무한하지 않다’는 오빠의 저지에 바다를 있는 그대로, 마음속에 간직한 채로 집으로 돌아온다.

     
‘나만의 바다’ (The specific ocean)라는 제목처럼 독자는 바다 안에 자신만의 기의를 담는다.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바다에 우리는 많은 것들을 담는다. 아이가 거부하고, 경계하다가 이내 사랑하게 되는, 그리고 이를 소유하고 싶다가 포기하게 되는 ‘바다’는 일상 속 여러 관계를 떠오르게 한다. 직접 만나기 전에는 걱정하고 싫어하고 거부하다가, 이내 만나고 나서는 눈에 보이지 않은 깊은 곳까지 사랑하게 되는. 어쩌면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관계들이 바다를 생각하는 아이의 마음에서 읽힌다.
 

나만의바다_24-25.jpg 

   

도시에 있는 우리 집으로,
친구들 곁으로 돌아가고 나서도
바다는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을 테니까.
 
잔잔한 바다. 푸른 바다.
물결치는 바다. 잿빛 바다.
장난꾸러기 바다. 초록 바다.
신비로운 바다. 먹빛 바다.
안개 낀 바다. 은빛 바다.
휘몰아치는 바다. 하얀 바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고유의 바다는
언제나 나와 함께일 테니까.


 
마음이 따뜻해지는 건 관계에 대한 아이의 깨달음 때문이다. 아이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영원히 곁에 두고 싶지만, 오빠는 아이를 만류한다. ‘바다는 무한하지 않다’며 말이다. 바다 곁에 있는 마지막 밤, 아이는 침대에 앉아 가만히 바다의 소리를 듣는다. 그리곤 자신이 사랑하는 바다가 고스란히 마음속에 남아있기 때문에, 바다를 가지고 가지 않아도, 그 바다는 여전히 ‘고유의 바다’로 자신과 늘 함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어린아이가 보여주는 관계에 대한 깨달음은 수많은 관계 속에서 욕망하고 이내 상처받는 독자들에게 따뜻하게 스며든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굳이 내 곁에 두지 않아도, 그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늘 자신과 함께 한다는 것. 비움과 놓음으로 비로소 ‘고유의 바다’가 ‘나만의 바다’가 되는 이 일상적이지만, 묵직한 아름다운 깨달음.
    

책장을 덮으면 내가 사랑한다는 명목 하에 손에 쥐고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맛있게 먹었던 과자의 봉지를 버리기 싫어서 방 한 구석에 모아두다가 개미가 꼬여서 엄마에게 혼났던 기억도 난다. 아이가 사랑하는 ‘고유의 바다’ 안에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담는다.


나만의바다_31-32.jpg 
 

낮은 채도로 칠해진 따뜻한 그림들은 편하게 생각들을 담도록 도와준다. 막연한 공포를 가지고 있던 깊은 바다의 생물도 친근하고 귀엽게 느껴진다. 좋아하지 않던 바다를 이 책 한 권으로 좋아하게 되었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지나치게 완고하고 고집불통이었던, 심지어 바다를 좋아하지 않았던 한 독자는 이 그림책을 통해 앞으로 더 많은 관념들을 바다에 담을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것일지는 몰라도, 단 한 가지 분명한 건 <나만의 바다> 속 바다의 색채처럼, 바다는 때로는 하늘색, 때로는 짙은 검은색, 때로는 짙은 파란색으로 담길 것이다.
 
바다 내음이 가득한 종이 속에 생각을 푼다. 작은 어항 속 생각들이 유영한다.
 
 
잔잔한 바다. 푸른 바다.
물결치는 바다. 잿빛 바다.
장난꾸러기 바다. 초록 바다.
신비로운 바다. 먹빛 바다.
안개 낀 바다. 은빛 바다.
휘몰아치는 바다. 하얀 바다.
 
 


에디터 김나윤.jpg
 
 
[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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