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 뮤지컬 텔로미어 후기

글 입력 2017.09.09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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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텔로미어의 막이 오르는 성수아트홀. 오랜만의 뮤지컬이었다. 뮤지컬은 멜로디와 가사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그 극적인 표현이 감정을 밀도 있게 전달해주는 점이 참 좋다. 만두도 워낙 음악을 좋아하고, 뮤지컬을 한번 봐보고 싶다고 해서 더욱 좋은 기회였다.

생각해보니 성수아트홀은 첫 방문이었다. 뚝섬역에 내려 주위를 둘러보니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공간도 생각보다 넓고, 시설을 잘 갖추고 있다. 주변에 서울숲이 있어 여러모로 나들이 오기에 위치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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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연출가전이란 올해로 제 4회를 맞는 경연 행사로, 한국연극연출가협회의 치열한 검증을 거친 신진 연출가들이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대중들 역시 대한민국 연극의 미래를 이끌어갈 연출가들을 가까이 만나볼 수 있는 뜻깊은 행사다. 굳이 비용적인 측면도 얘기해보자면, 경연 행사로 진행되었기 때문인지 퀄리티 있는 작품들임에도, 무리 없는 티켓가에 만나볼 수 있었다.

텔로미어란 극 중에서 인간 노화의 원인을 밝혀내고 젊음을 되찾아주는 약의 이름으로 등장한다. 나이든 김박사가 그의 학생 아만다에게 사랑에 빠져 텔로미어를 마시고, 그의 사랑을 이루는 과정에서, 젊어진 김박사와 아만다, 그리고 박사의 로봇 이오엘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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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뮤지컬 텔로미어는 마음을 산뜻하게 해주는 공연이었다. 박사님의 마지막이 슬픈 장면으로 남긴 했지만, 달콤하고 설레는 분위기와 위트 있는 극 구성이 무대를 가득 채우고 관람객으로 하여금 함께 두근거리도록 했다.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도 수준급이고, 무대 위에서 생생하게 울려퍼지는 피아노 소리와 중간중간 웃음 터트리게 만드는 무대 장치까지 정말 기분 좋은 뮤지컬이었다. 배우는 오직 3명 뿐인데 수많은 역을 소화하고 넓다란 무대를 한가득 채운다는 점이 감탄을 자아낸다.

극 중 시간은 인공지능 로봇이 삶 속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미래 시대로, 따듯한 마음을 가진 여학생 아만다, 로봇처럼 무뚝뚝한 성격의 김박사, 그리고 그들을 큐피트처럼 연결해주는 인공지능 로봇 이오엘이 등장한다. 김박사가 아만다를 사랑하게 되면서 모든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서로 가까워지고 사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재미있게 담아냈다. 텔로미어를 마셔 젊어진 김박사는 아만다에게 정체를 감추고 접근하고, 어색하기 그지 없는 말투와 행동으로 아만다에게 애정공세를 펼친다. 남녀가 서로 가까워지고 마음을 키워나가는 매 장면이 너무 사랑스럽다. 우여곡절 끝에 사랑하는 사이가 된 두 사람. 하지만 텔로미어의 부작용은 점차 강해지고, 박사는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이별을 준비한다. 이후 박사에 얽힌 모든 진실이 밝혀지지만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치달은 후다. 죽음을 예감한 김박사는 로봇 이오엘에게 자기 삶의 모든 것을 입력하게 하고, 끝내 아만다의 품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만다가 다시 찾은 박사의 연구실에서 이오엘과 마주하는 것으로 막이 내린다.

다양한 소재를 사랑이라는 대주제 아래 절묘하고 알차게 엮어낸 뮤지컬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줄거리 자체는 어찌 보면 뻔할 수도 있지만, 표현 방식이 참신하고 매력적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떼기 힘들다. 텔로미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을 노래한다. 사랑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자라나는지, 그리고 사랑이란 무엇인지. 그것은 연인간의 사랑일 때도 있고, 인생의 친우를 향한 사랑일 때도 있으며, 인간애에 가까운 사랑일 때도 있다. 사랑을 다각도에서 서술하며 그 답을 찾아나간다.

소개글에서는 사랑, 인공지능, 생명연장과 관련된 윤리적인 문제를 다룬다고 언급하고 있었기에, 제각기 다른 분야를 어떻게 풀어나갈지가 궁금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극이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 위에 사랑이 있다는 단순하고도 애틋한 사실이었다. 인공지능, 생명연장 등의 주제는 극 중 소재로서 이야기 속에 자연스레 녹여진다. 사회적 논의가 분명히 필요한 이 주제들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살풋 던져주는 정도의 느낌. 그리고 다른 주제들이 크게 신경쓰이지 않는다는 건 사랑이라는 대주제가 너무도 확고하고 크고 예쁘다는 사실의 반증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낯선 타인이 연인이 되기까지의 어색한, 하지만 분명 설레기 그지 없는 풍경을 풋풋하게 보여준다. 솔직하게. 박사가 사랑을 시작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정말 로봇같은 삶을 살아온 그에게 단 한순간 부딪힌 사랑이라는 감정은 정말 얇게 벼려진 한 틈에 불과했을지라도 너무도 큰 것이었다. 그 어떤 논리로도 정립될 수 없는 새롭고 따듯한 무언가를 느끼게 된 것이다. 텔로미어를 복용하면서까지,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그는 그 감정에 부딪혀 보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다고 할 수 있을 로봇도 큰 도움이 되진 못한다. 도리어 사람을 멍청하게 만드는 것이 사랑 아니던가. 답이 하나로 귀결되는 것이 아닌, 수많은 마음의 갈래 사이에서 늘 고민하고 맴돌게 되는 묘한 것, 그런 것이 사랑이기에.

