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로봇과 사람, 접점을 얘기하다

뮤지컬 '텔로미어' 관람 후기
글 입력 2017.09.10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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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제4회 대한민국 신진 연출가전의 마지막날인 9월 3일, 성수아트홀에서 뮤지컬 '텔로미어'를 관람하고 왔다. 텔로미어는 총 4개의 경연작 중 유일한 뮤지컬 작품이어서 특히 더 주목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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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작품의 내용은 이렇다. 인간수명을 500세까지 연장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김 박사는 노화의 원인을 밝혀내고 젊음을 되찾아주는 '텔로미어'라는 약품을 개발한다. 그러나 복용 시 몸 안의 세포들이 악성으로 변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중, 김박사는 자신의 수업을 듣는 대학원생 아만다를 사랑하게 된다. 이에 사망으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부작용을 감수하고 텔로미어를 복용한다. 젊어진 모습으로 아만다 앞에 나타난 박사는 이오엘의 도움을 받아 아만다에게 다가간다. 이오엘은 박사의 포스트 휴먼 로봇으로 빅데이터에 기반한, 그러나 현실과 동떨어진 연애 코치로 웃음을 유발하는 역할을 한다.
 
인공지능, 로봇의 시대가 임박한 지금 뮤지컬에서 던지는 의문들은 그리 독창적이지 않은 것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명확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를 다루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아만다의 가정 로봇인 '팔자'를 통해 '늙은 것들은 왜 버려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오랜 시간 아만다와 생활하며 누구보다도 그녀를 잘 이해하는 팔자지만 장시간 사용했다는 이유로 폐기 처분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이는 로봇의 감정에 대한 논쟁으로도 이어진다. 아만다는 학습 능력이 급격히 발달하는 로봇이라면 인간의 감정도 습득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 로봇을 무생물로만 취급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김 박사가 죽고 난 후 이오엘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작품의 의도와는 조금 동떨어졌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로봇을 대상으로 한 위의 질문이 인간에게도 해당된다는 사실이었다. 늙는다는 건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늙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인식한다. 물론 나도 그 중 한명이다. 매끈하던 손에 검버섯이 피고 여름이면 옷을 적시던 땀이 점점 줄어드는 걸 보면서 어떻게 슬프지 않을 수 있을까. 늙어가는 것의 장점이란 게 있긴 할까? 아만다는 늙어도 상관없다 했지만, 과연 그럴까? 늙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김애란의 소설 '두근두근 내인생'의 주인공 아름이 뱉은 날카로운 대사를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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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누나가 술에 취해 우연찮게 한 손으로 짝사랑하던 교수의 뺨을 만졌는데,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분 볼에 자기 손이 닿자마자 화들짝 놀랐다고 했어요. 너무 흐물흐물해서. 보는 거랑 만지는 거랑 달랐나봐요. 그 누나는 '늙음'에 데인 것처럼 놀랐다고 했어요. 그날 이후로 더 이상 그 선생님이 남자로 보이지 않게 됐대요. 그런데 누나, 나이 든 사람 피부에 탄력이 없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잖아요. 그렇게 좋아했다면서 그 짧은 접촉 한번에 정색하고 돌아설 정도면, 그 여자가 상상한 늙음이란게 대체 어떤 거였을까요? (pp.133-135)"


 
 

이런저런 생각이 더 깊어지려는 찰나, 배우들의 선명하고 맑은 목소리가 나를 사로잡았다. 화려하고 트렌디한 멜로디는 아니었지만 배우들의 목소리를 잘 담아내는 곡들이 이어졌다. 계속 듣다보니 음원으로 나와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안정적이고 중독성 있었다. 이전까지 고민한 게 무색할 정도로 발랄하고 흥이 넘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아직까지도 주제곡들이 머릿속에 맴돈다. 다시 한 번 작품 속 음악을 듣고 싶어 유튜브에 검색을 해보니 '당신은 내 이상형이 아닌데'를 연습하는 영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묵직한 고민을 던져주는 동시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아름다운 화음을 선물한 뮤지컬 텔로미어. 최근 보도를 통해 아만다 역을 맡은 배우 김다솜씨가 심사를 통해 여자배우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축하드립니당~!!) 연출을 맡은 김병화 씨, 그리고 극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열연을 펼친 주연 배우들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된다.


[이형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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