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2017 제4회 대한민국 신진연출가전 : 소모 [공연]

글 입력 2017.09.09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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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제4회
대한민국 신진연출가전


대한민국 신진연출가전 포스터(리사이징).jpg


연극 <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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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작-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연극 <소모>의 원작인 프란츠 카프카 <변신>을 제대로 읽어본 기억이 없다. 그래서 공연 보러가기 전에 읽었다. 정말 어마무시한 소설이었다. 열심히만 살아온 주인공이 벌레로 변신했다. 그런데 그렇게 변신했다-라는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았다. 책장을 넘기는 것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잔인하게도,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 벌레로 변함으로써의 가족들의 변화, 본인 몸의 변화, 많은 다리와 끈적한 액체와 껍질, 취미, 음식, 생활상 등이 자세하게 묘사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몇 달의 시간이 흘렀다. 버티기 힘들었다. 집은 망해가고, 하숙하는 사람을 들이고, 부모님과 여동생과의 관계가 역전되었다. 벌레는 벌레대로 살아왔다. 보면서도 여전히 읽기 힘든 건 벌레 1인칭 시점의 묘사였다. 그리고 마지막엔, 결국 가족과의 금지된 선을 넘어서고, 벌레는 죽고 만다. 이후 벌레를 제외한 가족 3명이 여행을 가면서 소설은 끝이 났다.

한동안 멍해서 뭔가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끔찍하면서도, 슬픈 소설이었다. 벌레를 두려워하고 혐오하는 건 인간의 생존본능이라고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는 건, 그 옛날 옛적 벌레를 공포스러워하고 피해야만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벌레를 좋아하는 사람은 정말 흔치 않으리라. 어쨌든, 우리 가까운 사람이 벌레가 된다면 얼마나 공포스러울까. 상상하기도 싫다. 근데 그게 '나'라면..? 남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니 남을 보는 것보다야 어떻게든 살겠지만, 그래도 견디기 힘들 것이다. 

<변신>은 여러모로 참 대단한 소설이다. 인간 본성에 관한 탐구부터, 열심히 외판원으로만 살다가 벌레가 되어 마지막에 가족에게 외면받는 장면까지 세세하게 나와있었다. 그리고 부모님의 성격 변화, 특히 여동생의 모습, 권력구조까지 생생하게 보여주어, 많은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



2. 연극 <소모>

연극 <소모>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딱 내 또래의 이야기였다. <변신>은 그 작품이 쓰일 당시 배경으로, <소모>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시대로 그려졌다. 취업준비생 선호. 열심히 (실제로도) 달려온 선호는 자소서를 열심히 쓰고, 면접을 열심히 보아도 항상 떨어졌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어느날, 벌레로 변해있었다.

작은 공장 사장인 아빠, 가정 주부 엄마, 피아노 좋아하는 똑똑한 여동생이 가족이다. 벌레로 변한 선호를 돌봐주는 듯, 피하는 듯 하면서 지낸다. 그리고 각 가족의 생활을 여실히 보여준다. 오랫동안 지내다가 결국 벌레 처리건으로 투표를 하고- 결국 죽이기로 결정난다. 죽기 전날 밤, 벌레인 선호는 스스로 자신의 도구들을 끊어낸 후 자신의 꿈을 노래한다. 그리고, 다음날 멀티맨이 청소업자로 변하여 적죽은 벌레를 처리한다. 벌레를 떠난 후 가족은 여행을 떠나며 막이 내린다.



3. 연출

역시 연출이 눈에 띄었다. 처음에 <변신>을 읽고서 이걸 대체 어떻게 연극으로.. 시간도, 공간도 제약이 있는 연극으로 어떻게 보일까 기대가 되고 걱정도 되고 굉장히 궁금했었다. 무대는 넓었다. 그리고 선호의 방은 철 구조물로 되어 있었다. 언제든 벌레가 기어다닐 수 있게. 퇴장하는 공간이 없는지, 조명이 많이 어둡지 않은지 매 공간 구성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연극이 준비되는 점과 시작되는 점을 둘 다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소모>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좋았던 몇 장면을 소개하고자 한다.


(1)정전

원작에서는 없던 장면이었다. 연극은 눈으로 볼 수 있기에, 어둠 속에서 조명 하나에만 의지하여 더욱 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할 수 있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공포. 그 속에서 기어다니는 벌레. 깜빡이는 손전등. 전등 색도 붉은 색, 흰색 등으로 바뀌어서 더욱 더 공포를 주었다. 특히 쉭- 쉭- 거리는 소리와, 벌레의 타다다다닥 거리는 발걸음(?) 소리. 중간중간 빛을 비추어 가족들의 동선과 공포에 질린 표정 등 각 장면이 더욱 더 잘 보였다. 그래서 훨씬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정말 사실적으로 느껴졌다. 무대 밖이어도 그 공포 속에 같이 들어있는 듯했다.


