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소모: 프란츠 카프카 < 변신 >의 재해석

글 입력 2017.09.09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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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보우 연출의 < 소모 >를 보았다. 프란츠 카프카의 < 변신 >을 각색한 작품으로, 그 전개방식이 분명 친절한 작품은 아니다. 연극은 극을 진행하는 내내 관객으로 하여금 우리가 연극을 보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마치 관객이 연극의 줄거리에 집중하기보다 관객 스스로 끊임없이 생각하길 원하는 듯 보인다. < 소모 >는 관객이 무엇을 생각하기 바라는 것일까.
 
< 소모 >는 취업준비생인 주인공과 그의 가족, 그리고 주변 인물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여러 번의 취업 실패 후, 아버지의 취업 청탁으로 인해 국회의원이 주인공 가족의 집에 방문하게 되고, 이 날을 기점으로 주인공은 벌레로 변하게 된다. 취업 청탁과 그 과정에서 행해지는 의원의 갑질은 보는 내내 인상이 찌푸려지게 한다. 이것이 그저 극을 통한 가상현실의 이야기만이 아님을 알기에 보는 이의 마음은 더욱 불편하다. 여러 번의 취업 실패를 경험하는 청년들과 부정 청탁을 통해서라도 자녀를 돕고 싶은 부모들, 그리고 수많은 부정한 거래 속에 위치하는 갑들의 횡포를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극의 초반, 약자의 위치에 있던 아버지는 극의 후반부에서 누구 못지않은 부정한 권력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부끄럽지만, 우리사회에 너무나도 비일비재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부당대우. 가깝게는 한 집단의 부끄러운 실상을 보여주고, 멀리서는 강자에게 한없이 약하고, 약자에게 한없이 강한 우리 사회의 부끄러움을 낱낱이 조명한다. 
 
벌레로 변한 주인공이 취업준비생이라는 설정에도 눈이 간다. 카프카의 원작에서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직업을 갖고 있었고, 오히려 가족들이 그의 수입에 전적으로 의지했었다. < 소모 >에서 주인공은 왜 굳이 취업준비생이어야 했을까. < 변신 >과 < 소모 >의 공통점은 주인공과 가족이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주인공의 기준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 소모 >는 주인공에게 취업준비생이라는 조건을 추가한다. 사회적 약자에 포함되는 이 조건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작은 집합인 동시에 마지막 방어선인 가정에서조차 그를 약자로 만든다.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질수록 가정에서마저 눈치 보고, 안정을 얻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 시대 청년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어디서도 안정과 소속감을 얻지 못하고, 한없이 스스로를 작은 존재로 여기게 되는 현 세대 청년들의 자존감을 < 소모 >는 카프카의 ‘벌레’로 이야기한 것은 아닐까.
 
불편한 연극에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현실은 부디, 조금 더 나은 세상이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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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극 < 소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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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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