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꿈을 꾸는 흰동가리의 알, 나만의 바다 - [문학]

글 입력 2017.09.12 00:0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나만의바다_앞표지.jpg
 

내 수면 패턴은 조금 독특하다. 10시에 자지 않으면 잠이 영영 오지 않는다. 하지만 하루 동안 해야 할 일은 10시 안에 끝나는 일이 드물다. 그래서 잠에 잘 들지 못하는 편이다.
 
내가 태어나서 첫 번째로 한 거짓말을 기억한다. 의사 선생님이 어젯밤 무슨 꿈을 꾸었냐고 물으셨고, 아마 그 꿈이 끔찍했던 것 같다.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바다 속에서 돌고래를 타는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들킬 것을 조마조마 했다. 의사 선생님은 그 때 그 꿈 이야기보다 어떻게 내 어린 팔뚝에 주사 바늘을 꽂을 지에 대해 관심이 있었고, 다행이었다.
 
왜 하필 돌고래였을까, 아마 돌고래를 타고 바다를 쏘다니면 좋을 것 같았나 보다. 어린아이의 꿈에 적절할 거 같았다. 물속에서 보는 햇빛은 참 예쁘니까. 어쩌면 그게 내 첫 환상, 내 첫 꿈이었다.

 
나만의바다_31-32.jpg

 
이 동화책의 매력적인 부분은 ‘나쁜 놈’이었던 바다가 어떻게 평생 한 사람의 기억 어딘가에 아름답게 자리를 펴고 앉는지 이야기해준다는 점에 있다. 동화 속 주인공 소녀가 스스로 사는 별을 상상한다면 아마 어딘가에는 그날 갔던 그 바다가 햇빛에 반짝여 찰랑, 대고 있을 것이다. 동화를 읽으면서 그런 기억들이 났다. 내가 바다를 보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그리고 그 펄떡거리던 생생한 기억들이 어떻게 퇴색되어 갔는지.
 
실컷 바다에서 놀다가 몸이 달달 떠니 아빠가 안아 줬던 기억, 튜브에 둥둥 떠서 얼굴을 찡그리며 맑은 하늘을 봤던 기억, 파도 넘기를 하느라 그 백사장에서 엎어져서 모래를 먹고, 짠물을 먹고.. 그래도 막 웃었던 기억. 밤에 뽀송하게 몸을 말리고 텐트에서 수박이랑 컵라면을 먹었던 기억.

 
나만의바다_24-25.jpg
 

내가 이 동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바닷물 한 컵만 가져가려는 주인공을 오빠가 말리는 장면이다. 아니, 이 세상에 바닷물이 얼마나 많은데, 가져가면 뭐 어떤가. 하지만 오빠는 끝까지 말리고, 주인공은 결국 가져가지 않는다. 이상한 고집이다. 하지만 덕분에 주인공의 ‘고유의 바다’는 영원히 그 곳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바다를 가질 방법이 기억밖에 없는 소녀는 그 기억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소중히, 꺼내보았다가 다시 넣고, 그렇게 간직할 것이다. 사람은 그 힘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
 
앞에서 내가 이상한 불면에 시달린다고 말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불면을 벗어나는 방법이 요즘 생겼다. 바로 햇빛으로 조금 데워진 따뜻한 바다에 몸을 담그고 있는 상상을 하는 것이다. 주위에서는 사람들이 막 뭐라고 말하면서 웃고 있고, 햇빛은 나른하고, 딱 좋으니까, 나는 더 깊은 바다로 간다. 그 곳에서는 다큐에서 본 예쁜 해마가 새끼를 대동하고, 은갈치떼도 있고, 바다거북도 있고, 그렇게 점점 어두워지고, 말미잘이 나를 감싼다. 나는 흰동가리의 알이 된다.



성채윤.jpg
 

[성채윤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