(2)벌레 처리 투표

시간은 흘러, 가족들이 벌레 처리 안건을 투표를 올렸다. 어느쪽이 더 많은지, 사회에게 묻는 장면이 인상깊었다. TV 프로그램 같기도 하고, 우리의 일상적인 SNS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도 같았다. 가족의 문제를 사회에 끌고 와서 많은 사람들에게 동조를 구하고 다수의 지지를 바라며 안건을 처리해주기를 바란다. 물론 우리가 해결하기 힘든 부분에서는 조언을 구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리고 가족의 벌레이기도 하지만 사회에서도 큰 문제일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글쎄, 선호가 취준생이 되어 뛰어 오다가 벌레가 되는 순간까지 같이 살아온 것은 가족이 아닐까. 선호의 생사와 관련된 결정이, 가족간의 대화로 푸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남들에게 보이는 호소가 전부인 점에서 묘한 거리감을 느꼈다. <소모>에서는 사회에 관해 많은 문제 의식을 던졌는데 그 중 이 장면이 인상 깊었다. 다수에게 의견을 묻는 장면을 실제 지켜보고 있는 관객에게 하는 연출이 좋았다. 마치 내가 이 가족의 벌레 목숨을 투표할 권리라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3)마지막 인사

클라이막스 절정 부분이다. 벌레를 죽이기로 결정이 났다. 철장으로 된 방에 접근 금지 테이핑을 하고 살충제를 설치했다. 밤이 되었다. 선호는 벌레로 기어다니다가, 사람처럼 섰다. 그리고 방에 매달린 자신의 물품들- 가방, 베개, 키보드, 양복, 구두 등 사회에서 살아가는 도구들을 직접 가위로 잘랐다.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사회 연결 고리를 스스로 끊어냈다. 그리고 마지막에 '밤이 깊었네' 노래를 열창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밤이 깊었네' 가사처럼 우리는 청춘인데, 인생에서는 밤이다. 그리고 이 슬픔을 누군가 알아주기를. 제발 누군가 있어주기를. 나를 안아주기를 소리쳐본다. 

노래가 끝나고 쓰러진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 청소부는 집안의 모든 쓰레기와 함께 벌레를 카트에 실어 나선다. 장례식을 천천히 지나간다. 엄마, 여동생, 아빠. 딴짓하다가 선호가 보이자 엄청 운다. 펑펑 우는 모습을 보고 선호는 고개돌려 뿌듯한 웃음을 짓는다. 딴짓하다 선호가 보는 순간에만 우는 가족들. 하지만 이를 모른채 선호는 웃고 있다. 사실 이 웃음이 진심으로 기뻐서 웃는지, 슬퍼서 웃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더 마음이 미어졌는지도 모른다.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가족과 선호는 어떤 관계였을까.

장례식이 끝난 후, 이때까지 나왔던 모든 쓰레기와 함게 벌레 시체는 버려진다. 다 사용한 소모품. 선호는 사회에서 소모될 제품이었다. 사실은 소모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취업도 못한채 벌레가 되었다. 버려졌다. 마지막까지 외면받은 선호. 벌레도 가족의 소모품이었을까.


(4)여행

소설에서도, 연극에서도 마지막 장면이다. 벌레에 지친 엄마, 아빠, 여동생 셋은 가족 여행을 간다. 현실을 떠나 피안의 세계로 가는 느낌도 든다. 슬픔에서 벗어나 공허감으로 가는 길인걸까. 그 여행은 과연 즐거운 길일까. 가족에게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 줄 수 있겠지. <소모>에서는 쓰려져있던 선호가 가족에게도 달려간다. 등 돌린 가족들과 등을 맞대고 앞을 보며 극이 끝난다. 끝까지 가족과 어울리고 싶었던 선호의 마음이었을까. 여운이 꽤 많이 남는 장면이었다.



4. 벌레의 연기

주인공의 연기가 극을 끌고 나갔다. 경이로웠다. 하나의 행위예술을 보는 듯했다. 처음 자소서와, 인생을 달리는 부분에서 바닥의 흰 종이를 보고 먹물을 찍겠구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발로만 찍고 달리는 것이 아니었다. 팔과 다리, 온 몸으로 먹물을 묻혀 그렸다. 그리고 얼굴에도 문지르는 모습을 보고 놀랬다.

그리고 벌레로 변한 모습. 소설 속에서 봤던 쉭-쉭- 거리는 소리가 실제로 들렸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처럼 움직이는 손, 기어다니는 모습. 그 기어다니는 모습에 타닥타닥 나는 걸음 소리. 사람처럼 걸을 듯 말듯하는 기괴한 자세. 벌레를 실제로 빙의한 줄 알았다. 카프카 <변신>의 벌레를 '연극'에서 연기한다면 실제로 저런 모습이 되겠구나. 정말 무섭고 그로테스크했다. 영화 <검은 사제들>의 악귀 연기가 생각나기도 했다. 관객에게 가까이 와서 기어걸어다닐 땐 흠칫하기도 했다. 사람과 벌레를 넘나드는 연기. 정말 멋있었다. 사람이 아닌 사람이었다. 그래서 연극 <소모>에 더 사실감을 불어넣었다.



5, 소모

카프키의 <변신>을 토대로 하고, 연출가의 재량과 배우의 연기가 있다고 한들, 이는 모두 연극 <소모> 주제를 받쳐주기 위한 도구들이다. <소모> 닳아 써서 없애는 것. 우리는 사회의 소모품인걸까. 취업하기 위해 초,중,고,대학교를 나왔으며 스펙을 쌓고 생존을 위해 취업을 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마저도 힘들다. 가족끼리도 서로의 소모품이 되어버렸다. 최소의 생활조차 힘든 모습. 우리는 벌레인걸까. 남일 같지 않아서 더욱 더 슬픈 연극 <소모>였다.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할 수 있게, 취업이 가능한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 소모품으로 살지 않을 수 있도록. 벌레가 아니라 사람답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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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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