극 중 감초 역할을 하는 인공지능 로봇의 존재는 도리어 따듯한 인간성과 사랑의 일면을 부각시킨다. 로봇의 시선에서 바라본 사랑이란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이며 무논리적인 감정이지만, 바로 그 점이 로봇과 인간의 차이를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점이다. 그래서 이오엘은 사랑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괴로워한다. 로봇이 사랑을 배울 수 있을까? 사랑을 알게 된다면 그건 로봇일까, 혹은 인간에 가까운 무언가일까?
그러면서 막이 내리기 전, 박사의 모든 기억과 삶의 모든 것을 칩으로 입력한 그의 로봇이 그녀 앞에 나타남으로써, 사랑의 대상과 그 존재에 대해 한번 더 고민하게 만든다. 그녀는 박사님이라는 그 존재 자체를 사랑한 것인지, 혹은 그를 본딴 그 무엇과도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여기서 더 나아가 사랑의 대상이 로봇이 될 수 있는지. 사랑이 인간의 숭고한 감정이라면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든 피조물을 향한 그 마음은 거짓이 되어버리는 게 아닌지.

극 중 인물들의 관계가 풍부하게 표현되어 더욱 매력적이었다. 박사와 로봇의 관계, 아만다와 로봇의 관계 등등. 박사가 로봇을 만든 것은 자기 이상을 투영한 것이고, 냉혈한처럼 보였던 그도 결국 로봇에게 마음을 터놓는다. 마치 자식을 대하는 것에 가까운 모습이다. 사실 로봇에 상냥하게 대하는 아만다의 모습에 반했던 점을 생각해 보면 박사의 마음 깊은 곳에도 그런 마음이 자리했던 걸지도 모른다. 로봇보다 더 로봇같았던 박사가 점점 인간이 된다. 엄마미소가 절로 나온다.
아만다와 그의 가정부 로봇의 관계는 가족에 더 가깝다. 로봇이 우리 삶에 어디까지 들어올 수 있는 것인지 한번쯤 생각해보게 한다. 기계에 불과한 것인가, 삶의 동반자가 될 수 있는 것인가. 답을 명확히 내릴 수 없는 문제다. 하지만 인간과 로봇의 선은 분명히 그어져야 하고, 우리는 우리 마음의 준비를 어떻게든 해야 한다.

후반부가 다소 급하게 진행되어, 아만다가 박사의 진실을 알게 되는 부분에 대한 심리 묘사가 조금 더 깊어질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실제로 백발의 노인이 대학원생에게 고백하는 것이 다소 어려운 것이 사실이듯, 아만다가 받았을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하게 되었기에 - 윤리적인 문제를 논의하기 앞서 - 아만다는 박사에게 다시 돌아왔을 테다. 무대 장치가 다소 간소해 보였던 점도 아쉬웠지만, 배우들 연기와 노래가 워낙 멋지고 인상적이어서 그 속에만 푸욱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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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보고 나서 아트인사이트 대표님을 만나뵈었다. 좋은 공연을 만끽한 흥분감에 방방 뛰며 인사를 드렸다. 다음날 공연도 한번 더 보러 올까하는 고민이 계속 들 정도로, 신나고 즐거운 뮤지컬이었다.

인공지능, 생명연장, 사회적 지위, 신체적 한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다. 우리 삶을 지탱하는 마음이 바로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실낱같은 우연을 타고 사랑은 시작되고, 그 실낱이 얽히고 섥혀 짜임이 예쁜 두 사람의 관계를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웃음짓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고 한번 더 웃음짓게 하는 사랑의 아름다움. 사랑은 로봇의 마음을 가진 사람도, 혹은 로봇마저도 휘청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도전하게 만들고,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하는 사랑의 힘. 머나먼 과거부터 그래왔듯 시간이 많이 지난 미래에도 사랑이란 여전하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바뀌어도 우리 마음은 변하지 않아서, 결국 우리는 사랑을 하며 살아갈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가장 좋았던 건 아름다운 노랫소리와 설레는 눈빛, 그리고 그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끼며 있을 수 있는 것 자체였다. 다 보고 나서 만두와 한창 그리워 그리워 그리워~ 하며 노래를 읊조렸더랬다. 한번 더 막이 오른다면 한번 더 가고 싶다. 예쁜 사랑 이야기 보고 한껏 미소지으러.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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