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정주의 시 [문학]

글 입력 2017.09.08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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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판타지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서 봤던 서정주의 시 [춘향 유문 - 춘향의 말 3] 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고등학생일때 한동안 시에 빠져 지냈던 적이 있었는데, 시에 빠지게 한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다.


춘향 유문 - 춘향의 말 3

안녕히 계세요
도련님

지난 오월 단옷날, 처음 만나던 날
우리 둘이서 그늘 밑에 서 있던
그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같이
늘 안녕히 안녕히 계세요

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
춘향의 사랑보단 오히려
딴 나라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천길 땅 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예요?

더구나 그 구름이 소나기 되어 퍼부을 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예요!


이 시는, 나에게 

1. 몽룡을 바라보는 춘향의 입장에서 쓴 시라는 것
2. 춘향 자신의 죽음이 나타내는 판타지

이 두 가지를 보여주었다.


한 마디로 내게 '취향저격'이었던 이 시에 나는 매혹되었다. 당연히 이 시인에 더 관심을 갖게 되어 찾아보니, 오히려 찾지 않았으면 더 이 시인이 더 좋게 남을 수도 있는 정보들을 보게 되었다.

시인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는 1936년에 신춘문예로 등단하였으나, 일제강점기에는 친일 작품을 썼다. 또한 해방 이후에는 이승만 전기를 썼고, 박정희 정권 때에는 월남전 파병을 촉구하는 시를 발표하기도 했고, 전두환 정권이 들어설 때 그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거나, 그의 56세 생일에는 축하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는, '왜 친일 활동을 하였는가' 라는 질문에 "일제가 그렇게 빨리 망할 줄 몰랐다. 한 200년은 갈 줄 알았다" 라고 답한 적이 있다. 이를 볼때, 서정주는 자신의 정의보다는 당시의 권력층에게 잘 보이려는 인물이었고, 그것을 위해 시를 이용하는 것을 서슴치 않던 사람이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참으로 안타깝다.

그의 시만을 봤을 때는 정말로 좋아하고 싶은 시인이고, 정치와 관련되지 않은 그의 시 몇 편만을 알았을 때는 좋아하던 시인이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역사의 상처와 민족적 정서를 토대로 할 때는, 좋아해서는 안 되는 인물이다. 좋아하고 말고를 자유롭게 드러내는 것이 충분히 논란거리가 될 수 있는 대상인 것 자체가, 안타깝기 마련이다.


또 한편으로는, 그런 인간이었기에 더 시를 '안타까우면서'도 아름답게 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안타깝다'라는 표현은 친일과 관련한 것을 발표한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윤동주 시인에게 똑같은 아름답다라는 표현을 한다면, 절대로 '안타깝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을 것이다.)

다음은 서정주의 친일 작품 중 하나인 [송정 오정 송가] 중 한 부분이다.


오히려 기쁜 몸짓 하며 내리는 곳
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

수백 척의 비행기와
대포와 폭발탄과
머리털이 샛노란 벌레 같은 병정을 싣고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려져서 깨었는가?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ㅡ


솔직하게 말해서, 참으로 역겹다.

전문을 옮기려고 했지만 그 내용을 내 손으로도 다 옮기기 싫어 일부만 옮겼다.

간략하게 내용을 전하자면, 이 시의 주인공은 가미카제 특공대의 일원으로 징병된 조선 청년이다. 이 시는 가미카제 특공대의 죽음을 아름답게 미화하고, 어떻게든 일제의 만행을 아름답게 포장하려고 한다.

이처럼 서정주는 아름답게 포장하고 미화하는 데에 자신의 문학적 능력을 이용하였다. 분명 그의 생계 유지, 혹은 고위 권력층에 잘 보여서 부귀영화를 누리려하는 것과 같은, 강한 욕망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원래 인간이란 욕망에 쌓일 때 그 능력이 한층 더 발휘되지 않는가. 욕망에 의해 필사적으로 시에서 표현들을 더욱 아름답게 하려 했을 것이기에, 그 아름다움들은 한층 더해졌을 것이다.

원래 악인의 능력이란, 그 능력이 좋은데 쓰여지지 않기에 그 능력을 인정하기 싫지만, 그 능력만큼은 인정하게 되는 부분이 있지 않은가. 서정주의 시적 능력이 바로 그 능력과 같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그 능력을 좋아하게 되면서도, 좋아질 수가 없는 것이다.


서정주라는 시인은, 나에게 있어서 좋아하기도 하면서 좋아할 수 없는, 참 아이러니한 시인이다. 그 표현이나 시의 아름다움에 빠지면서도, 좋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친일 행위를 아름답게 미화한 표현을 보면, 그 표현은 전혀 좋아지지가 않지만, 그 능력만큼은 인정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인물이 있다는 것과 그 배경인 역사를 그대로 인정하면서, 어찌보면 역사의 아픔 중의 하나인 그의 행적과 친일작품들을 통해 다시 역사를 새기는 것이다.

오랜만에 쓴 오피니언이라, 그리 길지 않으면서도 생각해볼만한 글을 써보고자 했다. 그래서 항상 머릿속에 작은 애매함으로 남아있던 서정주의 시에 대해서 쓴 것이다. 그저 한 사람의 의견일 뿐, 맞다 그르다의 잣대로 해석하지 않기를 부탁한다.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표현으로 이루어진 서정주의 시 [추천사]를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추천사 - 춘향의 말

향단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 듯이,
향단아

이 다수굿이 흔들리는 수양버들나무와
베갯모에 뇌이듯한 풀꽃더미로부터,
자잘한 나비 새끼, 꾀고리들로부터,
아주 내어 밀 듯이, 향단아

산호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려 올려 다오
채색한 구름같이 나를 밀려 올려 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 다오!

서으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려 올려 다오
향단아



[이현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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