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앨리스 展을 바라보는 나의 눈길 [전시]

글 입력 2017.09.10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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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로 먼저 만나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마냥 흥미롭게만 볼 수 없었던 작품이다. 1800년대에 쓰인 원작이지만 그것으로부터 21세기의 현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쁘게 뛰어다니는 토끼는 겁이 많고 소심한 도시인들의 모습이며 여왕은 독재의 상징으로, 흰 장미에 빨간 페인트칠을 하는 카드 병정들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공무원을 비꼬는 듯, 이상한 나라와 이상한 인간상들을 판타지로 포장함으로써 도시인들의 전형을 풍자하는 듯 했다.

 이처럼 어떤 작품과 만날 때는 그것이 지닌 의미를 찾아내는 작업이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일전에 다녀온 원더랜드는 달랐다. 전시장에 발을 들인 동안만큼은 교훈 위주의 사고에서 벗어나보기로 했다. 이곳에는 심오하고 깊이 자리한 주제의식이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저 우스꽝스러운 말장난과 상상력으로 이루어낸 하나의 판타지 공간처럼 보였다. 사실 전시의 원작이 되는 두 텍스트는 풍자와 비유나 상징, 비틀림으로 가득해 있기 때문에 지금의 현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마냥 가볍게 읽을 수만은 없는 작품이었지만, 적어도 전시회에서는 그런 감상을 느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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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나에게는 유독 전시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다. 작품이 내게 사유하려 든다는 것, 수용자인 나는 메시지를 읽어내야 한다는, 그런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접근과 탐색이 필요한 공간들도 물론 있을 테지만. 전시를 구경하다보니 자연스레 어떠한 풍자 의식이나 읽어내야 할 메시지를 발견하려 애쓰기도 했는데 왠지 원더랜드 밖의 현실에 머물러 있는 내 모습에 아차 싶었다. 가상공간에 흠뻑 젖어 이리저리 즐기는 동안에도 “이건 ‘가상’의 공간이니까” 하는 심리가 기저에 존재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인터랙티브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어떤 것을 굵직하게 느끼고 오리라, 다짐하며 관람을 했던 것 보다는 공간 그 자체의 이끌림, 신비로움에 더욱 주목하여 살아 숨 쉬는 감각을 느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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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관람객들이 저마다의 순간들을 포착했고, 나 역시도 그들 틈에 끼어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바삐 여러 장 남겨보았다. 그러다 왜 이토록 예쁜 것들에 열광하는지 의문이 들었는데, 마치 진지한 고민은 이곳에선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듯 “이제 비켜주세요”라는 목소리가 들려오거나, ‘전시의 원활한 진행을 위하여 사진 촬영 및 관람 제한 시간은 1분 이내입니다.’ 하는 푯말이 곳곳에 놓여있었다. 나름의 주제의식을 가지고 풀어낸 작가들의 영감이 그저 사람들의 눈길을 빼앗기 위한 미적 장치들로 작용되는 모습들에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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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이 전시가 좋았던 것은 앨리스가 전해주는 위안이라고 할 수 있다. 앨리스는 나에게 ‘엉뚱한 공상에 빠져도 괜찮아. 말도 안 되는 모순들이 원더랜드에서는 모두 통하는 법이니까.‘라고 일러주었다.

 공상의 힘을 통해 일상의 지루함과 멋지게 이별한 앨리스가 이끄는 이 공간들은 잠시나마 답답한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주었다. 또한 364일을 생일날처럼 만들어준 앨리스의 이벤트는 내일이 기대되는 오늘을 살아가게 할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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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가 조금 더 특별하게 와 닿았던 이유는 아트인사이트의 이름으로 다녀왔기 때문일까. 소통과 홍보의 부족으로 좋은 콘텐츠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우리가 이끌어가야 할 방향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앨리스 展이 거두는 성과는 분명 있었다고 본다. 개성 있는 많은 작가들의 협업으로 문화예술계의 젊은 감각들과 만나보는 시도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오묘하고도 복잡하게 섞인 하모니 속에서 그들 작품은 각자 제 소리를 조금씩 내고 있었다. 고전과 현대,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공간에 자리하는 여러 것들의 목적지가 원더랜드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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