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옥에서의 한 철 [문학]

글 입력 2017.09.13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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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고 성실'하지 않은 몸을 이끌고 살아가는 일은 고달픈 것 같다.

나는 나 스스로를 잘 모른다. 그 모르는 정도가 어느 정도냐면, 내가 고3 담임 선생님께 ‘국제학부나 쨋든 국제적인 학과에 가고 싶어요’라고 말했을 때 선생님께서는 ‘국제학부? 그거 국제 기구나 국제 봉사 단체 직들과 관련 있는 학과 아니냐? 너는 봉사 쪽으로는.. 잘 모르겠는데..?’ 라며 내 옆에 있던 아빠와 눈을 마주쳤고 둘은 피식 웃었다. 분명 그 이야기가 나에 대한 이야기였음에도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지금도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대충 그들의 웃음을 이해해 보자면, 내가 착하고 성실하지는 않다는 뜻이리라. 내가 봉사를 한다는 걸 상상도 못할 정도로.

나 스스로를 잘 몰라서 경상대에 왔다. 원래 가고 싶었던 과는 철학과였다. 하지만 경상대에 가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그게 동그라미를 맞는 길인 것 같았다. ‘맞다’ 이 용언을 목적어 없이 사용했다가 1학년 때 담임배 글짓기 대회에서 아쉽게 떨어진 적이 있었다. 우리반에서 소풍 글짓기를 2매 이상 쓴 사람은 두 명 뿐이었고, 그중 한 명만 1등해서 교장배 글짓기 대회로 넘어갈 수 있었다. 담임은 읽기 귀찮았던지 ‘글은 한 단락 내로 쇼부를 봐야지’라고 말했고 내 맞춤법을 지적함으로서 손쉽게 우리 반 1등을 결정했다. 나는그 때 ‘맞다’라는 용언이 목적어 없이 쓰면 맞춤법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사전을 찾아 보면 ‘맞다’라는 용언은 목적어 없이 써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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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교수님은 자기 아내가 죽었다고 했다. 아내가 죽었으니까 언제든지 힘들면 연락해도 좋다. ‘교수님, 제 글 좀 고민해 주세요.’ ‘….여자의 글은 문학 소녀의 그것에 불과하다.’ 
어떤 교수님은 내 과 문제를 상담해주면서 말씀했다. ‘네가 경상대냐, 철학과냐의 문제는 누구랑 결혼할 것이냐의 문제랑 비슷해. 누구랑 평생 잘 것이냐의 문제지.’ 
한 과목에 점수가 잘못 기재된 적이 있었다. 전산상의 오류였다. 성적 관련으로 내가 그 과목 담당 교수님께 연락을 드리자, 교수님은 언제 나랑 진로 상담을 할 거냐고 재촉했다. 나는 불안했다. 아마 그 때가 5시 반쯤이었고, 성적 정정 시간은 6시까지였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내가 교수님들과 친한 게 부러운가 보다.

1학년 담임은 내가 다른, 더 좋은 대학교를 갈 수 있을 줄 알았다고 했다. ‘내 말만 들었으면, 내 말만 들었으면 말이야. 수시를 그렇게만 높이 안 썼으면.’ 됐다. 부질 없는 짓이다. 다 큰 아가씨가 노인들을 후려쳐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른 곳에 가는 게 의미가 있었겠는가? 나는 이렇게 못됐고 불성실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있다. '힘들 때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말은 망각하자.' 망각, 이 것으로 된 것이다. 제자는 스승을 사랑하고 자식은 어버이를 사랑해라. 우리 사이에 좋았던 적이 얼마나 많았니? 그건 하나도 기억 못하고. 세상은 도저히 완벽하지 못하다. 슬픔의 기시감, 그 이상 무엇을 기대하는가?

동생은 물었다. 서울은 어때, 나는 대답이 어려웠다. 그리고 동생은 재차 말했다. 누나는 왜 이리 무감각해. 왜 이렇게 사는 게 힘이 들까, 라는 나의 대답엔 동생은 세상 사람들 전부 그렇다고 했다. 누나는 왜 누나만 힘들다고 생각해. 대답 이외에 쓰여지지 못한 이야기들에 대한 대답은 늘 어렵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이다. 어쩌면 내 몸이 나쁜 까닭은 ‘선택하지 않는’ 몸이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눈 앞에 치킨, 피자 등등의 패스트푸드들과, 유기농 건강식, 그리고 집밥, 외식할 때 먹는 파스타 등등이 먹음직스럽게 펼쳐져 있지만, 그저 썩을 때까지 두는 것이다. 내가 먹고 싶은건 여기에 없어, 하고. 햇빛에 빛나는 나뭇잎, 그거 하나 선이라 믿고.

가을이다. 나뭇잎이 물들고 있다. 곧 질 것이다.


[성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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