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여름의 끝자락에서 만난 다양한 브람스

글 입력 2017.09.0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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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 8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더위가 살짝 가신 듯 선선한 바람과 어스름한 어둠이 합쳐져 브람스 음악을 듣기 가장 좋은 저녁이었다. ‘브람스는 진정 한 사람의 철학자이며, 그의 가장 훌륭한 철학은 그의 영혼의 근본을 이루는 구슬픈 감정에서 흘러나오는 것’ 이라는 평가에 대해 연주를 들을 후 조금은 끄덕일 수 있었다.

 첫 번째 곡, 피아노 3중주 제3번 C단조 101번은 나에게 다양한 감정을 심어줬다. 이 곡은 특히나 악장마다의 느낌이 상이했는데 그 안에서 나는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었다. 1악장에서 나는 지중해 어느 햇살 아래 강한 햇볕을 쬐고 있었다. 1악장은 강렬한 바이올린 소리가 인상적인데 이 소리가 마치 따가운 햇살과도 같았다.(그렇다고 해서 첼로와 피아노의 음색을 헤친 것은 아니다.) ‘Allegro energico‘ 빠르고 힘차게 진행되는 연주는 과하지 않게 첫 시작을 끊었다.

 3악장에서 나는 15살 때 봤던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세체니 다리가 떠올랐다. 어느 순간 어스름한 저녁, 세체니 다리의 야경 속을 건너고 있었다. 순간 나는 여행자의 신분이 아닌 그곳 거주자의 신분으로 산책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의 기억을 빌려와야 했다. 금요일 밤, 신선한 바람, 유달리 밝은 달빛 아래 산책, 간단한 목욕, 소파와 따듯한 차, 읽던 책 등이 떠올랐다. ‘Andante grazioso’ 느리고 우아하게라는 주문에 알맞게 연주되었다.

 ‘찬란한 슬픔의 봄’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꼭 등장하는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에 등장하는 유명한 시 구절을 다들 아실 거다. 두 번째로 연주된 곡, 클라리넷 3중주는 마지 ‘찬란한 슬픔의 여름’을 나타내는 듯했다. 비교적 강한 음색의 바이올린이 빠지고 클라리넷, 첼로, 피아노 이 셋이 합을 만들어 가다보니 바이올린이 있을 때보다 절정의 느낌은 덜 했지만 깊은 감성이 묻어났다.

 세 번째 곡, 피아노 3중주 제2번 C장조 87번을 들으면서 나는 왜인지 가족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 이 세 악기의 합이 매우 아름다운데, 합이 만들어내는 그 음이 격렬했다가 부드러웠다가를 반복한다. 서로 만들어내는 음이 격렬하다고 해서 조화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가족도 그렇다. 이런 저런 사연들 속에서 상처와 화해가 반복되겠지만 그 속에 조화가 있다.

 나는 프리뷰에 공연을 기대하며 한 소설의 대사에서 왜 하필 브람스였는지 이해가 간다고 썼었는데, 공연을 보고 그것이 얼마나 섣부른 생각이었는지 깨달았다. 이어폰 속 브람스를 전부라고 생각할 수 없다.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실내악 연주를 보고 들으며 느꼈던 많은 감정과 상상들을 모니터 화면 속에서는 느낄 수 없었다. 악기가 하는 말을 사람이 전달하는 그 느낌을 실제 공연이 아니면 느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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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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